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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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선교사님들에게 성령 충만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사 그 땅에 예배가 세워지게 하시고 모든 열방이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날이 속히 오게 사소서

2.

선교 사역을 위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주사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사역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소서.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47:8-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47:8-10

이 짧은 대화에서 우리는 야곱이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몇 가지 내용에 주목해야 합니다.

1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한 야곱의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가 ‘네 나이가 얼마냐?’ 고 물었을 때 야곱은 ‘내 나이는 130입니다.’ 그렇게 대답하지 않고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입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야곱이 왜 이런 대답을 하였을까요? 우리 인생이 나그네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고향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으나 안주할 땅을 주지 아니하시고 그로 하여금 나그네로 타향살이로 이 세상을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26:16

야곱은 20년간 머슴살이 하면서 타향살이를 했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 낯선 외국 땅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족장들을 나그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족장들에게 안주할 땅을 주지 아니하시고 나그네로 몰아세워 하늘을 사모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고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3-16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 되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그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그네 공동체입니다. 순례자의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은 나그네 공동체의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례자이며 순례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나그네는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초대교회는 무시무시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 황제들의 무서운 핍박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디아스포라는 사방으로 흩어져 사는 나그네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 세계로 흩어지게 했습니다. 그 디아스포라는 가는 곳마다 나그네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나그네로 만드셨나를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유대인이 안사는 곳이 없습니다. 소수의 디아스포라이지만 그들의 삶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었습니다. 아래에 있지 않고 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꾸지 않고 꾸어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태인이요, 지금 미국의 정치계, 경제계, 교육계, 의학계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들어내는 사람들이 유태인입니다. 나그네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그네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다 나그네로서 임시 거주자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나그네임을 철저히 고백하고 나그네 삶을 바르게 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나그네라도 거지같은 나그네가 있고 당당하게 제 몫을 다하는 나그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그네는 그 가는 길을 인도하시고, 그 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나그네라는 고백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나그네임을 믿고 사는 사람은 시간을 아끼며 소중하게 시간을 관리하며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며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은 자신이 나그네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선하게 살며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로 있으면서 싸우거나 미워하거나 불의를 행한다면 나그네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가 지혜롭게 살지 못하면 어리석게 세월을 보내며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욕을 먹으면서 살 것입니다.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그네이지만 우리들은 지혜롭게 나그네 생활을 해야 하며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그래야 험악한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이 많은 세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늙은 사도 베드로는 간절히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2

영혼을 거스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탐욕과 세상 정욕에 이끌려 다니기 쉬운 세상에서 헛된 일에 정욕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내 집은 잠깐 머물다가 가는 여관집입니다. 이곳에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지 않아야 합니다. 명예도, 재물도 별 것 아닙니다. 이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상처를 주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 목사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과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리가 있음을 감사하며 지나가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다리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39:6에서 고백하기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인생이 나그네임을 알았고 나그네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는 지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다 나그네로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 조상들이 나그네로 살았고 자기는 나그네 조상들의 후손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에 백향목으로 세운 궁궐 안에서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이 나그네로 고백하고 나그네의 자세로 살았습니다.

사람이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묘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꽉 쥡니다. 뭐든지 움켜 쥐겠다는 뜻입니다. 세상사는 동안 지식도, 물질도, 명예도 움켜 쥐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 떠나는 날에는 손을 쭉 폅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모든 날이 심판입니다. 왜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나그네 생활을 해야 합니까?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젊은 날로부터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르게 살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땅의 죄악을 보고 두 천사를 보내어 소돔의 멸망을 알리기 위해 롯의 집에 갔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여 멸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한 것은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불 가운데서 건져 주기 위한 천사의 말을 불신앙하므로 유황불에 타죽거나 소금기둥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불신앙의 죄입니다.

전도서의 마지막 말씀을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창조자를 기억하고 눈을 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잠들 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잠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창조주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은 전능하신 창조주의 크신 손과 편 팔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거역할 때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만 의지했기 때문에 기적으로 출애굽하며 홍해를 건너며 반석에서 생수를 냈습니다.

2025년 9월 16일 오전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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