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를 위하여
전 세계 80억 명의 영혼들, 특별히 6,500여 미전도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리 전파되게 하시고 방황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가 열방 곳곳에 세워지게 하소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교회들이 회복되며 원주민 선교지마다 현지인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자연 재해와 내전,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비와 평안을 베풀어 주시고 각 나라가 연합하여 상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창49: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창49:13여러분, 스불론의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요? 창30:20절에 보면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거함, 동거)이라 하였으며
여러분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레아가 워낙 못생겨가지고 야곱이 오질 않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외롭습니다. 그래서 남편하고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 합환채를 준비해가지고 어여쁜 라헬에게 합환채를 주고 오늘밤은 내가 남편을 샀다하고 동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잇사갈입니다. 그런데 웬일로 잇사갈이 태어난 다음에 야곱이 합환채도 준비 안했는데 자기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스불론 입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자기를 찾아와주는, 그 동거의 감격을 레아가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이제는 남편이 나와 동거하리로다’ 하고 이름을 스불론(거함, 동거)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스불론의 뜻은 ‘동거’입니다.
레아가 스불론을 가리켜 말한 스불론의 의미, 가치가 ‘후한 선물’이라면, 스불론의 진짜 말뜻은 '거함, 동거'입니다.
여러분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에 비해서 받은 놀라운 은혜 중에 한 가지가 뭐냐하면 ‘동거’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유명해지고 스타가 되면 그 사람 얼굴 보기도 힘들고 만나기도 힘들고 가족인지 남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은 지겹도록 만납니다. 매일 어디가지도 않고 집에 들어옵니다.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은혜인지 아십니까? 매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실제로 스불론 지파는 늘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함께 동거 하는 귀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사시대에 가나안 왕 야빈이나, 미디안 군대 같은 강력한 군대들이 쳐들어 왔을 때 다들 두려워 떨고 있는데 이 스불론 지파는 아주 용맹스럽게 나아와서 자기의 동족들을 지킨 이야기가 삿4장과 6장에 나옵니다.
이 스불론 지파는 출애굽 이후에 광야를 지나가게 될 때, 성막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사면에 세 지파씩 진을 치고 있습니다. 성막 동쪽에 진을 친 세 지파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스불론 지파입니다.
성막의 동쪽은 뭐를 의미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성전 문도 정문도 동쪽(해 뜨는 쪽)에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스불론 평범한 삶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 다윗이 헤브론의 왕으로 임명이 될 때 사울왕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아브넬 장군에 의해서 이스라엘 왕으로 옹립되게 됩니다. 이스라엘 10 지파들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모시고 떠받들 때에 다윗은 왕으로 헤브론에서 임명이 되었지만 너무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때 놀랍게 스불론에서 5만 명의 정예 군사들이 파견이 되서 다윗을 보호합니다. 다윗과 끝까지 함께합니다. 그것을 대상 12장 3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스불론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대상12:33스불론 중에서 정예 군사들이 다윗에게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뭐라고요?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이렇게 나옵니다.
여러분, 누구와 동거할 때에 두 마음 품는 사람하고 만나면 불안해서 못삽니다. ‘무슨 꿍꿍이 속이 있을까...’ 근데 평범한 사람들은 두 마음을 품을 머리가 안됩니다. 그런데 특별한 사람들, 재주가 비상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은 두 마음을 꼭 품고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133:1-3하나님이 언제 우리에게 복을 명령하신다고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동거의 복이 따르는 것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남편도 아내도 결국은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고 다 떠나가게 됩니다. 결국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진정으로 원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요14:2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와 함께 있게 하겠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너희들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서 하늘나라에 가서 미리 집지어 놓고 기다린다. 다 준비해 놓은 후에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소원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뭐라고요?"
마1:23임마누엘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결국은 인생의 최고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영성의 최고의 단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 복을 지금 스불론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30년 전의 예언입니다."
