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에 이르렀더니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출15:22-27
2026. 2. 1 주일 낮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광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지나 수르 광야로 들어갔는데, 사흘 길을 걷도록 물을 얻지 못하여 목이 타는 갈증으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이 마라에 이르러 물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습니다. 이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출15:24-25똑같은 환경과 처지에서 백성들은 원망했고, 모세는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불과 사흘 전에 하나님을 찬송 했던 백성들이 지금은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홍해를 건넜을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야훼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야훼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15:1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앞인 20-21절을 보십시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야훼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출15:20-21홍해를 건넌 백성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야훼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야훼를 찬송하던 백성들이 불과 사흘 만에 모세에게 어떻게 합니까?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노래를 빼앗아 가고, 우리의 춤을 멈추게 하는 삶의 고통이 다가올 때, 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홍해로 간 것이 우연입니까? 하나님의 인도입니까?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출14:1-2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홍해 앞에 진을 쳤을 때에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애굽의 바로 왕이 특별 병거 600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몰고 달려왔습니다. 바로 왕의 군대를 본 백성들은 원망했고,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백성들은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라는 절망적인 상황만 본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절망적인 상황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그들을 바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바로의 지배를 온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바로 왕이 그들을 지배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그들을 홍해로 인도하셨습니다. 홍해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는 다 죽고,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가나안 정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정탐꾼에게) 말하되 야훼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야훼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야훼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2:9-11바로 왕의 군대를 보고 원망 불평하던 백성들이 홍해에서 바로와 온 애굽 군대가 죽은 것을 보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었습니다. 그 홍해 사건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홍해 사건을 들은 여리고 백성들이 전의를 상실함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있습니다. 홍해 사건에서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면 이후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사건 뒤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홍해를 떠난 백성이 수르 광야에 들어간 것은 우연입니까? 하나님의 인도입니까?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
그들이 수르 광야에 들어간 것은 우연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백성들은 원망했고, 모세는 부르짖어 기도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백성들은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만 보았고, 모세는 절망적인 상황 뒤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있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백성들은 홍해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그 의미를 배우지 못했고, 모세는 배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의도가 어디에 있을까요?
1. 그들을 성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바로의 지배를 온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그들을 홍해로 인도하셨습니다. 홍해에서 바로 왕과 그의 군대가 다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 사고까지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광야에서 그들을 깨뜨리고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광야 훈련을 통하여 자아가 깨어지면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시고, 광야 훈련을 통하여 낮아져서 겸비해지면 높이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얼굴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 땅을 변화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로 삼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려운 상황만 보고 원망 불평하는 것은 상황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여러분, 원망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원망은 백해무익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23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원망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라의 쓴 물 같은 쓰디쓴 환경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있다는 것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르코스 윗(Marocs Witt) 목사님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맥시코에서 자란 선교사님의 자녀입니다. 1960년대 멕시코에 선교를 하시던 그의 아버지 재리 윗 선교사님이 경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의 다른 지역에 선교하러 가시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24이었다고 합니다. 젊은 사모님이 어린 아들 셋을 데리고 멕시코의 시골 가난한 동네에서 남편의 죽음이라는 마라의 쓴 물을 만난 것입니다. 부부가 평생을 멕시코 사람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남편이 이렇게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원망이 나올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나이가 24살이니까 얼마나 젊습니까? 그런데 원망하지 않고 이렇게 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남편의 뒤를 이어서 내가 이곳에서 계속 멕시코의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한 사모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3년 후에 그곳에 선교하러 오신 선교사님과 재혼하게 만들어 주시고 그곳에서 멕시코 사람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인 마르코스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나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앨범을 만들었는데 최우수 기독교 앨범으로 라틴 그래미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열리는 그의 콘서트에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오는 등 크게 알려진 찬양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미에서 자란 성장 배경을 발판으로 삼아 ‘긍정의 힘’으로 잘 알려진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담임하는 레이크우드 교회에 스페인어 예배담당 목사님으로 섬기며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면서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아들에게 복을 주셔서 이렇게 크게 쓰임 받는 귀한 종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마르코스 목사님이 그의 책 ‘두려움을 이기는 영혼’ 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라의 쓴 물과 같은 고통을 만났을 때 두려움을 심으면 고통밖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를 쌓는데 시간을 드리며 감사로 나아갈수록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이 하라는 대로 감사로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연습하면 두려움이 우리 삶을 떠나게 되며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모세가 야훼에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쓴 물을 치료하여 달게 만들어 주신 자리에서) 야훼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출15:25-26하나님은 마라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마라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베드로가 백성들을 향해 외치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생명의 주를 죽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들이 그토록 사모하며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겠습니까?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행3:17처방
"그러므로 우리가 야훼를 알자 힘써 야훼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6:3사도 바울의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7여러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야훼를 알아야 합니다. 마라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나는 너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하나님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맹물을 양질의 포도주로 고치시는 치료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병든 육체를 낫게 해주시고, 병든 심령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야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한 나무입니다.
