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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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1.

국제적인 경기 침체가 하루속히 안정되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2.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3.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컨텐츠를 제작해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41:50-5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창41:50-51

이 말씀 속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로 세우셔서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7년 동안 풍년을 주셔서 넘치는 풍요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거기에 더하여 아내의 사랑을 받으며 아들까지 낳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요셉의 모든 고난뿐 아니라 아비의 온 집을 잊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모든 아픔을 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런 복된 경험을 통해 요셉의 상한 마음이 치유됩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잊어버리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실 권세 있는 자가 원한을 품으면 무서운 파괴를 하게 됩니다. 힘없는 자야 원한을 품어봐야 한계가 있지만, 힘 있는 자가 원한을 품으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십시오. 아름다운 전통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복수와 보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민족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역사가 다 비슷합니다. 세상의 역사는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죽이고 보복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의 생애 가운데는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대한 보복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의 형제들에게도, 그를 감옥에 넣었던 보디발의 아내에게도, 자기를 잊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도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요셉의 마음에 있었고,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 또한 사랑과 용서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의 고난과 그 아비 온 집 일을 잊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은 용서한 사람에게 더욱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의 과거의 고난과 형들이 자기에게 한 모든 일을 잊기로 결정한 것은 용서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과 잊는다는 것은 함께 갑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의 지나간 과거를 잊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는 이 두 가지 삶의 태도, 용서와 잊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하나님의 축복은 용서하는 마음 위에 풍성하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과 그를 괴롭힌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허물을 잊기로 결단한 후로 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둘째 아들을 주셨습니다. 52절을 보십시오.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41:52

요셉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창성이라는 뜻을 가진 에브라임으로 짓습니다. 첫 번째 아들 므낫세를 낳은 사건이 요셉에게 있어서 ‘용서의 사건’이었다면 두 번째 아들을 에브라임을 낳은 사건은 ‘창성함의 사건’이었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을 용서한 다음에 하나님은 더 놀라운 축복과 창성함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원한 맺힌 모든 사람들을 용서한 후에 더 큰 축복과 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용서는 축복을 가져옵니다. 원한은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파괴합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자신이 미움의 불덩이를 안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욥의 생애를 통해서 배우는 가장 소중한 것도 용서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 많은 아픔을 경험합니다. 가장 큰 아픔은 욥의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받은 상처입니다. 위로하기 위해 온 그의 친구들이 오히려 더욱 공격합니다. 욥을 이해해 주기는커녕 큰 상처를 입힙니다.

욥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욥을 부르십니다. 그의 고난이 때가 끝나고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때에 하나님에 욥에게 요구하시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42:8-10

사실 하나님이 욥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욥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욥에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자기를 괴롭혔던 벗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그들을 용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와 화해를 원하셨습니다. 욥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욥이 벗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끝났을 때 임했습니다. 욥이 잃은 것보다 갑절이나 많은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용서의 기도를 드린 후에 말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회개하면 천국이 임합니다. 용서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죄를 고백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5:16

서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베풀고,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할 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드린 기도는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눅23:34

예수님은 부활 후에,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제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성령을 부어 주시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용서는 더 큰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담은 수레는 용서의 수레입니다. 용서라는 수레 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쌓여 있습니다. 요셉은 고난의 수레에서 버금 수레로 바꿔 탔습니다. 그리고 버금 수레에서 용서의 수레를 타고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아름을 준 사람들의 앞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그들의 인생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도 풀립니다. 우리들의 앞길도 함께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들과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후에 요셉이 그의 형제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형제들을 하나님 앞에서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면 요셉에게서 복수라는 독침이 나갔을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고름이 생기고, 그 상처에서 독이 납니다. 성차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또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무서운 독이 됩니다. 바로 그것이 쓴 뿌리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하는 길은 용서 뿐입니다. 용서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용서할 때 복수라는 무서운 집착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게 살게 됩니다. 복수라는 안경을 벗을 때 눈이 밝아지고 세상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또한 그 눈이 열려 사명을 자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진정 섬기기 위해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쓴 뿌리는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의 육체 까지도 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알란 패턴은 ‘한 가지 변함없는 법칙이 있다. 우리가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용서하지 않는 한 치유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수라는 작은 씨앗이 우리 마음에서 자라지 않게 해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기 전에 뽑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분냄도 아침내 꽃을 피워 독이 든 열매를 맺는 독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독 나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향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향나무는 찍혀도 향을 발합니다. 예수님은 찍혀도 찍혀도 향을 내셨습니다. 독을 향기로, 배신을 용서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들려진 성공, 물질, 그리고 권력은 사람을 죽이는 흉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의 손에 들려진 형통, 번영, 그리고 권세는 사람을 살리는 섬김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여러분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하나님께 드러내어 치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풍성한 환경의 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 드리십시오. 환경이 우리를 치료할 수 있지만 모든 궁극적인 치료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에 치료의 능력이 있으며, 길르앗의 향유인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에 치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환경은 치료를 높이는 분위기의 역할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셉의 크고 놀랍고 풍성한 축복은 원수를 용서하고 그의 죄를 잊기로 선택한 순간에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들을 용서로 풀어 놓으십시오.

용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쌍두마차와 같습니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과 용서하는 사람 모두를 풀어 놓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하도록 도와줍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도 아름답게 해석됩니다. 과거의 사건 속에 담겨 있는 독소들이 사라집니다. 과거의 사건을 바로 직시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목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해석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안목이라는 새로운 안경을 쓰고 인생을 보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지나간 과거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과거의 고통스런 사건 속에 하나님의 다정한 손길이 있었고, 섭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힘들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위기는 위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기회였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5-8

우리는 상처를 별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의 생애 속에도 요셉과 같은 복을 누리는 순간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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