사9:1절은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예전에 멸시를 당했던 그 스불론 땅이 나중에 영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영화롭게 될까요? 예수님 때문입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4:13예수님 자라나신 곳 나사렛을 떠나 어디로 가서 사셨다고요?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임마누엘 예수님이 오셔서 스불론에 가서 사시다니요. 스불론 땅은 갈릴리 지역입니다. 그 곳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외진 곳입니다.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예수님이 가서 사신 것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창49:13을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배 매는 해변 이라는 곳은 어부들이 작업하고 있는 곳입니다. 직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 예수님이 살기 위해서 가셨습니다. 자라나신 곳 나사렛을 떠나서 낯선 땅 스불론으로 가셔서 사신 것입니다. 야곱의 예언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같이 동거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이 스불론 땅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게도 마14:4~17절을 보면 예수님의 복음의 전파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면 스불론 땅에서 시작이 됩니다.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그 만큼 위태롭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지만 그 은혜를 잘 지켜야 됩니다. 다시 한번 1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 리로다.
경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이 내게 설정해 놓으신 경계가 있습니다. 넘어서서는 안 되는 그런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후한 선물을 주셨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동거의 은혜가 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줄 알고. 경계선을 그어놔야 합니다.
그 경계가 어디입니까?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 리로다
그 시돈이란 이름의 뜻이 뭐냐면, 노략물이라는 뜻입니다. 후한 선물이 노략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계선이 무너지면 바로 노략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게 주신 그 후한 것을 다 빼앗기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선은 시돈이리라. 이 말을 잊지 않아야 됩니다.
이 시돈이라는 곳이 왜 우리의 모든 후한 선물을 무너뜨리는가요? 이 시돈은 베니게의 옛 도시 이름입니다. 엄청나게 상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돈 땅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우상숭배 지역입니다. 이방 지역입니다.
결국은 솔로몬 왕이 이방 왕족과 정략결혼 하면서 시돈에 있는 여인들을 데려오게 되고, 나중에 아합 왕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들여오는 바람에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가 아주 공식화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과의 동거가 깨어지게 됩니다. 그 경계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서 후한 선물들이 다 저주로 바뀌게 됩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지만, 크리스천으로써 내가 하지 말아야 될 것과 할 것이 분명히 선이 그어져있어야 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복을 주시고 후한 선물을 주시고, 각종 실과를 마음대로 먹으라 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엔 죽으리라 했습니다.
그 경계선을 허물고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다가 결국은 쫓겨난 것입니다. 좋은 선물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평범한 삶을 살 때 은혜와 감격이 넘쳐가 되겠지만,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안됩니다.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우상을 섬기면 안됩니다. 내 자신이 우상화 되서도 안되고, 남을 우상화 시켜서도 안됩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 있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당대 거부가 된 사람 중에 깁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깁슨이란 사람은 물레방앗간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훌륭한 거부가 됩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서 찾아온 기자가 물어봅니다.
‘그렇게 훌륭한 거부가 되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랬더니 깁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것. 두번째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매사에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너무 기가 막혀서
‘그런데 그건 누구나 아는 평범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때 깁슨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못 됩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일이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특별한 것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평범하게 순종하고 살면 그 평범함 속에 비범한 은혜들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걸 실천하지 않고 말씀의 경계를 넘어가고 범죄하니까 평범한 사람이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그 동안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존재 자체가 이렇게 소중하고 내 자체가 후한 선물이고, 내 자식이 후한 선물이고, 내 이웃이 선물인 것 깨닫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거하고 가족과 동거할 수 있고, 형제와 동거할 수 있고, 교우들과 동거할 수 있는 은혜주신 것 너무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영원히 주님과 동거하게 하시고, 주님이 정하신 경계선 넘지 않게 하시고, 평범함 속에 있는 놀라운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저희가 되게 해주옵소서. 다시는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경계선을 분명히 갖게 하여 주셔서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며 복을 누리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