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북한 선교를 위하여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그 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를 세워주셔서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창50:22-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창50:22-23요셉이 죽을 때의 나이가 110세라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까 무려 80년간 애굽의 총리로 부귀와 영화를 누린 것입니다. 요셉이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에 양식을 사러 온 형들을 만났을 때가 7년 풍년이 끝나고 극심한 흉년이든지 2년째 되는 해이니까, 요셉이 39세가 되던 해입니다. 그 해에 형님들을 만나서 온 가족을 초청해서 애굽 땅에 모셨으니 부모 형제들을 모신 것이 무려 72년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와서 147세에 죽었으니 17년간 마음껏 효도했고, 형들은 72년간 사랑하며 섬기다가 죽은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된 후에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는데 요셉은 110세를 살며 에브라함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미길의 아들들로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습니다.
"므낫세의 아들들 그 처의 소생은 아스리엘이요 그 첩 아람 여인의 소생은 길르앗의 아비 마길이니"
대상7:14므낫세의 첩 아람 여인의 소생 길르앗의 아비 마길까지도 요셉이 다 양육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와 같이 손자, 증손자, 고손자까지 자신이 양육함으로 신앙을 전수했던 것입니다. 고난 중에 뿌린 씨앗들을 아름답게 거두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관심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을 지키고 전수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창46:33-34여러분, 신앙에는 구별됨과 양육이 중요합니다. 구별됨이 없이 섞이고, 양육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신앙이 죽습니다. 자식을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육체는 먹을 것만 주면 자라지만 신앙은 양육하지 않으면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의 위대함은 페르시아의 술 관원장이라는 높은 자리를 내려놓고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해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벽 재건 후에 에스라와 도움을 받아서 신앙 재건에 힘쓴 것에 있습니다.
에스라의 위대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스7:6"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7:10요셉의 풍성한 가을이 우연하게 온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에게 찾아온 풍요로운 가을은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여름에 부지런히 돌본 결과였습니다. 뜨거운 태양 볕을 잘 통과하고 고난의 용광로를 이겨낸 결과였습니다. 많은 준비가 가져온 결과였던 것입니다.
요셉은 피와 땀을 흘려 맺은 열매를 혼자서 먹지 않았습니다. 그 열매를 나눌 줄 알았습니다. 그는 성공을 섬김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형통을 넘어서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당시 애굽 백성뿐 아니라 기근으로 죽어가는 열방을 도왔습니다. 또한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가족들까지도 돕는 일을 했습니다.
요셉 생애의 마지막은 처음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았습니다. 그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원한을 갚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고 베풀어주었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그가 꿈을 성취했다거나 애굽의 총리로 성공했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위대함을 그의 고상한 인격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앙 속에 있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꿈의 완성은 사건이나 성취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꿈꾸는 사람의 인격 속에 나타납니다.
본문은 요셉의 생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겨울을 얼마나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끝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이 위대한 인물입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요셉은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힘을 비축해 둔 마라토너와 같이 최후의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요셉을 요셉되게 했던 마지막 순간들이 우리 앞에 전개됩니다. 요셉의 마지막 생애에 볼 수 있는 그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요셉 생애의 절정은 용서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20-21요셉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 자녀들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인생의 시작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생이란 집을 짓는 건축가들은 시작부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잘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를 꿸 곳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출발을 한 사람은 이미 높은 건물의 튼튼한 기초를 가진 사람과 같습니다. 좋은 출발은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떠난 기차와 같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이 잘 설정된 다음에 노력이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입니다. 이것이 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작만큼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끝마무리를 잘하는 지도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을 두려워합니다. 성공 후에 쓰러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생애는 출발뿐만 아니라 마지막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믿음입니다.
요셉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입니다. 탁월한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요? 믿음입니다.
요셉은 믿음이 있었기에 승리했고 형통했고 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 끈기 있는 사람, 인내하는 사람,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믿음이 요셉을 감옥에서 건져내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믿음이 마땅히 미워해야 할 형제들, 보복해야 할 형제들에게 오히려 사랑을 베풀게 했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섬기게 했습니다.
요셉이 붙잡았던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을 붙잡았던 것도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를 용기 있게 하고 슬기롭게 한 것도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그를 강하게 했습니다. 믿음이 그에게 승리를 환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요셉의 승리는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재능이 있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의지할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애를 전적으로 의탁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히11장을 가리켜 믿음의 전당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믿음의 전당은 있어도 사랑의 전당은 없습니다. 사랑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보다 믿음을 찾으십니다. 소망도 사랑도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히1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승리의 비결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갖기 시작하는 날부터 인생이 시작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20대 부터도, 40대부터도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믿는 날부터 시작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인생은 십자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17세에 시작되고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75세부터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 구체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구체적인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가 그의 꿈에 나타납니다. 그가 꿈을 가졌다는 것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히11:1에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꿈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당장 현실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장차 이루어진 어떤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지만 미래 지향적입니다. 믿음과 꿈은 함께 갑니다. 믿음이란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위대한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장차 되어질 일을 보는 눈입니다. 아직 실현되지 않는 일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셉의 꿈은 그의 믿음에 근거했습니다. 그 꿈은 정말로 생동감이 있었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마감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번 그의 꿈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37:6-9얼마나 구체적입니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요셉의 꿈은 그의 형제들이 들을 때는 기분 나뿐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꿈이었기 때문에 선포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꿈을 꿉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비전을 보고 내일을 향해 과감하게 나아갑니다. 요셉은 17세의 나이에 믿음으로 그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첫 출발을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한 인생에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걸어갈 때 그의 인생에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의 길을 떠나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을 13년이란 긴 세월 동안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침묵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기간 동안 아브라함에 대해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은 결코 안락하거나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그 길에는 모험이 있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고, 새로운 인생의 경험이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떠나야 하고, 버려야하고 비워야 합니다. 믿음의 방향으로 걸어가기 위해 다른 모든 방향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한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며, 무명의 존재를 유명의 존재로 변화시켜 줍니다.
요셉의 믿음이 처음부터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은 믿음을 소중하게 가꾸는 가운데 그의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한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믿음을 크게 보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17:20작은 겨자씨가 생명입니다. 씨는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씨는 변화됩니다. 씨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겨자씨처럼 작습니다. 그러나 그 겨자씨만한 믿음이 놀라운 미래를 창조합니다.
요셉의 믿음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신념이나 자기 암시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바로가 그의 꿈을 해석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꿈을 해석하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41:15-16요셉의 생각과 언어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사람을 움직이시고 역사를 움직이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요셉이 소유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주만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듯이 요셉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요셉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고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놀라운 복을 받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25년 11월 6일 오전 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