"모세가 야훼에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출15:25모든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리키신 한 나무입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나님이 가리키신 한 나무는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처방은 한 나무인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가리킨 그 나무가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가 우리를 고치고 살리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마라의 쓴물에 한 나무가 던져진 사건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시요 계시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기 위해,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엘림으로 인도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라의 쓴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이 근본적인 고통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인 주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인 십자가 아래로 모입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우리 모든 아픔과 고통, 상처를 내려놓읍시다. 십자가만이 쓴잔을 마신 우리 인생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처방임을 잊지 맙시다. 그래서 쓴물이 단물이 되고, 마라가 엘림으로 새로워지는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엘림의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이 어떻게 끝나는 줄 아십니까? 마지막 구절을 우리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15:27마라에서 엘림까지는 불과 10k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마라에서 조금 지나가서 엘림에 도달했더니 엘림에 뭐가 있어요? 물 샘 열둘과 종려 일흔 그루
여러분 광야에서는 단 하나의 샘물도 소중한데 그 샘물이 무려 열둘이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려나무가 몇 그루가 있어요? 70그루. 광야에서 그늘을 만드는 한 그루의 종려나무도 귀한데 무려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오아시스가 불과 10km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 마라에서 그들은 원망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의 눈에 엘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어야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엘림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엘림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엘림을 아시고 그들을 그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엘림은 마라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마라에 주저앉아 계신 분이 계십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우리는 엘림에 도달할 것입니다.
제가 청교도들의 인사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많은 고난을 견디고, 당시의 사회에서 오해당하고 핍박당하고 소외당하는 고통의 삶을 견디던 시절 요즈음 서양 사람들의 보편적인 명언으로 쓰이는 한 메시지가 탄생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The Best is not yet to come) 이 말의 원조가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삶이 힘드십니까? 이렇게 자신에게 외쳐 보십시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고단하게 사는 이웃들이 보이십니까? 그들의 곁에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오늘의 본문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직 엘림은 오지 않았습니다.”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의 부인되시는 김영애 권사님이 갈대상자를 쓰시고 구름기둥이라는 책을 내셨는데요, 그 권사님의 눈물의 고백입니다.
1995년에 한동대학이 개교되고 난 이후 19년 동안 겪었던 그 말할 수 없는 마라의 쓴 물들. 개교한 지 2년 만에 이사장이 네 번이나 바뀌고 이사장과 총장, 학교 관계자들이 계속 형사 고발을 당하고 또 고발을 당하고 또 고발을 당하고. 급기야는 남편인 김영길 총장님이 법정 구속 돼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대학교 총장님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니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마라의 쓴 물을 만났는데 총장님과 권사님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교수님들의 월급을 주지 못할 때에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십자가의 은혜로 쓴 물을 단물로 바꿔주셨습니다. 총장님이 감옥에 들어가자 한국의 모든 신문이 이를 보도하게 되었고, 학교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많은 분들이 학교에 기금을 보내주었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한동대학교에 들어왔던 아이들이 변화되어서 크리스천 리더로서 사회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불과 19년 만에 한국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지게 된 기독교 명문 대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김영길 총장님이 19년간의 총장 생활을 마치고 명예롭게 퇴임하셨는데 권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은 광야입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지 못합니다. 광야란 고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학교로 보내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온갖 고난을 겪으며 우리 속에 내재된 타락한 본성을 깨뜨리게 됩니다. 처절한 고난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변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식이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학교를 거치고 보니 장미꽃도 감사하지만 그 장미에 붙은 가시도 감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폭양이 내리쬐는 광야에서 구름기둥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다보니 마침내 도착한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마라의 고통을 겪는 분이 계십니까? 마라의 어려움만 보고 원망하지 마시고 마라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생각하고 모세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마라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가 무엇이라고요? 구원은 받았지만 변하지 않았던 옛 사람의 성품과 가치관을 깨뜨리고 변화시켜 하나님의 대행자로, 하나님의 얼굴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어떠한 분이신가를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이 깨어지고 변화되고 하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마라를 통과할 때 멀지 않은 곳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엘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마라의 고통을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엘림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