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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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방송 연예 종사자들을 위하여

1.

방송 연예인들이 세상의 인기와 명예보다 더 고결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건강한 대중문화가 실현되게 하소서.

2.

크리스천 연예인들을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하셔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3.

방송·연예계의 우상숭배와 미신의 관습이 끊어지게 하시고 음란하고 퇴폐적인 죄의 문화들이 방송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39:13-2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창39:13-18

육체적 성적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보디발 아내는 자신의 유혹이 거절 당하자 여자로서 느꼈던 치욕적인 부끄러움이 증오심으로 변하여 요셉을 모함하기 시작합니다.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창39:14-15

적반하장입니다. 크게 소리를 질렀다면 종들이 다 들었을텐데 종들이 여주인의 얘기를 듣고 잠잠합니다. 그녀의 얘기를 믿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신분으로 인해 주인인 그녀의 얘기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억울한 일입니다. 요셉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손에는 자신이 놓아두고 간 옷이 있고 도망치는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은 무섭습니다. 윌리엄 컨그리이브는 ‘미움으로 변한 사랑만한 사나움이 하늘에는 없고, 무시당한 여자의 분노만한 격분이 지옥에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의 분노는 그 남편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또 다시 버림받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요셉은 그의 두 번째 옷도 잃어버렸습니다. 그가 즐겨 입던 채색 옷은 형님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가정 총무의 옷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순결이었습니다. 그의 양심이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반응하는 삶의 태도였습니다.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39:19-20

여기서 또 다른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요셉이 반항하고 항거했다는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그녀를 비난하여 곤경에 빠지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신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호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남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상황에서도 모함과 비난을 이겨냅니다. 그가 이런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함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에게 알 수 없는 고난과 모함과 억울한 일이 찾아올 때, 인간적인 고통을 느낄 때 요셉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하면 모함과 억울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이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거야, 여기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갖는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신뢰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갖게 하고 우리를 연단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좌절이 찾아오고 미래에 대한 실망이 오며 분노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아기가 열 달을 채우고 세상에 나와야 건강하듯이 하나님은 계획과 때와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떤 수준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여러분을 연단시키며 자라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셉은 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한을 품지 않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민족의 큰 문제 중 하나는 한입니다. 우리는 한을 품을 수밖에 없는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 들어가는 현실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요셉은 선한 양심 하나를 가지고 다시 더 깊은 감옥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거듭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는 어떤 사람을 높이시기 전에 먼저 낮추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은 감옥에 던지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거기에서 다시 한 번 요셉을 준비시키십니다. 요셉을 단련시키십니다. 요셉을 훈련시키십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받은 훈련은 무엇입니까?

요셉이 그의 옷을 두 번이나 빼앗기고, 두 번씩이나 버림받으면서 받는 훈련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는 훈련입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도 자신의 생애를 맡기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훈련입니다. 그가 믿었던 보디발이 자기의 성품과 정직을 믿어주지 않고 감옥에 던졌을 때 그는 배신감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보디발의 분노는 과장된 분노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디발은 자기 아내를 잘 알았고, 요셉도 잘 알았다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고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내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고 요셉을 감옥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보디발이 요셉을 인정하고 믿어 준다면 그 아내의 말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서 그 집안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보디발에게도 버림받으면서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통과해야 할 불이요 건너야 할 강입니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66:12

요셉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에게서 버림받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주인에게서 버림받았습니다. 그것도 충성을 다했던 주인에게서 버림을 받으면서 쓰라린 가슴을 움켜잡아야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충성하던 우리의 상사로부터 버림을 받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가 충성했던 지도자나 사역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멸시를 당하는 경험도 합니다. 때로는 배신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차라리 멀리 있는 사람이면 괜찮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요, 사람들 앞에 거룩하고 의젓한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으면 혼돈과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은 고통은 선행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여인의 달콤한 유혹을 거절했는데 그에게 찾아온 결과는 감옥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데 오히려 오해와 비난의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요셉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상처와 아픔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그런 경험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제자 가룟 유다로 인해 팔리셨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은 예수님이 보시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랑하는 친형제들에게서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자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사렛 동네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행하셨고, 이루었는데 아버지는 십자가에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때에는 예수님의 고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시련을 통과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억울하게 버림받고 고통을 당할 때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의 상한 심정을 아시고 우리를 찾아와 함께해 주십니다.

요셉은 이런 총체적인 아픔을 경험한 구약의 인물입니다. 요셉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충성과 헌신의 결과는 시련으로 보답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뢰했습니다.

요셉은 환경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환경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역행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역행하는 것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오늘 우리가 당한 현실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눈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환경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고난을 통과하는 현장에 함께 하십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2025년 7월 12일 오전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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