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으로 무장되어 열방의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소외받지 않고 이 나라의 귀한 보배가 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창42:26-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났더니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창42:26-28요셉의 형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돌아가다가 여관에 들어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여관에서 그들 중 한 사람이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어본즉 돈이 자루 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형제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형제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 듯 했습니다.
가뜩이나 애굽의 총리가 무슨 구실을 붙여서라도 그들을 종으로 잡아가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들이 지불했던 곡물 값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이젠 꼼짝없이 도둑 누명을 쓰게 되었다고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면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감사, 찬송하는 것은 유익하지만 원망, 불평하는 것은 백해무익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찬송을 더욱 많이 해야 합니다.
시련과 고통의 폭풍이 불어오고 천지가 아득할 때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폭풍은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원망, 불평, 탄식하면 그 풍랑이 걷잡을 수 없이 막강한 힘으로 밀려들어 와서 마침내는 그 풍랑에 휩쓸려 자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인생의 풍랑이 일 때 감사하고 찬송함으로 그 풍랑을 막고 잠재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창42:29-31요셉의 형들은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에서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렸습니다. 그들을 요셉을 그 땅의 주인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충격을 덜기 위해 시므온이 감금된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고 그들이 정탐꾼으로 오해 받은 일을 먼저 고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총리가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붙이기에 가족 상황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창42:32-33그들은 애굽 총리에게 아무리 그들의 무죄를 주장해도 믿지 않았으므로 할 수 없이 정탐꾼이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그들은 모두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라고 밝혔다는 것입니다. 한 아버지의 12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그러자 애굽 총리가 그들에게 혐의가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로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형제 중 하나를 볼모로 잡고, 자기네들에게 가족을 기근으로부터 구하라고 많은 양식을 주었다고 고했습니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 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 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창42:34-35그리고 난 다음에 비로소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 총리가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 증거로 막내 아들을 데려오라고 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막내 동생을 데려오면 애굽에서 마음대로 무역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에서 있었던 일을 다 고한 후 각자가 자루를 풀고 본즉 각 사람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본 형제들과 야곱은 다 두려워했습니다. 후에 그들이 애굽에 양식을 사러갈 때 절도범으로 몰아 그들을 궁지에 빠뜨릴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창42:36야곱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일평생 두려움 속에서 산 사람입니다. 형에게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날 때 두려워했습니다. 할례 중에 있던 세겜 사람들을 시므온과 레위가 함께 칼을 차고 죽었을 때에도 두려워했습니다. 지금은 요셉이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까지 빼앗길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야심이 있었지만 꿈은 없었습니다. 욕심은 있었지만 비전은 없었습니다.
꿈과 야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타인 지향적입니다. 그러나 욕심과 야심은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 지향적입니다.
야곱은 축복은 받았지만 그 당대에 남을 위해 존재하지는 못했습니다. 자기중심적, 자기 소욕적인 살의 방식 때문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가 한 일이 있다면 자녀 12명을 낳은 것입니다. 요셉이라는 아들을 잘 낳은 것입니다.
요셉의 특징은 그가 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의 꿈은 자기 욕망이나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타인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욕심이 많은 사람,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는 사람,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한때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던 박노혜 시인은 그의 책 ‘오늘은 다르게’에서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나뿐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 많습니다. 소유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 소유를 빼앗아 가지는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피해 의식이 많습니다. 내 것을 빼앗아 가고, 내 위치를 빼앗아 가고, 내가 가진 것들에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가 소유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쟁취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노력, 내 성취의 대가이기에 빼앗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청지기 의식이 아닌 소유 의식이 강합니다. 은혜아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은혜 중심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있다는 율법 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은혜의 영은 자유케 하는 영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그러나 율법의 영은 두렵게 하는 영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5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소유한다는 청지기 의식으로 삽니다. 꿈을 이루는 목적이 곧 남을 위한 봉사이기에 피해 의식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것을 빼앗긴다 해도 나눔을 위해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원한도 없습니다. 다만 자리를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빼앗길 바에는 나누어 주는 여유를 가지고 삽니다.
그렇다면 꿈꾸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을까요? 꿈꾸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꾸는 사람은 두려움 중에도 전진합니다. 두려움을 직면하고 두려움을 정복합니다.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창42:37아버지 야곱이 낙담한 모습을 보고 르우벤은 만일 아버지께서 베냐민을 데려가게 허락해 주시면 자신이 그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합니다. 만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다고 확언합니다. 야곱은 이미 두 아들을 잃었는데 자신의 두 손자를 죽여서 무슨 만족을 얻겠습니까?
르우벤은 그저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는 아마 이 장자에게 오랫동안 크게 실망해온 부친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것이었겠으나 오히려 자신을 더욱 어리석게 보였을 뿐입니다.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창42:38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는 야곱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보면 영적인 안목이 전혀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자기 아들 잃은 것을 생각하고, 또 다른 아들을 빼앗길까봐 걱정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신을 해롭게 하는 사건이라고 해석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야곱을 해롭게 하는 사건입니까? 아닙니다. 야곱에게 영광을 주는 사건,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 요셉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자신의 관점, 아들들의 관점에서 보니까 그것을 복된 사건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지 마십시오. 현재의 관점에서 보지 마십시오.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한다면,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복된 사건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억울함과 누명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들이 야곱과 요셉의 경우처럼 복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건을 고통으로 해석하고 막내 아들 베냐민마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인간적인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데려가는 것은 베냐민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베냐민을 통해서 야곱의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야곱이 요셉과 재회하게 하시고, 그들을 영광의 자리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야곱과 같은 위기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연히 세상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