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성령의 충만과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4:17-1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1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어떤 성공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가정에서 형제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의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부 상은 주안에서 하나가 된 부부입니다. 그가 어떤 지위이고 어떤 집에 사느냐가 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하나 되어 사랑할 수 있느냐, 서로 아끼고 존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가정을 대변하는 메시지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성도, 성도와 목사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와 사랑과 일치가 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2거룩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 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거룩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향하여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을 들어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왜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가’ 하는 것과, ‘왜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자꾸 분열되는 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신들은 겉으로는 의롭고 착한 척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더 세속적이고 물질적이지 않는가? 그 가식적인 태도가 싫다. 좀 더 솔직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전자가 하나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실로 거룩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도전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안과 밖이 한결 같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엡4:17이제부터 : 구원받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부터는 이방인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 :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그 아들 예수를 구주로 모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은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요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이 허망해집니다. 왜냐하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것만큼 답답한 일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작은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어린 동생과 함께 고모댁을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난했기에 돈이 없기 때문에 그냥 걸어 걸어갔습니다. 문제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고모집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는 지고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돈도 없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어떤 좋은 어른을 만나서, 그 분이 집에 가는 버스를 태워 주셔서 집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길을 잃고 노력하는 것은 다 허망한 것입니다. 초행길을 운전할 때는 감각과 느낌을 의존하면 안됩니다. 안내판을 보거나, 내비게이션을 보고 가거나, 길을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방인은 길을 잃어버리고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길을 잃었다면 길을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안내 표지를 보아야 하는데 자꾸 잘못된 길로 갑니다.
이방인은 잘못된 길로 갑니다. 귀신이 가르치는 잘못된 길로 갑니다. 우상, 사신을 섬깁니다. 길을 잃은 다음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잘못된 길로 갑니다. 이방인이 잘못된 길로 걸어간 결과는 죽는 것이요 영원한 멸망을 당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16:25주님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다른 모든 길은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예수님을 전도하는 것은 길 찾아주기 운동입니다. 허망한 마음을 품고 잘못된 길을 걷는 자에게 바른길을 찾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 길을 받아 들였고, 그 길을 따라 생명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허망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아무리 권고해도 듣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빈집에는 우환이 있습니다. 도둑이 와서 다 훔쳐갑니다. 집을 비워 놓으면 폐가가 되어 온갖 들짐승이 들어와 폐가가 됩니다. 주인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집이고, 집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주인이 있는 집은 잘 보존되고 아름답게 가꾸어집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주인이 없는 집은 망가집니다. 온갖 불행과 슬픔이 옵니다. 우리는 주인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주인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갖 허망한 일을 다 합니다. 그러므로 빈집의 우환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을 의지하면, 영생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땅에서 염려 근심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예수 믿고 사는 것이 너무 너무 좋습니다.
예수님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그 마음에 주인이 없어 마음이 텅 빈 허망한 일을 행함같이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4:18마음의 생각이 허망해지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첫째, 총명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이방인은 길을 잃고 마음의 생각이 허망해진 결과 총명이 어두워졌습니다.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사는 길인지 죽는 길인지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분별력을 잃어버리면 큰 문제가 됩니다. 치매에 걸리면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부모와 형제와 처자도 분별 못합니다. 심지어 자기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나중엔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분별 못합니다. 밥을 입어 넣고도 씹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집을 나가면 집도 찾아오지 못합니다.
영적 치매에 걸린 사람이 바로 불신자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분별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길, 사망의 길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축복의 길, 저주의 길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참과 거짓,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문제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분별하지 못하면 투자하지 말아야 할 곳에 투자하여 망합니다. 남편이 분별하지 못하면 남의 빚 보증을 하여 처자를 길거리에 내보냅니다.
총명이 어두워지면 큰일 나는데, 이방인은 총명이 어두워져 영생을 보고, 천국을 보고도 가지 않습니다. 지옥 불이 활활 타는데 그리로 걸어갑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엔 물이 천천히 조용히 흐릅니다. 그러나 하류로 갈수록 급류가 되고 마침내 폭포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지식이 없는 젊은 연인이 뱃놀이하고 술을 먹고 잠이 들었습니다. 강 연안에 있는 사람이 이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고함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고함을 치지’ 하며 그냥 즐겼습니다. 이제 물살이 빨라져 보트가 심히 흔들릴 때에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분별을 해도 처치할 시간이 없어서 죽었습니다.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분별력이 총명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총명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총명을 주십니다. 지혜와 총명은 부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 하면 두 마디 알아듣는 자녀가 있는가하면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 듣는 자녀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거듭납니다. 새로 태어나서, 육신의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지혜와 총명을 성령으로부터 받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남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예수 믿을 때 주어지는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총명을 주십니다. 부모에게 받는 총명보다 하나님께 받는 총명이 더 귀합니다. 영원한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2025년 12월 25일 오전 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