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국제적인 경기 침체가 하루속히 안정되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컨텐츠를 제작해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창49: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납달리는 암사슴입니다. 갇혀 있는 암사슴이 아니라 놓인 암사슴입니다.
동물학자들은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짐승 중의 하나가 사슴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슴이라는 이미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것으로 부각되어 있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림을 보기만 해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사슴 중에도 암사슴은 더욱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 사슴이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아름다운 자태를 과시하며 산등성 위로 목적지를 향해서 날렵한 모습으로 달려가는 암사슴의 멋진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문은 이 사슴을 가리켜 놓여있는 암사슴이라고 말합니다. 암사슴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오. 한때는 갇혀 있다가 방금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사냥꾼에게 잡혀서 갇혀 있어서 자유를 상실하고 괴로워하던 사슴이 방금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의 이 사슴은 얼마나 신나게 달려가겠습니까? 더구나 뛰어가면서 본문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발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후대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성경의 기자들이 성경에서 암사슴의 이미지를 어떤 사건을 묘사할 때 사용했는가를 연구해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시18:33시편 기자는 자신의 발로 암사슴의 발같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놓은 곳에 세우소서라고 고백합니다.
"갓 사람 중에서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대상12:8이렇게 빠른 사슴이 산등성을 아주 날렵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슴은 고개를 떨구고 골짜기를 걸어가는 사슴이 아니라 높은 곳을 향하여 달라가는 암사슴입니다.
이 말씀은 사슴의 동작과 그 사슴의 달려 나가고 있는 상태를 산등성을 자유스러운 모습으로 날렵하게 달리면서 그 늘씬한 다리로 멋지게 달려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기록한 이 사슴은 주여, 내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서 멋지게 뛰어가는 암사슴처럼 내 발을 높은 곳에 세워 주시옵소서 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기도를 말할 때 암사슴의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암사슴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인 자유를 상징할 때 쓰여 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얽매인 것이 하나도 없이, 꾀나 어리석은 습관이나 무지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주께서 내게 허락하신 참 자유함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암사슴의 자유롭고도 풍성한 삶의 영적인 이미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슴이 묘사되어 있는 또 하나의 말씀은 하박국 3:19입니다.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리로다
시편의 말씀과 하박국의 이 말씀은 서로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슴의 이미지를 꼭 같은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암사슴의 이미지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서야 할 길에 서서 마땅히 달려 나가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이 달려가는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납달리를 향해서 축복하고 있는 장면에서 납달리 지파가 암사슴처럼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은 아름다운 소리, 즐거운 소리, 아름다운 소식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생애를 통해서 가장 효과적인 사역을 하신 곳이 바로 납달리 지역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를 지나시다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가 바로 납달리 지역입니다.
야곱은 납달리 지파를 축복하면서 아름다운 소식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납달리 지파가 살고 있는 지역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하시고 또한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다는 것과 어떤 의미에서 우연이 아닌 야곱의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모세는 이 지파를 향해서 어떤 축복을 했습니까?
"납달리에 대해서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야훼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신33:23납달리 지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이 갈릴리 호수 북서부의 대부분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은 강우량도 많고, 기후도 좋습니다. 따라서 땅도 비옥한 곳이기에 축복의 땅이라 불릴 만한 곳이었습니다. 곡물과 올리브 그리고 포도와 여러 과수가 풍성하게 소출을 내었고, 갈릴리 호수 주위에는 아열대성 식물이 번성하여 그 경관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이와 같은 축복의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득 받은 지파였습니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좋은 위치는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 강한 요새를 세우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납달리는 그 지역의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내쫓지 않고 그들을 강제노역에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꾀를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차츰 그들의 우상숭배를 배워 물들어 갔습니다.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수23:12-13결국 납달리는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만약 그들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을 힘껏 의지했더라면 좋은 지역에서 번영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왕하15:29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납달리 지파를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번 택한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납달리 지파에게 소망을 주시는 구원의 빛에 대해 예언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 중에 고통과 멸시를 당했던 납달리 땅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영화란 납달리에서 큰 빛이 비칠 것이라는 표현인데,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빛이 갈릴리 곧 납달리 땅에서 비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한때는 축복의 땅이었지만, 죄악으로 흑암이 가득한 그 곳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베푸사 그 곳에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고통과 흑암이 가득한 납달리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곳에 소망과 위로의 복음을 전파하사 납달리에 가득한 흑암을 거두시고, 고통을 치유하시고, 아픔을 싸매 주시었습니다. 이제 메시야의 빛이 찬란하게 비친 납달리 땅은 오직 찬란한 빛만을 소유하고, 그 빛을 온 땅에 전파하는 복음의 전초 기지가 되는 축복을 다시금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4:23성지에 가 보면 납달리 지역 남쪽으로 내려가면 광야 지대가 많아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브엘세바 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21:33이렇게 브엘세바에서 하나님만 힘껏 의지하고 살았던 아브라함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르호봇이 좋아도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창26:22-24수목한계선이 있듯이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한계선이 바로 브엘세바입니다. 이곳은 지금도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인 베두윈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쪽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광야입니다. 물이 귀한 거친 불모의 광야 지대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북쪽 방향인 갈릴리 바다를 향해서 올라갈수록 물과 나무가 많고 마을이 깨끗하여 살기가 좋습니다.
이런 사실을 연상해 보면서 모세가 납달리를 향해서 예언한 축복을 읽어보면 더욱 실감이 나게 될 것입니다.
"은혜가 족하고 야훼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신33:23이 예언대로 납달리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따뜻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열매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지역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 안에는 가버나움과 벳세다가 포함되어 있으며 변화산과 같은 많은 산들도 다 이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문의 예언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좋은 배경 속에서 태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납달리를 저주하시지 않고 복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이것이 있었기에 바울이 바울되게 한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9-10하나님은 기생인 라합을 사용하시고, 기생의 아들인 입다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하실 사람은 없습니다. 마른 막대기 (아론)도 사용하시고, 보리떡 (기드온)도 사용하시고,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내가 복음에 바로 응답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를 우리는 이스라엘의 두 지역을 대조하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시고 자라신 곳은 나사렛입니다. 태어나시기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자라기는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역사가 나타나지 않은 곳이 나사렛 지방입니다.
"거기서는 (나사렛)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막6:5그 이유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곳 사람들이 복음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가까운 자리에서 예수님을 관찰하면서 예수님이 성장하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을 볼 수 없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저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해서 구세주라는 말인가라는 의식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13:54-58납달리 지역은 천한 출신의 사람들의 후예가 모여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잘못된 출생을 배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께서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8복을 설교하신 곳도 이곳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던 곳도 이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출신은 천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아름다운 신화를 창조하는 위대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 납달리와 납달리 지파를 통한 하나님의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개 주신 이 복음 앞에. 이 진리 앞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말씀 앞에 응답하고 계십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 제가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까? 제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이런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습니까? 그렇게 할 때에 과거에 자만했던 납달리였지만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잘못을 범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 내가 주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오늘 주님의 말씀 앞에 바르게 응답함으로 납달리 지파가 다시 받은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10월 24일 오전 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