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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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1.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2.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와 평강을 얻게 하소서.

3.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창45:2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

창45:28

여기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꾼 것은 의미심장 합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승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32:28

야곱은 오랫동안 요셉의 문제로 비관했었는데, 그 비관이 이제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만일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없었다면 당시 세계에서 감히 야곱의 집안이 어떻게 애굽으로 이주할 수 있었을까요? 애굽에서 이방 족속인 히브리 민족을 그렇게 융숭한 대접으로 은인으로 알고 받아들이게 되니 그곳에서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이방 족속이 다른 국가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은 전쟁으로 인한 침략으로 이루어지거나 자원하여 종의 나라로 속국이 되는 길 외에 그렇게 쉽게 그 국가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아무 연고 없이 들어가게 되면, 마치 요셉이 형들을 시험했던 것처럼 그들을 첩자로 보거나 침략자로 보아서 죽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더더구나 은인의 가족으로 융숭한 대접 가운데 영접하게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범상한 일이 아니고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셨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하필 그 당대에 애굽의 왕권을 장악한 족속이 셈 계통의 족속이었는지도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함족 세계에서 셈족이 왕권을 장악했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셈 족속인 야곱의 가정을 애굽에 불러들이시기 위한 준비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고난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15:13-1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후손에 대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애굽 땅을 그 적소로 선택하시고 야곱의 가정을 애굽에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사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것을 알면 모든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실패도 의미가 있고 고통도 의미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고, 억울하게 세월들을 소망없이 살았다 할지라도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각본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천사가 와서 ‘요셉아, 이게 다 총리가 되기 위한 훈련이다’라고 한 마디 말만 했어도 얼마나 힘을 얻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말을 하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마음에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한 사랑을 몸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삶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해서 생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하나 확인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약속들은 응답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기상예보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상예보라는 것은 비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기상예보입니다.

세상 약속은 다 그런 것입니다.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되면 좋고 안 되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된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저도 그런 약속을 할 수 없고, 여러분도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약속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됩니다. 확실히 됩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사라져도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23장 19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은 세상 약속과 다르고, 저나 여러분이 하는 약속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한계가 있는 존재가 하는 약속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겠습니까?

약속은 능력이 있어야 지켜집니다. 능력이 없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배우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12:1-2

이 약속을 할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습니다. 25년이 흘렀지만 약속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치 않으셨던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사라는 여자로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잃었습니다. 그 나이에 임신하고 해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는 불가능한데까지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백세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포기해야 할 나이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기 때문에 성취되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은 나이 40세에 결혼합니다. 20년 동안 아기가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때가 60세입니다. 20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 하나님의 약속은 응답됩니다. 끝까지 신실하게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약속은 다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물 밑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입니다.

야곱은 네 부인에게서 1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형의 미움을 받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서 20년 동안 처가살이 합니다. 야곱은 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면 좀 멋지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처가살이하며 얻어먹고 사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특별히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상처를 받고 무능하고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나를 끌고 가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수의 형상으로 빚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끌고 가실 것입니다. 이 정도에서 하나님은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끔 포기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부모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체념을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믿는데 체념합니다. ‘기도해 봤자지, 내가 예수 한 두번 믿었나? 믿어 봐도 거기가 거기더라.’ 이렇게 체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체념을 체념하시기 바랍니다. 냉소주의를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성령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님을 제한해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를 인도해 오셨고 때가 이르렀을 때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심으로 아브라함과 하신 후손의 약속, 아담과 맺으신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온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나님께로 회복하실 구원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이렇게 일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 나라의 백성답게 합당히 살게 하시려고 보호와 인도와 주장을 하십니다.

십자가 보혈의 권세로 이루신 구원의 능력을 굳게 하기 위하여 오신 성령께서 계속해서 그렇게 우리를 주장하시고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참 믿음의 순종을 바치는 백성이 되게 하시는 일을 계속 하십니다. 마치 요셉을 그 큰 고난 가운데로 부르시고 통과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을 하나님은 그 나라 백성이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에로 부르십니다.

이 일에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요셉이 걸었던 그리고 주님이 참으로 보여주시고 나타내셨던 참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마침내 귀하게 쓰임 받고 크게 복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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