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역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소서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인정받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창49: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납달리의 출산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서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창30:7-8라헬과 레아 두 여인은 시녀들까지 동원하여 아들 낳기 경쟁을 하는 광경을 지금까지 성경을 통해서 보아 왔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계속되다가 드디어 라헬의 시녀 빌하가 낳은 아들이 단과 납달리입니다. 빌하가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라헬이 기뻐하면서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습니다. 납달리라는 이름은 뜻은 경쟁함, 씨름함입니다.
씨름, 경쟁, 누구와 겨루는 경쟁 심리 그 자체는 좋은 것이라 말할 수도 있고,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좋을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라헬의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이런 유형의 경쟁을 기독교적인 안목에서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들을 낳기 위한 경쟁에서 라헬은 부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계획을 관철하기는 했습니다. 자신의 육적인 방법, 자신의 인간적인 계획과 꾀를 통해서 아들을 하나 더 얻는 일에는 라헬이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도록 허용하신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으로서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우리의 삶을 향한 최선의 뜻을 가리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무엇을 달라고 자꾸만 조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비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런 뜻을 가리켜서 허용적인 뜻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호13:11"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삼상8:6-8"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삼상12:12-19"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진멸시킴)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민22:2-2그리하여 꾀를 내기를 발람 선지자를 불러서 저주시키려고 신하의 손에 많은 돈을 줘서 보냅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민22:9-12그리하여 못가겠다고 하니까 모압 왕의 더 높은 신하를 보냅니다. 돈이 눈이 어두운 발람이 하나님께 떼를 쓰니까 하나님이 마지 못해 가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말 못하는 나귀를 통하여 책망하십니다. 그럼에도 모압에 갔던 발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압 왕이 이르기를)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민24:11"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수13:22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약속하셨건만, 아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끝나가는 데도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기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사라의 발상에 의해서 인간으로서의 능력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아들을 낳아 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신의 시녀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으라고 남편에게 권면합니다. 그 결과로 사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 아들의 이름이 이스마엘 입니다. 이 이스마엘은 현재 아랍 사람들의 시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아랍 사람들이 현재에도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서,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역사적인 갈등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그 유래는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잘못된 결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아랍 사람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같은 조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그 피비린내 나는 갈등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까?
그런 경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이 상황과 환경을 허용하시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최선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사실 그것 대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잘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아픔과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히 납달리의 경우는 하나님의 사랑이 납달리에게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12 아들 가운데서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납달리와 같이 인간적인 방법, 인간의 계획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나 애정을 사들일 수는 결코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날달리의 출생 전후 배경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인간적인 계획과 사람의 의지를 따라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도할 때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결코 유익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 부분이 바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고입니다. 납달리의 출생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러한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그가 태어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잘못된 경쟁 심리가 얼마나 유해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역사 속에는 좋은 의미의 선한 경쟁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보다 잘 믿어 보려는 경쟁, 우리 교회도 에베소 교회처럼 성령 충만을 받아서 라스팔마스와 온 스페인과 유럽과 아프리카에 영향을 끼쳐야 하겠다 하는 경쟁은 얼마나 아름다운 경쟁입니까? 기도를 더 많이 하려는 경쟁 또한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2025년 10월 23일 오전 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