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온전히 연합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42:18-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창42:18사흘 만에 : 그들 모두를 감옥에 가둔지 사흘 만에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요셉을 던져 넣었던 구덩이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창42:15그런데 감옥에 갇힌 지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놀라운 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생명을 보전하라.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을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가둔 애굽 총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애굽 나라의 총리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너희 생명을 보전해 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창세기에 처음 나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1:21"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10:12-13형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애굽 총리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죽이려는 기세로 정탐꾼으로 몰아가던 그 애굽 총리가 나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면서 그들의 생명에 대해서 염려하여 “생명을 보전하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창42:19"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창42:16-17요셉은 가나안에서 곡식을 구해서 오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여 형들에게 해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형들 중 한 사람만 애굽에 남고, 나머지는 곡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의 굶주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원래의 방식대로 한 사람만 간다면 그가 가져갈 수 있는 곡식의 양이 제한 될테니 한 사람만 남고 9명은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창42:20집안의 굶주림을 해결할 후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요셉의 이 요구는 간단한 것 같지만 실은 진땀을 빼게 하는 요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막내 아우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겠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창42:36요셉은 이렇게 정확하고도 결정적인,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문제를 던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형들은 요셉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42:21드디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납니다. 고난의 의미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합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여러분, 지금 사건과 그 당시 사건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딜레마에 빠지면 삐질수록 자신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면의 숨은 죄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 정도면 되지 않았습니까?”합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진땀나는 일들이 계속 생깁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숨어 있는 죄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을 보십시오. 자꾸만 계속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오래 전의 죄를 떠올리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계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적당히 생각했지만 하나님에게는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해결받기를 바랍니다.
미움, 분노, 한이 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복은 강줄기를 타고 물 흐르듯 흘러넘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복이 흘러넘쳐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요셉의 형들은 요셉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고난이 없었다면 요셉 사건은 영원히 사장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끄집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과 하나님과의 만남은 깊어지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2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것이 범죄라고 고백합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이 복의 시작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심판의 시작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래 전에 동생 요셉에게 저지른 잘못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3요셉의 형들은 현재 자신들이 받는 고통이 과거에 요셉이 당한 고통의 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고통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일이 막일까? 왜 일이 잘 안될까?”하는 의문이 드는 일에 영적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배우길 바랍니다.
혹시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일은 없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남에게 준 고통이나 상처를 잘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은 사람은 잘 기억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상세히 기억합니다. 이것이 상처를 준 사람과 상처를 받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상처만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모욕하고, 상처를 준 일들이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한 사람에게는 인생을 일그러뜨리는 문제로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여러분이 이런 문제가 있다면 성령님이 그것을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고난의 이유였습니다. 기근이 있고, 스파이로 몰리고, 감옥에 사흘 동안 갇히고, 베냐민을 데려와야 하는 난제를 통해 요셉의 형들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참회의 복입니다. 회개의 복입니다. 만일 그때 요셉이 아는 척 했다면 이 문제는 땅 속에 묻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피상적인 해결로 끝나 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최대 위기가 바로 이 피상성입니다. 그것은 적당히 예수 믿는 것,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이상 끝”
그러나 그 사람은 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신앙은 얄팍하고 감정적이고 신뢰성이 없습니다. 깊이가 없습니다.
회개의 깊이는 신앙의 깊이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뼈와 살 속에 박혀 있는 무서운 죄악들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지 않고 단지 몇 마디로 끝내버리는 데서 그쳤기 때문에 깊은 복은 그 사람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고난과 역경이 오면 견뎌 낼 힘이 없습니다. 신앙의 깊이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다가오면 쉽게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참회의 깊이, 신앙의 깊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 일에 대한 다윗의 참회가 담긴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이 그냥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했는지 시32:1-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시32:1-4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받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 출세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행복 축에도 못 낍니다. 또 마음에 간사가 없고 야훼께 정죄를 당치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내 뼈가 쇠하였도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뼈가 녹는 경험을 했습니다. 뼛속 깊이까지 아픈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누르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주의 손이 밤낮으로 누르시니 진액이, 수액이 말라 여름 가뭄에 마른 것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적당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뼈가 쇠하도록, 진액이 마르도록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깊이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너무 감상적이고 능력이 없습니다. 깊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면 다윗은 범죄하고 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51:1-3을51:1-3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 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리고 5절에서는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으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죄를 깊이 묵상하다 보니까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 가운데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죄의 본질을 본 것입니다. 죄의 뿌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피상성, 냄비처럼 빨리 뜨거워 졌다가 빨리 식는 믿음은 바로 깊이 있는 회개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2025년 8월 7일 오전 1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