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국제적인 경기 침체가 하루속히 안정되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컨텐츠를 제작해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6-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45:6-8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분명히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을 이리로 보낸 이는 형들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크게 세 가지 의지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 사탄의 의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의지와 사탄의 의지가 그의 삶에 작용합니다. 사탄은 사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사탄의 의지를 벗어날 수 없을 때 그것을 타고난 운명이요 팔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사주팔자를 알고자 점을 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사주팔자가 맞지 않습니다.
김의환 목사님 간증 : 6.25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의 안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늘 전도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좀처럼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유명한 점쟁이가 이곳에 왔는데, 점쟁이가 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아보면 예수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을 치러 갔는데, 점쟁이가 벌벌 떨면서 넌 예수 믿는 사람인데 왜 내게 왔느냐고.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사람의 의지와 사탄의 의지를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형들이 요셉을 팔았습니다. 이 가운데 사탄이 시기심으로 개입하였습니다. 사단은 요셉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단의 의지를 이용하여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투수가 공을 못 치게 하려고 공을 빨리 던집니다. 그러나 타자는 그것을 이용하여 공을 더 멀리 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사단의 의지를 이용하여 더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욥의 재앙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10명의 자식이 다 죽고 자신은 병이 났습니다. 이는 누가 한 일입니까? 사탄이 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1:12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소와 나귀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1:14-19"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2:6-7이런 상황에서 욥이 믿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욥의 고백대로 욥은 고난을 통하여 단련 받은 이후에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인간과 사탄의 의지를 쓰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보고 자신을 애굽에 보낸 이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만약에 자신의 인생을 버림받은 인생이요, 팔린 인생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아픔과 상처, 미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파송하셨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명의식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의 인생관, 인생철학이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요셉의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항상 하나님 편에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41:16)’ 아들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므낫세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에브라임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항상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주권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그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섭리신앙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인생을 함부로 좌지우지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문제, 모든 사람을 넓은 마음으로 다 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건을 보면 시험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 사람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21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요셉을 애굽에 보내셨습니까? 총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보내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한 사람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족과 그 후손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기근에서 살리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을 살리셔서 그 후손 가운데 메시야를 보내고자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애굽의 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크신 뜻을 위하여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요셉의 삶에 일하신 하나님을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삶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선을 이루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은 이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시련을 극복하였습니다. 그가 노예 살이 할 때도 좋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가 감옥살이 할 때도 좋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가 좋으신 하나님을 볼 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시련을 참고 견딜힘이 생겼습니다. 그가 좋으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는 보디발의 처가 유혹할 때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었을 때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신앙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선하신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나가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아의 방주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바다 가에다 만들라고 하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산에다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배를 만들라고 하면 쉽습니다. 그러나 방주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배 같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방주의 길이가 축구장만 하니 이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방주를 지었는데 창문이 없었습니다. 몇 백년이 지나도 해석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대홍수가 나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크기만이 해일이 나고 지진이 났을 때 뒤집히지 않는 크기입니다.
창문이 있다면 150일 동안 보는 것은 시체뿐입니다. 그것을 못 보게 하셨습니다. 동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람으로 움직이게 하신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병들게 하고 이런 고통 가운데 두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두 가지입니다. 믿어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비밀을 압니다. 이것이 섭리요 경륜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는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 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친 사람’이란 소리도 들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기도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요, 우리가 사는 방법은 세상과는 너무 달라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결론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