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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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이단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1.

세상과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이단 세력들의 거짓된 정체를 밝히 드러내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열방이 알게 하소서.

2.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가려진 눈과 귀가 열려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도들이 거짓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의 능력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3.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 그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14-2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50:14-15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고센 땅으로 돌아오자 요셉의 형제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보호막이 되었는데 이제 보호막이 깨어졌다고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자기들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형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보십시오. 왜 그들이 보복을 두려워합니까? 그때까지도 요셉의 용서를 믿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창45:4-13

그들이 애굽에 내려와서 무려 17년간 요셉의 사랑을 받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용서를 믿지 못하니 그들의 심층에 깔린 죄의식이 마지막까지 그들을 괴롭힙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씁니다.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아버지 야곱을 닮아서 머리를 쓰고 말을 만들어 내는 데는 천재적입니다.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50:16-17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은 용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수준으로 생각하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려고 하는 대로 봅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봅니다. 경험이라는 안경을 쓰고 사물과 사건을 봅니다. 자신이 이해한 만큼 다른 사람을 이해합니다.

형제들의 생각 속에는 자신이 요셉이라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수준으로 요셉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요셉의 형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심은 무섭습니다. 모든 것을 흔들어 놓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의심은 마치 배신자와도 같다. 무언가 시도하기를 두려워하게 하여 결국은 우리가 시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잃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의심하면 후퇴하게 됩니다. 의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잃는 것 뿐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의 용서를 의심한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고 용서를 누리지 못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용서의 확신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설령 용서를 받았다 할지라도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고통 중에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내가 고통 받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무서운 오해가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용서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에 하나님은 괴로워 하십니다. 용서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했건만 십자가의 용서 앞으로 나아오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가슴 아파 하십니다.

요셉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형제들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그들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50:17

18절은 요셉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창50:18

요셉의 형들이 그에게 엎드려서 종이라고 말합니다. 눅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와 같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면서 아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책감 때문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15:18-19

죄는 자기 신분과 존재 가치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합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미워해야 할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는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닙니다. 심리적 현상이 아닙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원흉이요, 관계를 깨뜨리고 파괴하는 세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때문에 움츠리고 있는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알아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들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라고 말씀합니다."

눅15:20

아버지의 입맞춤은 용서의 표시입니다. 용납의 표시입니다.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아들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15:21

아들임에도 아들의 신분을 누리지 못하고 종의 하나로 생각하는 탕자의 모습을 보십시오.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이것이 요셉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친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그런 형제들은 온전히 용서합니다.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마음껏 축복합니다. 요셉도 인간인데 어떻게 형제들을 온전히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19-20

2025년 11월 2일 오후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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