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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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역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인정받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창47:29-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47:29

야곱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요셉의 손을 넣고 마지막 소원을 말했습니다.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것을 일명 ‘환도뼈 맹세’라고 하는데, 환도 뼈 아래는 사람의 생식기관 번식기관을 말합니다. 이곳은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이 허벅지 아래 손을 넣는 맹세는 맹세의 엄숙성과 절대성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을 때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늙은 종을 밧단아람으로 보낼 내에도 종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넣으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야곱에게 있어서 허벅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얍복 강에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매사에 인간적으로 행동했던 야곱을 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흔적이 있는 그 허벅지에 야곱이 요셉의 손을 넣으라고 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 너는 나를 애굽에서 매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30,31).”

이 유언은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마음이 깊이 간직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애굽으로 올 때에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창46:4

젊은 날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면 살았던 야곱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큰 믿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11:21

보통 사람 같으면 죽음의 침상 머리에서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야곱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야곱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것을 소망하도록 전수하여 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부탁은 고향 땅에 묻히겠다는 인간의 회귀본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복, 곧 땅과 자손의 복을 신뢰하고 소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예비해 두신 유일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후손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그 땅의 주권을 차지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하면서, 그 후손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게 될 것을 미리 말한 것입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인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척 콜슨(Chuck Colson)은 자신이 한 감옥 생활 경험을 중심으로 ‘본 어게인(Born Again)’이란 책을 썼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보았던 세 종류의 죄수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희망이 없는 죄수로서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자해(自害)하는 사람들이었고, 두 번째 역시 그와 비슷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종류의 죄수들은 감옥에서 나갈 날을 기다리며 기회 있을 때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감방에 있었지만 마치 내일 나갈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죠.

누군가 이 세 번째 유형의 사람들을 소망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장차 그리 될 줄로 믿고 미리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비록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라도 지금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것이 소망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야곱에게 그 후손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줄로 믿고 소망을 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절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적인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사라지면 끝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산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땅의 것이나 사람의 것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으로도 얼마든지 배부르고 따뜻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내일은 소망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실 복에 대한 소망이 없이 내일을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야곱은 죽어가면서도 내일을 바라보았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결산의 자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을 계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는 것이 성도의 결산의 특징입니다. 비록 지난날이 힘들었을지라도, 비록 지금이 형편없이 어렵고 고단할지라도, 하나님과 그 약속을 기대하면서 소망으로 최종 마무리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지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창47: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이란 ‘내가 죽거든’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 또는 조상들과 함께 눕는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이스라엘의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고 요셉에게 명령합니다. 야곱은 애굽에 와서 17년을 살았습니다. 그 17년 동안 얼마나 많은 풍요를 누렸겠습니까? 총리 요셉의 아버지로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일찍부터 묫자리를 보고 다니며 최고의 명당자리를 미리 예약해 두었을 것입니다. 죽은 후에 작은 피라미드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거든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자신의 시신을 저 가나안 땅 시골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야곱은 풍요로운 애굽 문화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소망은 조상들의 묘역에 묻혀 믿음의 역사를 계승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기근 가운데서 번성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성케 되었을 때 그 풍요에 취하지 않고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야곱이 나이가 들어서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욕심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나이와는 무관합니다.

어떤 어머니가 남편을 일찍 여의고 4남매를 고생고생해서 키우고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 어머니를 놓고 남매들이 둘러 앉았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평생에 다이아반지 한 번 끼워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원통하구나.’ 그 말을 듣자 남매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머니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돈도 없고, 많은 돈을 주고 다이아반지를 사자니 돌아가시면 그만이고 해서 어디서 다이아 반지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다이아반지 한번 끼워드리고 돌아가시면 빼서 돌려주기로 하고. 그래서 비싼 다이아 반지를 꽤 많은 돈을 주고 빌려 왔는데 그 어머니가 그 다이아반지를 보는 순간 너무 황홀해서 입에 넣고 꿀꺽 삼켜 버린 것입니다. ‘내가 이 다이아반지 끼고 극락까지 가련다’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비싼 다이아 반지를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어머니 시신을 해부할 수는 없고, 결국 화장하고 그 재에서 다이아 반지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화장터의 불이 너무 강해서 다이아반지가 녹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다이아반지 몸에 간직하고 극락까지 갈려고 했는데 다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세상에 붙은 욕망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 것들에 대해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11:13,14절은

야곱의 인생은 그 마지막이 더 아름답게 빛이 났습니다.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얼마든지 애굽의 영광을 탐할 수 있었지만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이는 그의 소망이 하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최후입니까?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창47:31

요셉이 맹세하자 야곱은 자신의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어려울만큼 몸이 쇠하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실 야곱이 임종을 맞는 애굽 땅과 그의 가족 무덤이 있는 가나안은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그 옛날에 시신을 거기까지 운구하여 장례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야곱은 아들로 하여금 아무리 힘들어도 꼭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를 거듭 받아낸 것입니다.

쇠약해진 야곱이 요셉에게 다시 맹세를 요구하자 요셉이 아버지의 소원대로 맹세합니다. 그리고 야곱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과거에 속이는 사람이었던 야곱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스라엘로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유명한 강해 설교자 찰스 스윈들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씁니다.

야곱의 묘비에 요셉은 이런 말을 적었을지 모른다. 그는 예배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과거에는 그는 속이는 사람이었다 라는 말이 좀 더 잘 어울렸겠지만, 그러나 이제 거의 150세가 된 지금의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에 그의 한 마지막 일들 중 하나는 그가 씨름하기도 하고, 섬기기도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야곱의 유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같이 약속의 땅에 묻혔습니다.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창50:13

2025년 9월 23일 오전 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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