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폭력이 끊어지게 하소서.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임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창46:31-3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창46:31-34요셉은 야곱의 정착을 도우면서 이스라엘의 직업이 목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고센 땅에 정착하도록 합니다. 고센은 애굽 국경 지역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애굽인의 입장에서는 변방이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첫 번째 의문은 왜 요셉이 가족들의 직업을 애굽인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직업인 목축이라고 말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문은 왜 고센 땅을 정착지로 선택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애굽인들이 목축을 가증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목축하는 민족이라고 밝힌 이유가 무엇일까요?
애굽인들은 농사를 주로 하는 민족으로 목축을 가증하게 여겼고, 목축하는 자들과는 혼인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이 목축하는 민족이라고 밝힌 이유는 애굽인들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애굽은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애굽인들과 섞여 살면 그들의 우상적 풍습과 문명과 문화에 물들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분리하여 대대로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7:3-4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는 대로 행하게 되고, 듣는 대로 믿게 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 것임은 맹모삼천지교로 널리 알려진 맹자의 경우를 보아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육신의 환경만 볼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환경도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육신의 욕망만을 좇아갔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롯의 가족들은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성의 풍습을 본받아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 후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저주로 멸망을 당할 때 롯과 두 딸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영혼의 환경을 깊이 생각하는 요셉의 지혜를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로부터 복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이 애굽 변방에 정착한 것은 그곳이 풀이 많이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곳이 바로 변방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에굽의 입장에서 보면 변방, 국경 근처의 버려진 땅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가나안 땅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기도 했습니다.
애굽은 야곱의 가족에게는 임시 거처였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창46:3-4) 하셨습니다.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야곱의 입장에서는 애굽의 중심부에 들어가 정착하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중심부에 들어가 살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익에 취하다 보면 가나안을 잊어버리게 된 위험이 큽니다. 그러므로 야곱과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생활터전을 고센 땅으로 정했습니다.
돌아갈 날과 돌아갈 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땅이 우리의 고향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주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곳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죄인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죄를 없이 하시고자 우리들의 죄 값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귀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힘을 의지하여 먼 나라를 여행하듯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늘나라에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임시 거처입니다.
어머니 태중의 10개월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사지백체를 준비하는 곳이며,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이 계시는 우리의 본향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며, 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준비가 곧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살펴볼 때 요셉의 선택은 한 가지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떠날 계획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애굽으로의 이주는 잠깐 동안의 선택이었을 뿐 애굽은 결코 이스라엘이 정착하여 살 땅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하고 반드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목축하는 자로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애굽인들에게 천한 사람이라고 멸시를 받고, 변방에서 힘겨운 삶을 견뎌야 하는 댓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간직하려 했던 것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요셉이 그 자리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가나안 땅, 그저 하나님의 약속만이 남아 있는 가나안을 소망하며 살아갔다는 것을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요셉이 진정으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므로 요셉은 야곱에게 한 가지 지혜를 알려 주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 이방인들은 언제나 애굽인들의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국경 지방에 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애굽인들은 목자들을 혐오하였기 때문에 바로가 내륙 지방에 정착하도록 조치하리라고는 더욱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야곱의 가족이 목자라는 사실을 내세워서 바로 왕이 어쩔 수 없이 야곱의 가족에게 고센 땅을 주도록 유도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수많은 가족을 모두 이끌고 고센 땅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그의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인해서 야곱의 가족들은 흉년의 때를 아무 부족함이 없이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는 복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