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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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1.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고 성경적인 성 윤리가 회복되게 하소서.

2.

인권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가르치며 기도하게 하소서.

3.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창39: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은 꿈꾸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꿈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다루십니까? 요셉의 인생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시련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꿈꾸는 자를 편안하게 두시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역경이라는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성경이 증거합니다. 모세와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 주님과 사도 바울의 생애를 통해서 증명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왜 시련의 장소로, 황량한 광야로 인도하십니까?

꿈꾸는 자는 시련의 물을 먹고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의 성숙에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꾸는 사람에게 시련이라는 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요셉이 이끌려 간 곳은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끌려 갔다’는 것은 손발을 묶어서 데려 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왜 꿈이 있는 사람을 이렇게 다루십니까? 예수님의 생애를 보아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1

인류 구원의 꿈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이끌려 간 곳은 바로 광야입니다. 시련의 장소, 고난의 장소입니다.

또한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꿈꾸는 자를 철저하게 내려가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내려가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에서 구유로, 십자가로 음부에까지 내려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내려가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위로 올라서고, 겉으로 드러나길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꾸는 우리를 먼저 내려가게 하십니다. 잊혀진 존재로 감추십니다. 요셉은 도단 땅에 있는 구덩이로부터 애굽에 있는 노예의 구덩이로 옮겨졌습니다.

왜 요셉은 애굽으로 이끌려 갔을까요? 그가 가진 꿈 때문입니다.

꿈을 소유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든지 아니면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으로 꿈꾸는 자의 삶의 터전이 옮겨지든지 합니다. 꿈 때문에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가진 꿈은 너무나 컸습니다. 가나안 땅은 그 꿈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애굽 땅으로 던져진 것입니다. 요셉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큰 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땅은 요셉은 연단하는 땅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시련이라는 쓴 물을 마시게 한 땅이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은 시련이라는 물을 먹고 자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키우시는 원리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입니다.

사람은 꿈은 좋아해도 꿈을 성장하게 하는 시련과 훈련과 연단은 실어합니다. 꿈꾸는 사람은 고난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꿈을 성취하기 원하는 사람은 꿈꾸는 자가 아니라 몽상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가 성숙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꿈을 성취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연구한 로버트 클린턴 교수는 그가 쓴 ‘영적 지도자 만들기’라는 책에서, 하나님이 귀히 쓰셨던 영적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런 시련을 통과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셨던 허드슨 테일러도 시련을 통해 성숙했습니다. 하나님은 허드슨 테일러를 한 시대 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에 영향을 끼칠 선교사로 쓰시기 위해 허드슨 테일러를 혹독하게 다루셨습니다. 그때마다 그를 공격했던 것은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신뢰하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모든 상황이 내게 불리하게 보이는 듯한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문제와 어려운 상황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모든 상황이 내게는 불리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생각합시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나 그 길도 하나님의 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시련의 신비를 알았기 때문에 시련의 순간에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시련의 축복이 되는 날이 올 줄로 확신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폴 투르니에도 ‘사람의 성숙은 성공보다는 실패나 시련을 거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든 사람 중에서 참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고난만큼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하게 되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 위해 육신의 힘도, 자신의 명철도, 세상의 물질도, 세상의 권력도 의지하지 않는 철저한 복종이 이루어진 삶은 바로 고난을 통해서 연단되신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히5:8

그러므로 꿈을 가진 사람은 시련과 역경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훌륭한 항해사는 거친 바다에서 나옵니다. 선율이 가장 아름다운 공명을 내는 바이올린은 고통스런 환경에서 자란 수목 한계선에서 자란 나무에서 만들어 집니다.

꿈꾸는 자가 지불해야 할 시련과 역경의 대가 앞에 절대로 당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시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FB 마이어는 ‘영광스러운 황금 면류관에 앞서 반드시 고난의 강철 면류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두움마저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십시오.

귀용 부인은 ‘나는 어두움을 좋아하도록 배웠다. 처해 있는 환경이 어두울수록 주의 얼굴은 더욱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꿈을 생각하십시오. 꿈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꿈을 생각하면 시련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고난의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요셉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꿈, 아버지의 사랑을 붙잡고 고난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요셉 혼자서 애굽을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내려가십니다.

오스왈드 쳄버스는 ‘하나님은우리가 처한 상황의 기관사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관사가 되셔서 요셉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십니다. 그러나 그 길이 축복의 길임을 요셉이 처음에는 어찌 알았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2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첫번째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요셉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해답은 요셉에게 있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고난의 해답이 여러분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서도 이런 일들이 펼쳐지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주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요셉의 경우에도 미리 그에게 ‘이 모든 것이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께서 문제의 실마리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해주신다면 13년이 아니라 1백년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도 하나님으로부터의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밤중과 같은 상황에 던져집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경우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요셉이 약관 30세에 천하를 호령하던 이방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지만 요셉이 그것을 알 까닭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끔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그토록 착한 사람이 왜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손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질문 하나는 이렇습니다. ‘요셉은 수많은 집이 있는데 왜 보디발의 집에 가게 되었는가?’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곳일까?’

그 해답도 보디발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해답 역시 하나님께 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선택된 이유는 요셉이 바로를 만나는 끈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와 경륜을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삶에는 기계적인 예정론은 없습니다. 모든 섭리와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나온 모든 과거의 해답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해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성공과 실패와 좌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사건들 가운데 의미가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의 앞으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위해서’가 그 해답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예수를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나의 과거가 있었고, 예수를 위하여 나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무척이나 흥분되고 재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

사영리 전도지의 제1원리를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생애를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 전체의 요약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향하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ㅠ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에서 이 사실을 봅니다.

2025년 7월 8일 오전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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