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그릇된 이념이나 선동이 아닌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주변 강대국들과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게 하시고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창43:13-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창43:13야곱은 드디어 자기 아들을 내놓겠다고 말합니다. 물질을 주고, 결국 아들까지 내놓게 됩니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에서 최고의 결단입니다. 피눈물 나는 아픔이고 자신을 죽이는 결정이었습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그렇게 결정하기는 했어도 결국 그렇게 합니다.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포기는 구원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고 그래서 간신히 예수를 믿는 분들, 희미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포기가 불확실하고 희미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는 것이 그 만큼 어렵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결국은 이리 맞고 저리 맞고 이곳에 가서 부딪히고 저곳에 가서 부딪히고 온갖 상황을 다 겪어 결국 하는 수 없이 모든 것을 내놓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베냐민을 내놓는 야곱처럼 마지막 것까지 내놓게 됩니다.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포기를 빨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이란 포기입니다. 무엇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를 선택해서 결혼한다는 것은 지구상에 있는 다른 모든 여자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선택하고 얻을 수 있겠습니까?
둘 다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흔히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인 생각 때문에 우리는 둘 다 놓치게 됩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나쁘게 사는 것도 괴롭고, 그렇다고 세상을 버릴 수도 없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이러나 저러나 빼앗기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까지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차피 포기할 일이고, 한번은 죽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사십시오. 그렇게 머뭇머뭇한다고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지켜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찍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복이 옵니다. 기쁨이 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영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물질과 자식을 포기한 야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는 드디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마음의 자유 함을 얻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43:14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면서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야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처음에 기도할 때에는 “주여, 제 소원대로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다가 나중에 기도가 절정에 이르면 “주여, 죽어도 좋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가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기도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맡기면 하나님게서 그 일을 맡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에스더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3일 금식을 하면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는 말은 바로 이처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사실 베냐민을 보내기로 마음의 결단을 내리기까지 야곱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눈 앞의 현실을 보면 70여명의 식구들이 모두 다 자기만 쳐다보고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하나님께서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라지만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러한 야곱의 결단은 자기의 뜻을 포기할 줄 아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포기한다. 포기한다 하면서도 최악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더 꽉 움켜쥐게 됩니다. 야곱도 포기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자기의 뜻을 포기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결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신앙적인 체험을 많이 하고 장성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즉시 기도함으로써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창43:15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예물을 준비하고 지난번 곡식 대금까지 합쳐 두 배의 돈을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로써 요셉은 오랜 세월 동안 그리워해 온 친동생과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창43:16-17요셉의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당도하여 요셉을 만났습니다. 베냐민은 요셉의 친 동생입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입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일찍 어머니를 잃고 외로운 참새처럼 자랐습니다. 요셉이 배냐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약 20년 전, 베냐민이 아주 어릴 때였으므로 자신의 아우를 한 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형님들이 왔었을 때 보지 못했던 한 젊은 청년을 보고 그가 베냐민일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친동생 베냐민을 본 요셉은 형들 사이에 있는 베냐민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무엇을 합니까? 잔치를 준비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잔치를 준비하십니다. 만약에 형들이 왔는데 그들 중에 베냐민이 없었다면 요셉이 잔치를 준비했을까요? 안했을 것입니다. 형들이 왔을 요셉은 가장 먼저 누구를 봤을까요? 베냐민을 보았습니다. 베냐민은 야곱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마지막까지 놓기 싫어했던 존재입니다. 포기하기가 어렵던 존재입니다. 그러나 포기하기 어려운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 차고, 포기한 것과 비교를 할 수 없는 축복의 향연,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베냐민을 무리 중에서 발견한 순간에 요셉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여러분이 포기하기 어렵고 힘들었던 것을 포기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얼굴은 기쁨으로 변합니다. 죽을 것만 같았던 헌신, 불가능한 순종, 그것을 보는 순간 요셉은 만찬을 베풀고, 그들을 환대하고 축복합니다. 헌신은 이토록 귀합니다. 포기는 이렇게 멋있는 일입니다.
내가 죽을듯하게 느끼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구원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포기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강제로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기쁘게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만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헌신으로 인한 복은 기쁨입니다. 헌신은 헌신의 대상인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는 복을 받게 해 줍니다. 기쁨은 대가를 치른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고생을 하고 손해를 보더라고 대가를 치를 때 하나님은 헌신의 기쁨과 보람을 안겨 주십니다.
주변에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신하는 사람이 없다면 헌신은 불가능합니다. 헌신에는 언제나 자신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남의 헌신이 내 헌신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귀한 시간이나 돈이나 재능을 바치지 않고 생각과 마음만으로는 헌신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익을 보려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손해 보지 않는 헌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손해가 기쁨과 보람으로 보상됩니다. 손해가 크면 기쁨도 큽니다. 고난이 크면 복도 큽니다.
야곱이 포기할 수 없던 것이 막내아들 베냐민입니다. 요셉을 잃었는데 베냐민까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막판에 할 수 없이 궁지에 몰려 베냐민을 포기하게 됩니다. 베냐민을 포기하지 않으면 시므온을 다시 돌려받을 수 없고 양식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막다른 길목에 가지 않고 포기하시길 바랍니다.
포기할 것은 미리 미리 포기하십시오. 포기하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선교헌금을 내보십시오. 좋은 일에 자꾸 내어주면 어느새 자신의 존재가 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여러분을 지배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시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잘 내어 줍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잘 안 내어 놓습니다. 교회도 올 만하니까 오는 사람이 많지, 포기하고 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에서 예배드릴 동안 몇 천 유로 손해를 본다면, 그것을 포기하고 교회에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 가장 중요한 것을 한번 포기해 보십시오.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는 무척 중요합니다. 포기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모든 억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포기할 수 없었지만, 결국 포기하자 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자녀에게 어려움이 닥쳐야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포기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포기하면 자유함이 시작됩니다. 포기하면 마음이 순수해집니다. 반대로 욕심 때문에 포기하기 않는 순간부터 욕망의 종이 됩니다.
포기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포기하기 위해서 밤잠을 설치며 고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포기하는 데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포기했기 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다시 애굽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 사람의 포기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포기하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포기한 베냐민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헌신한 사람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나 나라나 어떤 분야를 위해서는 여러분이 헌신한 그 모습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얻습니다.
저 사람은 손해를 보면서도 좋은 일을 했다더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나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보는 순간 기쁨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헌신한 것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기하고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기로 헌신하셨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 자요, 기뻐하는 자라’
우리가 헌신하고 포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자,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요셉의 형들이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요셉은 기뻐하기는커녕 실망하고 화가 났을 것이며, 요셉의 형들은 더욱 더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다른 편에서 이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동생을 보자 심히 좋아서 큰 잔치를 베풀고 형제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요셉은 기뻐서 초청했는데 초대받은 요셉의 형들은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2025년 8월 15일 오전 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