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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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1나라를 지키며 정의와 평화를 힘쓰는 국군 장병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모든 훈련 가운데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셔서 군 생활을 잘 마치게 하소서

2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이 영적 광야인 군대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고 이들을 통해 군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3각 부대에 신실한 군목과 군종 사병이 세워져 군 생활 중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장병이 늘어나게 하시며 지역 교회와 군인교회가 연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소서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

요셉이 어떤 점에서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입니까?

1그 가지가 자신을 넘어 가족들을 구원하고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창47:1,2

요셉은 기근 중에 있는 가족들을 초청하여 바로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 가족들이 애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로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요셉은 그 가족들이 애굽에서 정착하여 잘 먹고 잘 사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이 애굽 생활에 동화되지 않고 나중에 출애굽하기에 가장 용이한 땅을 추천하였습니다. 그 땅은 바로 가나안 땅과 가까운 고센지역이었습니다. 이로서 요셉은 기근 중에 허덕이던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400년 후에 출애굽할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요셉은 단지 자신만의 성공을 꿈꾸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 가족들만 요직에 앉히는 가족중심의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미래를 대비하는 그 시대의 선구자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2인자로서 얼마든지 자신의 가족들을 애굽의 상류사회에 진출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애굽인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목축업자들이라고 의도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목표가 애굽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가족들이 애굽화 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때문에 애굽인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비록 애굽의 옷을 입고, 애굽의 음식을 먹으며, 애굽의 언어를 쓰고 살았지만, 그의 신앙과 사상은 조금도 애굽화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요셉에게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identity를 샘물처럼 공급해 주셨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가? 하나님이 왜 나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을까? 그것은 장차 우리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데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라는 사명감을 주님께서 심어 주신 것입니다.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게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200만명이 되었습니다. 애굽에 들어올 때에 70명밖에 되지 않던 그들이 무려 200만이 됩니다. 그 어마어마한 백성들의 숫자는 요셉이라는 무성한 가지에 달린 열매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수지방에 가면 유난히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약 지역주민의 3, 40%가 신자라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우리 지방에 애양원이 있기 때문이죠.’하더랍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한 분의 영향력이 그 지역을 넓게 덮고 있다는 것입니다.

2그 가지가 이웃과 애굽을 넘어 만민의 생명을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39: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리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41:55-57

요셉은 창고에 곡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곡식을 퍼서 주지 않았습니다. 정당하게 댓가를 지불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부재정도 탄탄하게 하고 백성들도 기근의 때에 절약하며 살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이 없었다면 애굽은 풍요의 때에 흥청 망청대다가 흉년의 때에 양식 때문에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요셉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생명을 보존하게 된 것입니다.

3요셉의 인격이 성령의 열매가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이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하고’ 그들은 요셉을 찾아와서 엎드려서 간구하였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는 다 당신의 종이니이다’

그들은 요셉의 호의로 애굽에 들어와서 산지 벌써 17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요셉은 그들에게 지난날의 과오를 언급한다든지 서운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아직까지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요셉은 울면서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50:19

요셉은 ‘형님들, 걱정 마세요. 저는 이미 형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다 잊어버리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깊은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주권신앙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지금 애굽의 2인자가 되어 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왕 노릇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마음이 조금도 높아지거나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자신의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 말은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내가 무슨 정죄를 하고 용서를 한단 말입니까?’ 그런 뜻입니다.

인간의 불행이 대체로 어디서 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심판하고 정죄하고 좌지우지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술수와 음모를 꾸며도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으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형들도, 보디발도,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을 미워해서 없애버리고자 했지만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다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주권과 뜻을 가지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신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각자에 대한 선한 섭리를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

이 하나님의 주권과 뜻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물줄기는 누구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사 당신의 섭리가 성취되게 하십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아무리 다윗을 죽이고자 해도 안 되었습니다.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고자 두 살 아래 어린아이를 다 죽이면서까지 발악을 해보았지만 안 되었습니다. 바로가 히브리 민족을 없애 버리고자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지만 안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남자 아이를 다 나일강에 버려 죽이라고 했는데 그 버려진 아이를 자신의 딸이 데려다 키워서 나중에 출애굽 역사의 주역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리며 갖은 모략을 꾸며도 하나님의 손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까지도 바꾸셔서 마침내 선을 이루고야 마는 분이십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이것은 요셉의 깊은 체험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요셉을 제거하고자 온갖 나쁜 짓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악을 바꾸사 요셉의 인생을 이전보다 더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노예를 바꾸어 가정총무가 되게 하신 하나님, 죄수를 바꾸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 악을 바꾸어 선이 되게 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은 얼마나 신묘막측하신 분이십니까?

누가 감히 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요셉의 인생의 주위에 담장을 높이 높이 쌓아 두어도 그 인생의 뿌리까지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요셉의 인생을 짓밟고 또 짓밟아도 그 마음 깊은 곳 속에 뿌리 내려진 믿음까지 억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요셉을 더 강하게 짓밟으면 짓밟을수록 요셉의 인생나무는 더 깊이 깊이 하나님을 향하여 뿌리를 뻗혔습니다. 그리고 저 땅속 깊이에서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양분의 진액을 받아서 정말 진국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시련을 다 거치고 난 요셉의 내면은 모든 원수들까지 다 품고도 남을만한 큰 거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이기심과 탐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무덤에 집어넣고 큰 돌로 막아서 절대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무덤에 계신 예수님을 일으키사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담장을 뛰어 넘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을 바꾸어 모퉁이에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행4:11).

로마 사람들은 사도 요한을 묶어두기 위해서 밧모섬에 유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유배지에서 환상을 보고 요한계시록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영국의 국교회는 청교도 설교자 죤 번연의 입을 막기 위해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감옥을 그의 서재로 바꾸사 기독교 명작 천로역정을 집필하도록 하셨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간교한 하만이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다 죽이기 위해서 모략을 꾸밉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하만의 악한 계략을 선으로 바꾸사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존귀케 하시고 하만은 자기가 만든 장대에 매달려 죽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와 주권을 믿으면 때 그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운명을 탓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작은 일에 상처를 받고 자잘한 일에 얽매여서 아웅다웅 살아갑니까? 요셉과 같이 하나님 편에서 인생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 편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의 틀 속에서 사건과 사람들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을 조금도 미워하거나 앙심을 품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뒤에도 전혀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선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원수들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그들의 자녀까지 자신이 거두어서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지못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했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의 인생은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무성한 가지와도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 나오는 9가지 성령 열매가 요셉의 내면에 고루고루 맺혀져 있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요셉은 이 모든 성령의 열매를 다 소유한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열매를 자기만 누린 것이 아니라 담장너머 가족들과 민족과 만민을 위해 베푸는 복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처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요셉이 샘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5년 10월 25일 오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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