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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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1.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으로 무장되어 열방의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소서.

2.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소외받지 않고 이 나라의 귀한 보배가 되게 하소서.

3.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49:5-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49:5-6

야곱에게는 4명의 부인이 있었고, 1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레아는 첫 번째 부인이었고 6명의 아들과 딸 디나를 낳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은 둘째 아들이고, 레위는 셋째 아들입니다.

시므온은 야곱의 사랑에 배고파하던 레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여인을 위한 위로의 선물이 시므온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엄마를 어릴 적부터 보아왔고,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여 소외당하며 사는 자신들을 한탄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므온에게 분노가 많았습니다.

성경에 첫 번째로 기록된 시므온의 분노는 자신의 여동생 디나의 사건과 관계된 분노입니다. 친동생 디나가 세겜 여자들을 보려고 놀러갔다가 강간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성폭행 범은 세겜 족속 추장의 아들이었습니다.

나그네로 세겜 성에 거주하는 야곱으로서는 감히 항의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억울하지만 참아야 하는 것이 좋을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침묵하며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 야곱을 아주 많이 원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디나가 레아의 딸이 아니고, 야곱이 사랑하던 라헬의 딸이었다면 아버지가 가만히 계셨을까? 결국 시므온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동생 레위와 함께 보복을 하였습니다.

세겜성 추장의 아들 세겜은 디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야곱의 아들들, 특히 시므온과 레위가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고 우리와 같이 된다면 서로 교류하며 결혼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는데 세겜이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 때 군대에서 포경수술을 하는 녀석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몸짓으로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 기우뚱 하긴 싫어요

요즘에는 진통제가 있음에도 포경 수술을 하면 어그적 거리며 걷게 되거든요. 수술 후 3일째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시므온과 레위 바로 그날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가장 고통스러워할 때인 3일째에 쳐들어가서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야곱이 이 일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세겜과 동맹한 주변의 부족들이 보복하게 되면 야곱의 일가족은 몰살을 당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켜 주셨기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야곱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졌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 때의 일을 염두에 두면서 5, 6절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므온과 관계된 두 번째 이야기는 동생 요셉과 관계된 사건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을 때,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어서 야곱의 10 아들은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갔었습니다. 이때 동생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지만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들은, 동생 앞에 꿇어 엎드려 곡식을 팔아 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야 했습니다. 사정을 다 들은 총리는 막내 동생인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조건으로 10명의 형제들 중에 한 사람을 볼모로 잡고 식량을 내어주게 되는데 그때 볼모로 잡힌 사람이 시므온입니다. 왜 하필이면 시므온일까요?

요셉의 입장에서 아버지 야곱의 곁에 꼭 필요한 사람이 시므온이었다면 시므온을 볼모로 잡았을까요? 요셉의 입장에서 시므온에 대한 감정이 남달리 좋았다면 시므온을 포로로 잡아 몇 개월을 감옥에 가두어야 했을까요? 요셉의 입장에서 시므온이 형제들의 지도자였거나 든든함이었다면 그를 왜 잡아두었겠습니까? 요셉이 봐도 10명의 형들 중에 하나가 없어도 될 만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시므온이었던 것입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열등감도 강하고 인격적인 성숙함이 모자란 사람 시므온

야곱이 나이 들어 죽게 되자 아들들을 다 불러 놓고 유언을 하며 축복기도를 해 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는 아들들일수도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야곱은 자녀들에게 축복을 합니다.

넷째 아들 유다에게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 거라고 축복합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유다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스불론에게도 축복하고 잇사갈에게도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강한 나귀 같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단이라는 아들은 재판관이 되라고 축복하고, 갓이라는 아들에게는 추격 받는 자가 아니라 추격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축복합니다. 요셉에게도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와 같아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그런데 시므온에게는 한 마디도 축복을 하지 않습니다. 시므온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49:5-7

너는 칼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였으니 너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고 네가 분노함으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면 평생 시므온 때문에 속 썩고 살았을 야곱을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자식 때문에 속을 끓이고 살았으면 죽음을 앞둔 야곱이 시므온은 용서를 하지 못하고 저주에 저주를 퍼붓고 죽어야 했을까요?

"야곱은 시므온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창49:7절에서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한 지파가 되어 모여서 사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 전 지파 가운데로 흩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아무리 자식이 그렇게 험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어떻게 이런 저주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듭니다. 그렇지만 이 저주가 어떻게 이루어져가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저주한지 400년이 흘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다시 12지파의 장래사를 말합니다. 즉, 야곱이 12아들의 장래사를 말했고 400년 후에 모세가 12 지파의 장래사를 다시 말합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견해라면 두 사람의 말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예언이 하나님께서 관여하시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면 달라질 수 없습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예언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 지파에 관한 모세의 예언은 신33장 8절입니다,

33: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여기서 둠밈과 우림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우림과 둠밈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그가 제사장 지파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저주입니까? 복입니까? 분명히 야곱에게서 저주를 받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거룩한 직분입니다. 레위가 어떻게 이 직분을 받게 되었는지 9절이 설명을 해 줍니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신33:9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 형제를 알아보지 않았답니다. 잘못 이해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 위해서 부모자식도 버리라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만 이 표현이 의미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난리를 쳤잖습니까? 모세가 내려와서 책망하는 데도 백성들이 방자하게 굴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말합니다. ‘야훼의 편에 있는 사람은 나오라!’ 그 때 제일 먼저 나온 사람들이 레위 지파였습니다. ‘칼을 차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방자하게 구는 자는 부모든 자식이든 다 쳐라!’고 했습니다. 이 때 3000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죽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자한 행동이 종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레위지파를 쓰셨습니다. 모세는 레위의 이러한 행동을 ‘여호와께 헌신한 행동’으로 인정하였고 ‘야훼께서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레위 지파가 잘못한 일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이 잘 한 일이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편에 섰던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 편에 섰던 그것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과 친구와 사업의 편에 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더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아무리 상황이 답답하고 막막할지라도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당장 눈앞에 나의 이익이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을 선택하십시오.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고 축복의 길입니다.

레위지파는 야곱 예언처럼 흩어져 살기는 하지만, 또 모세의 축복처럼 그들에게 큰 복의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모든 지파에 흩어져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지파는 도피성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였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2025년 10월 7일 오전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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