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창44: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창44:1-3바로 어제만 해도 곡식을 사러 막내를 데리고 다시 애굽을 찾은 형제들을 총리 공관에 초대하여 융숭하게 대접했던 요셉이 하루 밤 사이에 돌변한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베냐민의 자루에 몰래 자신의 잔, 곧 은잔을 넣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요셉은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주로 요셉의 이런 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장의 주제는 ‘용서의 사람 사랑의 사람 요셉’입니다.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은 요셉의 외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이 그를 보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고, 꿈을 해석할 줄 알았고, 꿈대로 살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고통과 고난과 역경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꿈을 향해 갑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땅의 꿈이 아니라 하늘의 꿈, 순간적인 꿈이 아니라 영원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눈이 반짝거리기를 바랍니다. 요셉처럼 희망에 불타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꿈은 하나의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일 때도 신뢰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신뢰했습니다. 환경이 좋을 때도 신뢰했고, 환경이 나쁠 때도 신뢰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에도 신뢰했고, 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신뢰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외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면적인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요셉이 했던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용서는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다면 인생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완전한 성숙에 이른 사람입니다.
복음의 끝은 사랑입니다. 요셉에게는 이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내면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요셉처럼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사랑은 어떤 종류의 사랑일까요? 그의 사랑은 우리가 하는 사랑과는 다른 특별한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랑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조국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상대적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사랑합니다. 나한테 잘 해주면 나도 잘 해줍니다. 그러나 나한테 잘하지 않으면 나도 잘 하지 않습니다.
대개 부부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자기한테 잘하면 사랑하고, 잘해 주지 않으면 이혼합니다. 이것이 요즘 부부들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는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 상대적입니다. 잘 해주면 나도 잘 하고, 잘 못하면 나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에는 목마름이 있고, 갈등이 있고,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참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나는데도 애써 참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참고 사니까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사랑하는데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요셉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충격을 받습니다. 요셉의 사랑은 우리 사랑과는 다릅니다. 요셉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배다른 형제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모님 밑에서 살 때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결혼하고 분가해서 살게되면 경쟁하기 쉽습니다. 그런 형제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예 관계를 끊기가 쉽습니다.
더욱이 자기를 죽이려 했고,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배다른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사랑을 합니다.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데 애쓰거나 고민하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랑합니다. 여기에 감동을 받습니다. 사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할만한 처지가 아니고,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우리에게 더욱 감동과 충격을 줍니다.
우리가 요셉의 사랑을 보면서 이 본문을 그냥 지나가면 안됩니다. 여기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사랑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인 나의 사랑은 가짜로구나’ 저는 참고 사랑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때는 승리하지만 어떤 때는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다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요셉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요셉의 사랑이 감동적인 이유는 조건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잘 해줘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사랑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부터 형들을 무조건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다른 형들 사이에서 요셉이 자랄 때 많은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미움을 받았으면 구덩이에 그를 집어넣었겠습니까? 얼마나 미움을 받았으면 애굽에 노예로 팔았겠습니까? 형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요셉은 형들에게 그런 감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동적입니다.
그런 사랑을 보면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을 하던 내가 진정한 사랑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감동을 하게 되고 충격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사랑받을 자격도 없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이 조건 없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의 모든 동기를 선하게 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경험하는 사랑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부부간의 사랑과 부모의 자녀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상대적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다가도 순식간에 이혼하고, 돌아섭니다. 부부는 서로 잘 할 때는 좋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배신하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반면, 부모의 자식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녀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어도 부모는 사랑합니다. 죄를 지어도 사랑하고, 부모의 가슴에 못질을 해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언젠가 한국 신문에 난 기사인데요. 자식에게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 ‘옷 갈아입고 도망하라’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저는 여러분 부부의 사랑이 부모의 자식 사랑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잘못을 해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처음 잘못을 한 것처럼 사랑해 주며 사는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이 그런 사랑을 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부터 형들을 사랑했습니다.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형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그의 성품이 단순하고 정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만 듬뿍 받아보았지 인생의 쓴 경험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순수하고 깨끗하고 정직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아무리 자기를 힘들게 해도 순진하게 사랑했습니다. 형들을 미워했다면 아무리 아버지의 심부름이라 할지라도 형들을 위해 먹을 것을 세겜이란 먼 곳까지 갖다 줄 수 있었겠습니까? 세겜에 가서 없으면 형들을 보기 싫었는데 잘 되었다 하고 돌아가지 형들을 찾아 도단까지 갔겠습니까?
요셉의 특징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애굽에 팔려가서, 감옥에 들어가서도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형들을 원망했다는 기록이 한 군데에도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이었지만 요셉은 그들에게 나쁜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냥 잊은 것입니다.
요셉의 마음속에는 20년 동안 헤어져 얼굴을 보지 못한 형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총리가 된 요셉의 마음에는 형들을 향한 그리움, 그것도 배다른 형들에 대한 그리움, 자기를 죽이려 한 형들에 대한 그리움과 목마름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형들이 양식을 사러와서 요셉이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이 방어벽을 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위로 형들을 제압하지 않았고 양식을 최대한으로 많이 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돈을 모두 돌려주면서까지 .
요셉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난 후 요셉의 모습을 보십시오. 가슴이 벅차서 대성통곡합니다. 이것은 마음 속 깊이 형들을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요셉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화나게 하면 나도 화를 내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나한테 잘해주거나 못해주거나, 화나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내 인생을 파멸로 끌고 가더라고 그냥 좋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저는 이런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부러워합니다. 제 안에 이런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설령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일지라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다 잊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과 기름 부으심이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언제나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내 사랑으로 사랑하지 마십시오. 내 감정으로 사랑하지 마십시오. 내 느낌으로 사랑하지 마십시오. 실패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면 여러분은 배신을 경험할 것이고, 자신에게 실망할 것입니다. 나의 선행, 나의 의, 나의 사랑은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 닮기를 사모합시다. 이제 여러분의 사랑의 대상을 다른 눈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십시오. 조건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결정한 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동기를 선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똑똑해서 수를 쓰는 사람을 금방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동기가 불순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비록 그 사람이 불순한 동기로 내게 다가왔다 하더라도 속아주시고 좋은 동기로 다가 왔다고 믿어주십시오. 그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속을 것입니다.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믿어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상대적이고 조건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을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의지적인 사랑으로 바꾸십시오. 여러분을 괴롭히고 불편하게 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별히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호세아의 사랑을 보십시오. 그는 아내가 자신을 배신을 하고 음란한 행동을 해도 끝까지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을 배신하고,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해도 끝까지 기다려주고 사랑해 주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사랑입니다.
2025년 8월 20일 오전 6: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