2월 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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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선교사님들에게 성령 충만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사 그 땅에 예배가 세워지게 하시고 모든 열방이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날이 속히 오게 사소서

2.

선교 사역을 위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주사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사역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소서.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6: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6:15

군인은 전투화, 워커를 신습니다. 시저가 세계 정복에 성공한 배경에는 군인들에게 군용 신발을 지급하여 기동성을 가지고 적들과 싸우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시밭길, 자갈길, 바위 길을 맨발로 걸을 수는 없습니다. 발을 보호할 신발이 필요합니다.

이와같이 영적 전쟁에는 주님이 예비하여 주신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죄인에게 용서의 의의 신발, 병든 자에게는 치료와 건강의 신발, 가난한 자에게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신발, 그리고 구원 받은 우리 모두에게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신발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특히 영적 전쟁을 치루는 우리를 위하여 평안의 신발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 하신 말씀입니까? 이제 몇 시간 있으면 십자가에서 처형됩니다.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고, 갖은 고문을 당하시고, 그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형을 당하여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불안해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살기는 제자들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환경이 주는 평안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경을 초월한 평안인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치루는 우리에게 이러한 평안이 필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두려움은 패배로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정복하기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수2:8-10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본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수2:23-24

우리가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려면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신을 신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1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평안입니다. 이런 저런 조건이 있으므로 평안한 평안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조금 고상해지면 자신을 비워서 이루어지는 평안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비우면 평안해 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의 수도나, 마음의 수양 등으로 얻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이 평안도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면 없어지는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이런 평안과는 다른 것입니다. 조건에 의해 생기는 평안이 아닙니다.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주시는 평안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에도 바울과 실라는 이 평안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 감옥의 고통에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평안은 참 평안입니다. 모든 조건을 초월한 평안입니다. 은혜로 주시는 평안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죄 용서로부터 오는 평안, 죽음을 정복한 평안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 평안을 제자들에게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후 맨 처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 평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이 평안은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여한 우리는 바로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불확실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십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이 평안을 받아서 모든 두려움과 근심,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평안을 받아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성령 충만이 주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마음의 평안이란 단순히 감정 조절이나 적극적인 사고 훈련이나 명상, 마인드 컨트롤, 요가, 최면요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은 육체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령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바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요20:22).

우리의 내면세계의 평강은 성령님께서 주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성령이 떠나니까 그 순간부터 얼마나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됩니까? 심리적 불안으로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 충만한 다윗을 보십시오. 그 위기 가운데서도 시를 짓고 찬양을 드립니다. 더욱 담대해지고 평안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제자들을 보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으니까 얼마나 심령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까? 감옥에 가서도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처럼 평안하고 자신을 죽이는 자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고난이 면제된 평안이 아닙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환난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고난의 물결이 출렁이고, 미래에 암울한 폭풍우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가질 수 있는 평안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 큰 폭풍이 일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워 떨었으나, 그 가운데서 주님은 깊은 잠을 주무실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평안입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이 사자굴에 들어가고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불안하지 않고 평안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감옥에서도 평안하게 단잠을 잘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초대 교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보십시오. 불안한 미래입니다. 죽음이 앞에 있는 미래입니다. 불투명한 미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평안을 가집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성령 충만함으로 이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이 평안은 다윗만의 것도, 베드로만의 것도, 바울만의 것도, 다니엘만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감옥에서도, 풀무불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성령 충만하여 이 평안을 누리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맨발로 인생길을 달리는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신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용서의 의의 신발을 신고 죄책과 정죄감을 짓밟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신발을 신고 악한 습관을 이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치료의 신발을 신고 병을 짓밟고 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신발을 신고 저주와 가난을 짓밟고 나가야 합니다. 부활과 영생의 신발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짓밟고 나가야 합니다.

발이 편하지 않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주님이 예비해 주신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으면 평안해집니다. 죄에서, 질병에서, 가난과 저주에서, 죽음에서 평안을 얻게 됩니다.

마귀가 온갖 가시밭길을 만들어 놓아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어떤 장애물도 다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예비하신 평안을 신발을 신지 못한 사람은 예수 믿어도 고통스러워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의지의 신발을 신는데 그것은 동네 뒷산 오를 때에나 신는 운동화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만들어진 복음의 신발을 신고 가파른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달려가는 영적인 발자취가 교회를 일으킵니다. 복음의 평안의 신발을 신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들은 하루 평균 102번 정도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이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년 2월 4일 오전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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