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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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1.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2.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와 평강을 얻게 하소서.

3.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창42: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보고 (형들이 자기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창42:7

17세 소년 요셉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었던 형들이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 절하고 있습니다.

동생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이 20년이 지난 후, 전혀 다른 위치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과 곡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구하기 위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형들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최근 같은 중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두 친구가 30여년 후에 한 친구는 판사로, 다른 친구는 피고인으로 전혀 다른 위치에서 만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절도 협의로 법정에 선 미국의 40대 남성이 판사의 얼굴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앞에 앉은 판사가 30여 년 전 같은 반 여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사는 아서 부스는 절도를 하고 달아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법원에 출두했습니다. 재판석에 않은 민디 글레이저 판사는 부스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혹시 노틸리스 중학교에 다니지 않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판사는 자기 앞에 서 있는 피고인이 자신의 중학교 동창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이럴 수가”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글레이저 판사는 “부스는 반에서 가장 친절한 소년이었고 또래의 귀감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풋볼을 하며 놀곤 했다”라고 회상하며 현재 그의 모습은 중학교 시절 그에 관한 기억과 너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누구를 만나도 당당할 수 있도록 코람 데오의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 요셉은 형들을 보고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일 줄은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 넘긴지 오랜 시간이 경과했으며, 애굽 총리인 요셉 앞에서 고개조차 제대로 들 수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일까요? 요셉과 그 형들을 만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인생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형들에게 당한 배신입니다. 요셉은 의인입니다. 정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기에 이 일들을 다 용서하고 잊어버렸을지 모릅니다.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창41:51

그러나 잊어버리고 용서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 문제는 살아있습니다.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요셉의 형들은 모르는 척, 잊어버린 척,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들이 동생 요셉을 애굽에 팔았던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것이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죄는 세월이 간다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간다고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간다고 우리들이 저지른 죄가 묻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앙금, 죄책감이 술을 마신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두 가지 숙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억울한 누명과 고난을 어떻게 벗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정말 억울한 사람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나를 이렇게 누명을 쓰고 살게 하시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의 누명을 벗겨 주셔야 하지 않는가?󰡓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숙제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됨으로 누명을 벗게 됩니다.

두 번째 숙제는 형들을 어떻게 용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은 이미 다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을 일방적으로 용서했지, 만나서 화해의 관계를 갖지 않았기에 요셉에게는 이것이 숙제로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형들을 만나서 가슴을 열고 화해해야 합니다. 형들은 동생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앙금이 있습니다. 용서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 안됩니다. 풀어지지 않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또 개입하십니다.

용서를 하지 못해서 앙금이 생겨 고통의 세월을 보낸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야곱이 용서를 빌어야하는 경우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게는 두려움, 무서움, 불안의 고통이 있습니다. 야곱은 형을 만나지 않으면 해답이 없기 때문에 부인과 아이와 가족들을 데리고 원수 같은 형 에서를 만나러 갑니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아무리 해도 자신의 마음에 평강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러 떠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형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가족들을 앞서 보내고 만약의 경우에는 도망하려고 하지 말고 앞장서서 에서를 만나라는 하십니다. 자기 고집을 꺽지 않자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도망칠 수도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절뚝거리며 에서를 만납니다. 야곱이 에서를 보자마자 무엇이라 합니까? 󰡒형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셔서 형이 이미 용서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경우도 야곱과 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경우는 형들이 잘못한 경우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찾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근이 왔습니다. 그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왔다가 생각지도 않게 요셉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인간의 지성과 인간의 상식과 머리로 계획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보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섭리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만남입니다.

내가 왜 이 여자를 만났는지, 이 남자를 만났는지, 섭리로 풀지 않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예수와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예수 믿는 여자가 시집와서 드디어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런 것이 섭리입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참 어렵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나온 고통과 방황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만나러 오는 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하나님의 섭리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자연현상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만드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진과 기근과 전쟁을 이용하기도 하시고, 재앙을 이용하기도 하십니다.

요셉의 형들은 꿈에도 요셉을 이런 자리에서 만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애굽에 가는 상인들에게 판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이 문제를 피해보고 싶고 잊고 싶었던 것처럼, 죄 가운데 빠진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고 싶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이 매일 밤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힌 것처럼,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합니다. 하나님이 기근을 통하여 요셉에게로 요셉의 형들을 몰고 가는 것처럼, 하나님은 나를 예수님 앞으로 몰고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몰랐습니다.

마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인 줄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자신들 앞에 요셉이 있었지만 요셉을 몰랐던 것처럼, 내 앞에 예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구원자가 계셨지만, 몰랐던 것입니다. 이 두 관계가 얼마나 비슷한지 모릅니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창42:7

요셉이 형들을 모른 체 한 것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요셉이 형들을 아는 체 했다면 그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들이 회개하기도 전에 “내가 당신을 용서했습니다”라고 하면, 그들은 과거를 깊이 참회할 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요셉이 그들을 용서했다고 말하면 형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저놈이 언제 나에게 보복하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럴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50:15-17

요셉이 형들을 아는 체하지 않고 거칠게 대함으로 말미암아 형들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게 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회개와 참회를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이 “네 죄를 용서했다󰡓고 하시면, 그 사람은 참회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정말 하나님 앞에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며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용서하시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깊은 참회와 회개와, 내 인생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하는 그러한 과정을 만들어 가십니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은 왜 나를 골탕 먹이시나? 빨리 해결해 주시지,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시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를 다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회개를 못했는지,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 아닙니까? 요셉은 형들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2025년 8월 5일 오전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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