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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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1.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한 습관을 가져 시대를 끌어갈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성적 타락, 음란하고 혼탁한 문화, 각종 중독과 같은 어두움으로부터 저들의 생각과 육신을 지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해답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3.

기독교 가치로 세워진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세력의 행보가 무너지게 하시고, 학교마다 학생들의 예배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창43:6-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창43:6

이스라엘 - 전장과는 달리(42:36,38) 본장에서는 야곱이란 옛 이름 대신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적 내용이 담긴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6, 8, 11절), 그 이유는 본장에서부터 전개되는 베냐민 문제가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었다기 보다는 선택받은 민족 전체의 애굽 이주 문제와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서의 기자 모세는 애굽 이주가 인간(야곱)에 의한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스라엘)의 거룩한 섭리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다른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르되 : 원뜻은 한탄하다 (Living Bible, moaned)입니다. 야곱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아들들에게 항변조로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라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아버지입니다. 책임은 자식들에게 떠넘기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자식들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무리 야곱을 좋게 봐주려고 해도 좋게 보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본질을 봐야 하는데 자꾸만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리고 불평을 합니다. 야곱은 본질을 자꾸만 피해갑니다. 그리고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화를 내고 원망합니다. 듣다 못해서 아들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창43:7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그렇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지기 집안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기라도 하듯 자세히 질문하는 요셉의 준엄한 어투에 눌려 꼼짝 못하고 사실대로 모두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로부터 책망을 받고 있으니 아들들의 심정은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아버지는 자꾸만 압력을 가하는데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아들들에게 압력을 가하지 마십시오.

야곱은 우격다짐으로 압력을 가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합니다. 예기치 않은 일,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면 그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베냐민을 애굽에 데려가야 양식을 살 수 있는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닙니다. 그럴 때 사람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억울하다고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일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야곱은 자꾸만 꼬여가는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지 못하고 아들들만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창43:8

유다는 결단력 있는 말을 합니다. 그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애굽에 서둘러 가서 양식을 사오지 않으면 가족들이 모두 굶어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마다 근심하며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감히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 역시 70여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먹을 양식을 구할 길이 막연하여 마음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잃은 후, 하나 남은 라헬의 소생인 베냐민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너무 강했으므로 베냐민을 선뜻 애굽으로 보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유다가 다시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창43:9-10

유다의 리더십을 발견합니다. 리더십이란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리더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리더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사람은 참다운 리더가 아닙니다.

우리는 유다에게서 올바른 리더십의 모범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의 변신을 봅니다. 사실 그는 요셉을 애굽에 팔게 한 장본인입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의 섭리는 모른 채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린 것에 대해서 평생 괴로워 했는지도 모릅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기 위해서 구덩이에 넣었을 때 유다는 형제들에게 ‘우리 형제인데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라며 그들을 설득합니다. 이 말로 미루어 유다에게서 동정심의 일면을 엿보게 됩니다. 그러나 유다는 동정심을 끝까지 발휘하지 못한 채 돈을 받고 요셉을 팔아버리자고 제안합니다. 요셉의 죽음을 막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노예로 파는데 주동적 역할을 합니다. 유다에게 이중적 가치관이 있음을 또한 봅니다.

이제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러자 유다는 자신이 생명을 내어놓겠다며 책임을 질 것을 약속합니다. 유다는 변했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지나온 세월 하나님의 훈련을 그렇게 많이 받고도 그는 여전히 소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늘 상황에 이끌려 다닙니다.

여기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많은 문제를 겪으며 진퇴양란의 상황 속에서 요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소신껏 그리고 책임감 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적극성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 베냐민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을 보내는데 동의한 것은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상황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어쩔 수 없이 반 강제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안가면 큰 일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교회에 가자’라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이유없이 불편한 마음에 의무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와 세상에 두발을 각각 들여 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쁨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든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야곱은 언제나 문제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늘 끌려 다닙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창43:11

결국 야곱은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일단 결단을 하자 야곱은 전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대책을 세웠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빈 손으로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가나안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예물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지시는 그의 연륜과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를 백분 발휘한 것입니다. 즉 야곱은 과거에 밧단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예물로서 에서의 복수심을 누그러뜨리고 화해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예물을 보냄으로서 애굽 총리의 환심을 사서 은혜를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야곱은 위기상황에서 기도하기 보다는 늘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야곱이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야곱의 방법론입니다. 야곱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는 돌아온 돈을 다시 가져갈 뿐만 아니라 그 두 배에 해당하는 돈을 가져가라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오래 살아가다가 예수를 만날 때 그 순간부터 갑자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에 익숙해져 있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방식으로 살게 됩니다.

야곱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물질과 자식까지 다 내놓아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물질적인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요, 보호자라는 생각보다는 현실적으로 물질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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