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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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1.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고 성경적인 성 윤리가 회복되게 하소서.

2.

인권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가르치며 기도하게 하소서.

3.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창42:6-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본문 6절에는 요셉 앞에 나아온 형들의 행동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그들은 별 생각 없이 큰 권력을 가진 애굽의 총리에게 왔으니 땅에 엎드려 절했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9절 말씀에서는 요셉이 형들을 알아보고 옛날에 꾼 꿈을 생각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외에도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한 장면들이 창세기 43장 26절, 28절과 44장 14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20년 만에 만났습니다. 만약 그 요셉이 저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나를 죽이려고 외국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인정 없는 형님들에 대해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차분하게, 지혜롭게 이 사건을 대처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에게 복수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형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인가? 양식을 넉넉하게 싸서 아버지 곁으로 보내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웠겠습니까? 남은 식구, 특히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어떻게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 흉년은 앞으로 7년이나 계속될 것인데 어떻게 사랑하는 내 가족을 이곳으로 인도하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부족한 나를 통하여 펼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인가? ‘꾼 꿈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 순간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까? 요셉은 진지하게 이 사건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요셉이라는 인물의 됨됨이입니다. 총리로 지명 받고 그 향연이 계속되고 있을 때에 이제 꿈이 이루어졌구나 하고 부귀영화에 도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라를 살피기 위해 안락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총리가 되는 것이 꿈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섬기는 것, 나라와 세상을 살리는 것이 목적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사브낫바네아다. 내가 세상을 살린다. 요셉은 자신이 살아온 목적과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조그마한 성공과 성취가 있다고 너무 쉽게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성공은 위기일 수 있습니다. 성공 자체가 목적인 줄 알고 너무 쉽게 허리띠를 풀고 성공에 눌러앉아 본래의 사명, 본래의 목적, 초심을 잃어버리는 삼류 졸장부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공과 권력을 움켜쥐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손을 펴고 나누고 섬기라고 준 것입니다. 권력은 움켜쥐면 주먹이 되고 힘이 되어 사람을 다치게 됩니다. 그러나 주먹을 펴면 사랑의 보자기가 되어 아픈 사람을 감쌀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은 높은데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낮은 데로 내려가는 것임을 요셉은 알았습니다.

요셉이 꿈을 붙들고 살아온 것 같지만 꿈이 요셉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십니다. 내가 기도를 붙들고 살면 내가 기도를 붙잡은 줄 알았는데 기도가 나를 붙잡아 줍니다. 내 삶은 시시한 삶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사브낫바네아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영광스런 삶이다. 요셉은 자기 선언이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도 끊임없이 자기 선언을 하셔야 합니다.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간 존재가 아니다.

나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나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부흥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땅에 엎드려 절하며 쩔쩔매는 형들을 보면서 요셉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형님들 제가 요셉입니다.’ 보라는 듯이 자기를 밝히고 자랑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빨리 쌀을 실어보내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동생의 안부가 얼마나 궁금했을까요? 고향 땅의 소식은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입니다. 자기 감정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앞에 경외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감정으로 꿈을 다치게 하지 마십시오. 성급한 판단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멈추게 하지 마십시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때때로 너무 성급한 판단과 감정 때문에 꿈을 그르칠 때가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요셉에게 있어서는 빈 자루에 양식을 채워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형들의 빈 가슴에 하나님을 채워주고 하나님의 말씀과 꿈을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이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꿈이 얼마나 정확하게, 얼마나 섬세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서투른 동정과 어설픈 감정으로 하나님이 주신 꿈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나를 넘어서 내 형제들에게, 내 형제들을 넘어서 내 가족과 가문, 그리고 민족과 열방을 향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제할 수 없는 그 격한 감정의 순간에도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친 세상 한복판에서 거칠게만 살아왔던 요셉이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마음 밭은 상처로 얼룩진 가시밭 같았을 것 같은데 지금 따뜻한 온기가 한껏 느껴집니다. 요셉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청년시절을 보내며 잔인하고도 차가운 대접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의 마음 밭이 얼음장이 되어 있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마음을 복수심과 원한으로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지켰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것이 성공이요 승리임을 알았습니다.

형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동생 베냐민에 대한 그리움이 속속 배어 있습니다. 창세기 42장 본문에서 베냐민을 지칭하는 말이 대명사까지 합치면 16번씩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통역을 세워 심문을 하는데 형들이 히브리말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요셉은 다 듣습니다. 자신이 형들에게 매달려 애걸하던 상황을 형들이 말하자 요셉은 그 방을 뛰쳐나가 엉엉 울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43장에서는 동생 베냐민을 보고 웁니다. 45장에서는 큰 소리로 웁니다. 방성대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꿈꾸는 자 요셉에게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종살이하면서도 감옥에서 엎드려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물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눈물은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픔을 치료해 줍니다. 눈물은 영혼을 맑게 해 줍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해 우는 눈물, 감사해서 우는 눈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우는 눈물이라면 더욱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꿈을 이루는 자는 마음이 따뜻합니다.

소위 감성지수가 높습니다. 감성지수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좋은 방향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감성지수란 타인의 감정도 잘 이해하고 함께 감정을 나눌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감성지수란 자신과 타인 그리고 공동체를 행복하고 기쁜 방향으로 동기 부여해 주는 능력을 말합니다. 요셉을 비롯한 성경의 위인들은 모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현재의 꿈이 당신의 미래 인생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꿈을 꾸고 계십니까? 그 꿈을 꾸며, 꿈을 생각할 때마다 행복하십니까? 당신의 행복한 꿈은 가족을 살립니다. 이웃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 꿈은 주변의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꿈의 질적인 차이가 인생의 질적 차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현재의 꿈이 미래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주 안에서 꿈을 꾸십시오. 나를 향한 꿈을 말입니다. 내 가정을 향한 꿈을 말입니다. 내 교회를 향한 꿈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득 안고 뜨거운 헌신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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