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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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시니어 세대를 위하여

1.

시니어 세대의 현재 삶이 지나온 삶보다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시고 기도와 섬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영육간에 강건케 하소서

2.

시니어 세대에게 주신 영성과 지혜를 사용하여 돌봄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 사역의 주체가 되게 하여 꿈꾸는 시니어가 되게 하소서

3.

시니어 세대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여 다음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셔서 성숙한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 쓰임받게 하소서.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창49:22-2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

여기서 말하는 샘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닙니다. 땅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Spring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생명의 뿌리를 박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샘에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터진 웅덩이를 파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터진 웅덩이를 파지 말고 샘 곁에 무성한 가지,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웅덩이를 파지 마십시오. 그 웅덩이 물은 곧 마르고 말 것입니다. 터진 웅덩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7:37-38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은 날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 같은 인생에서 목마르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푸르고 번성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과 능력으로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담을 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방법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샘 곁에 심기기만 하면 됩니다. 나무는 아무리 매일 물을 주고 양분을 주어도 샘 곁에 심긴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복을 흘려보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창49:23-24

요셉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요셉의 주위에 많았습니다. 그들은 적개심을 가지고 요셉을 학대했습니다. 마치 활을 겨누듯 요셉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더 강했습니다. 요셉은 전능자의 손을 힘입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을 붙들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패배케 하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우리가 전능자의 도우심을 경험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6-37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려움들을 우리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력으로는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리 떼 가운데 있는 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세요. 요셉의 형들은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요셉의 힘으로는 그것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 요셉을 빼내셨습니다.

전능자의 손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을 보면, 전능자의 손이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손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39:1-3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39:20-21

요셉의 삶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 열심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합니다. 99% 될 것 같았던 일이 안 되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그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안 될 것 같아서 눈물 흘리고 금식하며 기도해서 잘 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입술에서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창49:25-26

요셉이 무성한 가지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은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은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환경과 여건이 좋았기 때문입니까? 부자 아버지를 만나서 최고의 여건에서 죽자 살자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분명 부자인 것은 맞습니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여 채색옷을 입혀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을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들이 미워하여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애굽에서 노예로 꼬리 없는 짐승처럼 취급을 당하며 살아야했습니다. 그런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셉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요?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합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39:3-4

요셉이 요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창49:25

요셉의 형통은 좋은 여건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입니다. 처절한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형통입니다.

요셉의 형통에 대해서 성경이 기록했던 시점에 주목하면 그리스도인의 형통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 근본부터 달라집니다. 그 시점은 애굽의 총리가 된 때도 아니고, 귀족 여인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던 때도 아니며, 애굽의 실권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화려한 때가 아닙니다. 가장 초라하고, 가장 비참하고, 세상에서 버림받았던 고난의 때였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3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39:21-23

위의 두 상황이 어떤 때인지 아십니까? 처음은,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도단의 마른 물구덩이에 버려졌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의 손을 거쳐서,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던 시점이고, 나중은 보디발의 아내가 넌지시 던진 성적 유혹을 뿌리친 꽤심죄로 감옥에 갇힌 때입니다.

야곱의 총애를 받던 귀공자 요셉이 이방의 비천한 종이 되고, 마침내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힌 고난의 시점을 성경은 이처럼 형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거룩한 형통은 세상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고난이 축복과 형통을 위한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엄연히 형통은 형통이고 고난은 고난입니다. 고난 자체가 가치롭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낸 승리가 비로소 값지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요셉이 겪었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성경이 그를 두고 형통하다고 말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토록 처절한 순간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성경은 요셉이 형통하다 라고 거침없이 말했던 것입니다.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 다시 반복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만사형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시기를 받지 않았다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지 않았더라면,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애굽 왕 바로와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애굽의 총리가 돼서 고센 땅에 히브리 민족을 세우고, 마침내 선민 이스라엘을 세우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처절한 고난의 때가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인생의 칠흑같은 암흑기이지만, 영의 눈으로 볼 때는 찬란한 승리를 위한 태동의 시기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성경에서 일컫는 형통은 흔히 생각하듯이 세상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도구 삼아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 고난은 그 자체로서 저주가 아니라 진정한 형통을 위한 시험의 때이며, 연단의 때이며, 준비의 때입니다.

지금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주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오. 주와 동행 하십시오. 그럴 때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시는 형통의 아름다운 전주일 수 있습니다.

2025년 10월 26일 오후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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