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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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시니어 세대를 위하여

1.

시니어 세대의 현재 삶이 지나온 삶보다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시고 기도와 섬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영육간에 강건케 하소서

2.

시니어 세대에게 주신 영성과 지혜를 사용하여 돌봄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 사역의 주체가 되게 하여 꿈꾸는 시니어가 되게 하소서

3.

시니어 세대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여 다음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셔서 성숙한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 쓰임받게 하소서.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41:54-5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창41:54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흉년의 때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번영의 때에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곧 찾아올 흉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창41:48-49

요셉은 7년 풍년 동안에 7년 흉년에 쓸 곡식을 저장했습니다. 어떻게 곡식을 7년 동안이나 잘 저장했을까요? 지금도 그 당시에 곡식을 저장했던 기술에 탄복하고 있습니다. 냉장고도 없었던 그 시대인지라 특수 공법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번영의 때에 하나님이 축복을 부어 주실 때에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풍년이 있던 7년 동안 잘 준비하여 7년 기근 때 애굽 백성뿐 아니라 이웃 나라를 도왔던 요셉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요셉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저축하는 이유는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안전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저축하는 이유는 첫째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에 잘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을 가장 아름답게 쓰는 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물질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하는 길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물질을 가져갈 수는 없어도 미리 하늘에 쌓아 둘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부자가 아닙니다. 돈이 많지만 일평생 동안 한 사람도 부요케 하지 못했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참된 부요함은 나눔과 배품에 있습니다. 성경적인 부자는 나누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나누고 배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누지 못함은 가난함의 증표입니다. 참된 섬김은 나눔과 배품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요함은 나눔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나눔의 생애였습니다. 주님은 진리도 지혜도 사랑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눔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이해인 수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건만

우리의 날들은 어찌 이리

소유를 위해서만 숨이 차게 바쁜지

시시로 당신 앞에 성찰하게 하소서

진정 당신 안에서가 아니면

나눔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우리

당신에 세상에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아낌없이 모든 것 내어 주고도

한끝의 후회가 없는

너그럽고 순수한 마음을 주소서

나눔은 소유의 많음에 있기보다 존재의 넉넉함에 있습니다. 여유와 내면의 충만을 누리는 자만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나눔은 물질의 과다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입니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부요한 사람입니다. 나눌 수 있는 자만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나눔은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항상 나눌 것이 있습니다. 주고 또 주고도 줄 것이 남은 연인들의 마음처럼, 더 주지 못해 안달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나눔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나눔은 희생으로 시작되지만, 풍성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기쁨은 나눌 때 그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눌 때 그 슬픔이 절감이 됩니다. 깊은 샘물을 퍼내면 퍼낼수록 맑은 물이 올라오듯이, 우리의 삶은 나눔으로 더 풍성해 집니다. 요셉처럼 우리는 나눔을 위해 준비하고 섬김을 위해 예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리라"

창41:55

바로왕은 요셉을 신뢰하여 전권을 맡겼습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바로는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저는 요셉을 세운 바로에게서 탁월한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배우는 것도 지혜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는 인재를 등용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만 했던 지도자였습니다.

바로는 자신 안에 요셉과 같은 지혜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등용했습니다. 바로는 다른 사람을 성공시킴으로써 자신이 성공한다는 원리를 터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성공시킴으로써 자신이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바로는 자신의 체면이나 위치보다 자신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왕이며, 백성을 위해 존재함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영광을 받고, 누가 권세를 가지고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의 복지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세워 자기 백성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는 신분, 배경, 학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실력임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애굽의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요셉의 인품과 실력을 보고 그를 등용했습니다.

바로는 위임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일을 맡길 뿐 아니라 권한도 주었습니다. 그는 요셉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일을 잘하도록 후원자의 역할을 감당했을 뿐입니다. 사실 바로는 명목상의 왕이라고 할 만큼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위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보다 훌륭한 인물을 세울 만큼 덕성이 있는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탁월함은 사람을 알아보았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가 탁월한 지도자였다면 요셉은 탁월한 이인자였습니다. 요셉은 절대로 자기 위치를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인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길 소원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창41:45

바로가 요셉에게 준 이름은 사브낫바네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세상의 구주입니다. 요셉에게 지어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는 요셉에게 신성을 부여할 만큼 요셉을 인정했습니다. 요셉의 말을 들으면 백성이 살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바로에게 나와 부르짖을 때에도 바로는 요셉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55절을 보십시오.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리라"

창41:55

바로는 요셉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철저하게 바로 앞에 순종합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바로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지혜란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변함없이 정해진 자리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면 추해집니다. 이런 추한 모습을 잠언 19:10에서는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무엇일까요? 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피는 핏줄 안에 흐르고 있을 때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핏줄이 터져서 피가 밖으로 흐르면 결코 귀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아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아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셨습니다. 아버지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뜻을 좇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아들로서의 위치를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사랑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영원히 형통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요셉이 성공 중에도 타락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겸손한 자세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지혜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성공의 자리가 자신의 노력으로 인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축복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22:4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18:12

우리의 위치를 망각하지 맙시다. 겸손을 우리 삶의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살아갑시다.

성공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성공은 섬김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성공은 오래 머무는 자리가 아닙니다. 정상은 그 곳에 오래 머물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려와 섬기도록 주신 자리입니다. 정상에 오래 머물면 죽습니다. 타락합니다. 내려와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성공은 섬김을 위한 디딤돌이 될 때 빛이 납니다. 섬김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셉은 잘 섬기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웁니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41:56-57

요셉은 기근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곡식을 그냥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팝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무조건 나누어 주면 큰 일이 납니다. 공짜라면 양재 물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허락한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주는 것이 섬김은 아닙니다.

사람은 이상합니다. 공짜로 주면 귀한 것을 모릅니다. 너무 쉽게 얻은 것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구원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구원이 값싼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비싼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희생하는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얻는 고귀한 것은 다 비싼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요셉의 섬김은 훈련된 섬김입니다. 요셉의 사랑 또한 훈련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거친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잘해주고 격려 한다고 해서 사랑이 아닙니다. 격려와 책망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참으로 돕기 위해서는 한계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요셉이 하는 일이 인색해 보입니다. 또한 섭섭한 마음까지도 갖게 합니다. 백성들은 당장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 칩니다. 그러나 요셉은 7년을 내다보면서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행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착한 사람입니다. 어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람, 진정한 섬김을 위해서 냉정하리만큼 자신을 절제합니다. 가슴은 따뜻하지만 겉으로는 냉정하게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것은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과 섬김을 위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습니까?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게 위해서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에릭 프롬은 목공의 기술을 다루든 의학의 기술을 다루든 일반적인 요청이 있다. 우선 기술의 실용에는 훈련이 요구된다. 훈련된 방식에 의하여 이 기술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이 기술에 숙달되지 못할 것이다. 기분이 내켜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재미있는 취미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 기술이 숙달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랑을 실천함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랑의 기술을 익히는 것과 함께 기다림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훈련하고, 인내하면서 실천한다면 사랑과 섬김에도 탁월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살리는 일에 생명의 부양자로 귀하게 쓰임 받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2025년 8월 1일 오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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