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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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1나라를 지키며 정의와 평화를 힘쓰는 국군 장병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모든 훈련 가운데 건강과 안전을 지켜 주셔서 군 생활을 잘 마치게 하소서

2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이 영적 광야인 군대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고 이들을 통해 군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3각 부대에 신실한 군목과 군종 사병이 세워져 군 생활 중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장병이 늘어나게 하시며 지역 교회와 군인교회가 연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7-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창45:7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20년 동안 묵상한 결론입니다.

경륜은 이 비밀을 하나씩 캐 나가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모릅니다. 혈기왕성하고, 똑똑한 척하고 이성이 발달될 때는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은혜를 깨달을 때 ‘하나님이 이래서 내게 병을 주셨고, 나를 낮추셨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을 것 같은데 죽지 않고, 끝난 것 같은데 계속 갑니다.

이 비밀을 맛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 줄 아십니까? 이것이 신앙의 기쁨입니다. 내가 무너지고 깨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이 비밀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이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세상의 것과 얼마나 다릅니까?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곤혹을 치르고 감옥에 갔습니다. 긴 세월동안 침묵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결코 그 인생을 끝장내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 주셨을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라고 요셉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열 두 아들이 열 두 지파가 되는데, 자격 없고 부도덕하고 혈기 많은 아들들을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통해 연단하시고 믿음의 지파로 세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단순히 형들을 도와준 사건이 아닙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반복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의를 이루시고, 우리의 실수를 통해서 선을 이루시는 놀라운 경륜을 바라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왜 고약한 사람을 만난 줄 아십니까? 왜 여러분의 사업이 실패한 줄 아십니까? 현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지나고 보면 그것이 축복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내게 꼭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은 주무십니까? 하나님은 귀가 먹었습니까? 하나님은 왜 제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까? 왜 저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두십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고난이 한 두번 오면 괜찮은데 파도처럼 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구원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남편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점잖게 하나님께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의 혼은 혼이 나고 터지고 매를 맞아야 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얻어맞고 깨지고 상처받고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야 겨우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 인간입니다.

구원이라는 관점이 없으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며 세상은 얼마나 부조리합니까? 그래서 인생을 냉소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절망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고난도 의미가 있고 역경도 의미가 있습니다. 해석되지 않는 많은 사건들도 의미가 있습니다.

15년 동안 용서하지 못한 남편을 용서한 김현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김현미 목사님은 온누리 교회에서 15년 넘게 중보 기도 팀을 인도하는 등 전국을 다니며 중보기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 ‘기도할 수 밖에 없었어요’를 보면 15년 동안 용서하지 못한 남편을 용서한 사연이 나옵니다.

평신도 시절, 믿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믿지 않은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할 때는 가족 복음화를 이루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20년 동안은 말 그대로 광야였습니다. 엄격한 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는 것도 버거운데, 남편은 탕자처럼 3년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사업은 뒷전이었고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스트레스로 병이 들어 죽을 뻔 하다 살아나기도 하고,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전셋집에서 내쫓겨 길바닥에 나앉은 적도 있었습니다.

3년 만에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는 용서를 빌었지만 목사님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잔소리 한번 안 했지만, 속으로는 비수를 품고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복수하리라 하고 다짐하며 15년간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제게 광야학교 원장과 부원장이었습니다. 남편은 결혼하지마자 저를 힘들에 했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무섭고 어렵다는 이유로 제 마음에서 밀쳐 냈었습니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 선교지로 보내주세요’

매일 호되게 부리는 시어머니와 밖으로만 도는 남편 대신 선교지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때 이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 시어머니와 남편 안에 열방이 있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품으면 열방이 너한테 온다. 시어머니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열방을 품겠니? 네 남편 하나 시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열방을 품을 거니?

하지만 다른 사람은 사랑해도 시어머니와 남편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한 말씀 더 하셨습니다.

‘너도 사랑할 수 있어’

그 순간 15년 동안 꼭꼭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목사님은 시어머니와 남편을 찾아가 고백했습니다. 어머니 여보 사랑해요. 한번만 안아보면 안돼요? 시어머니를 안았는데 전혀 싫지가 않았습니다. 그 후 시어머니는 순복음 교회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남편은 온누리 교회 안수집사 직분을 받고 큰 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중보기고 사역 리더로 섬기던 목사님은 신학을 공부하고 안수를 받은 후 사역이 확장되어 전국 교회에 중보기도 학교를 세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용서하지 못한 이유는 나라는 그릇이 비워지지 않아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용서하셨는데, 나의 의로 가득 차있던 저는 나를 아프게 한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저는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대체 저한데 왜 이러세요? 그런데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을 대 비로소 제가 왜 그런 훈련을 받아야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이라는 광야학교를 통해 저를 키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만 고난을 겪는 것처럼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그 시간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인생은 해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살아가면서도 자기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한없이 어둡게 비관적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고 희망차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건의 차이나 환경의 차이가 아닙니다. 믿음의 차이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안경을 끼고 우리 인생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제목이요,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사람들이 던진 돌 때문에 항상 상처 타령만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요셉처럼 사람들이 던진 돌을 성공의 디딤돌로 삼습니다. 저희들이 요셉과 같이 매사에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인생을 재해석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서 요셉 한 사람이 가족을 구원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한 것처럼 우리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8월 28일 오전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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