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스페인 복음화와 아프리카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상화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창42: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창42:3-5야곱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잃을까봐 두려워서 그를 애굽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야곱의 모습을 통해서,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상처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창42:4이 말씀은 야곱이 20년 전의 마음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0년 전 야곱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을 잃었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이 낳은 자식입니다. 라헬은 요셉을 낳고, 그 후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미 없는 두 아들을 남달리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아들들은 영리하고 착한 동생을 애굽으로 팔았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아직도 그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동생인 베냐민을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는 아들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에게 재난이 미칠까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그 후에도 사건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의 레이첼 예후다 박사팀은 트라우마가 유전자를 통해 자녀에게도 옮겨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만큼 트라우마는 치유되기 힘들고 정신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족이 희생당한 경우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가 더욱 힘듭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의 예로,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했던 약 100만명이 희생된 인종 학살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르완다에서는 인종 학살 이후 오순절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오순절 교회가 인종 학살 생존자와 가족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를 사역의 중심으로 두었고, 그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교회 목사인 댄 무하이어 목사는 르완다의 오순절 교회가 천국을 마음에 두고 희망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르완다인들이 마음을 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진리의 메시지는 사람을 바꾼다.
가톨릭 신자였던 클라우딘 미카이상가는 대학살 사건으로 큰 고통에 휩싸였지만 오순절 교단인 하나님의 성회로 옮겨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경험한 후,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에서 벗어나고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간증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 교회 목사인 폴 가시기 목사는 성령을 경험할 때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라우마는 파괴적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영의 열매가 있으면, 트라우마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다. 우리 안에는 이미 희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살펴보고 싶은 것은 그 무엇이 야곱의 가슴에 이토록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까? 바로 시기였습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언 14:30)는 말씀처럼 아들들의 시기의 결과는 아버지의 뼈를 썩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을 시기하여 동생을 애굽에 팔았던 형들은 20년 후 그 동생 앞에 무릎을 꿇고 생명을 구하고자 애걸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시기의 열매입니다.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약3:14-15이솝 우화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의 모두 문병을 왔는데 여우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여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늑대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우에게 복수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늑대는 사자에게 간언을 했습니다. “숲 속의 왕이시여, 여우가 문병을 오지 않는 것은 필경 대왕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엄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마침 그때 여우가 도착했습니다. 사자는 크게 노하여 물었습니다. “네 이놈, 왜 이리 늦었느냐?” 여우는 늑대의 간언을 눈치채고 꾀를 냈습니다. “대왕의 병을 고칠 약을 알아보느라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래, 그 약이 무엇이냐?” “늑대의 가죽을 벗겨 그것을 뒤집어쓰면 금방 병이 낫는답니다.” 사자는 코앞의 늑대를 잡아 가죽을 뒤집어썼다는 것입니다. 시기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입니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창42:6본문은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려간 지 20년 만에 형들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는 형제들과 헤어진 지 13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나서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7년 동안 온 땅에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요셉이 말한 것처럼 온 땅에 극심한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극심한 흉년이 오자 각 나라의 백성들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행들 속에는 요셉의 형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애굽은 큰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곡식을 각 지방에 저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왔다는 것은 요셉이 자신이 꾼 꿈을 생각하고 언젠가는 형들을 만날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방인들은 반드시 자신에게서만 곡식을 살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양식을 사러 애굽에 온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동생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앞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총리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20년 만에 만난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격은 무르익었고, 그의 지도력은 온 땅을 다스릴 만큼 탁월했습니다. 지성과 감성과 영성을 겸비한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환경적으로도 요셉은 풍요로움과 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형제들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도 그 형제들과 똑같이 양치기 야곱의 아들로 태어나 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형제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하는 미숙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17살에 노예로 팔려 와서 수많은 굴곡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제 요셉은 37세의 중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20년 만에 만나보니 요셉과 다른 열 형제들과는 그 차이가 너무나도 엄청나게 커져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토록 큰 차이가 나게 만들었을까요? 꿈의 차이입니다. 꿈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요셉과 형제들, 그들은 똑같이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의 험산 계곡을 지나며 자신을 다듬어 왔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형제들은 요셉의 꿈을 시기하고, 원망만 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만나보니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씨앗 중에 제일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그러나 꿈의 씨앗은 겨자씨보다도 더 작습니다. 꿈을 꿀 때는 그 씨앗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고 또 자라다 보면 그 차이는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요셉, 그는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남의 꿈을 찢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만나보니 찢은 것은 요셉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찢겨진 것은 요셉의 채색 옷이 아니었습니다. 형들 자신의 인생을 찢은 것이었고, 자기 믿음과 자신의 꿈을 찢은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요셉이 특별한 인물이 된 것은 그가 가진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출발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꿈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않은 자의 간격은 세월이 갈수록 크게 벌어졌습니다.
꿈은 씨앗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씨앗 같지만 꿈나무는 점점 엄청나게 성장합니다. 꿈나무는 시련과 고독이라는 물을 마시며 눈물과 함께 성장합니다.
꿈은 인간의 전 존재에 영향을 끼칩니다. 꿈은 꿈꾸는 자를 변화시키고, 성숙하도록 돕습니다. 꿈을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는 출발점에서는 별 차이를 못 느끼지만, 세월이 갈수록 엄청난 차이를 갖게 됩니다.
요셉의 꿈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 그리고 전 인류에게 놀라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나누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에게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꿈은 소유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과사의 문제입니다. 꿈이 없다면 미래도 없습니다. 성장도 없습니다. 살아 있지만 죽은 자와 같습니다. 조지 버나스 쇼의 말처럼 30세에 죽고, 60세에 묻히는 사람과 같습니다.
흔히 듣던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서 달걀과 함께 부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독수리가 자신이 독수리인 것을 알지 못하고 어미 닭을 쫓아다니며 먹이를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다른 병아리들을 다 노랗고 예쁜데, 자신은 시커멓고 못생겼다고 구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 높이 떠 있는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독수리를 본 닭들이 모두 숨기에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독수리 새끼는 그 독수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설랬습니다. 뭔가 자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날아 보려고 날개짓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틀비틀 잘 날 수 없었지만 곧 날개를 쫘-악 펴고 창공을 날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를 독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병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독수리 인생과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40:31여러분 모두가 독수리 같은 인생이 되어서 더 높이, 더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꿈을 안고 달려가는 사람은 결코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꿈을 안고 달려가는 사람은 결코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 앞에 좌절하지 마시고 꿈을 안고 내일을 향해 날아오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8월 3일 오후 12: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