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이 땅의 지도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하여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게 하시며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섬기게 하소서.
주변 강대국과의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이 수립되게 하시어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창37:21-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창"
창37:21르우벤이 듣고 :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37:20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아버지에게는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속이자고 한 말을 르우벤이 들은 것입니다.
인간은 악한 일에 쉽게 뭉칩니다. 단결을 잘 합니다. 왜 이토록 그들이 요셉을 죽이는 데 한 마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원한 때문입니다.
그들이 왜 그토록 원한에 차 있었을까요?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꿈을 자랑하는 요셉을 볼 때 그들의 가슴에 분노가 솟구쳤던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채색 옷을 입고 까부는데, 또 꿈까지 자랑했단 말이야. 이런 놈은 죽여야 해.’
그들의 가슴 속에는 이런 무언의 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원한 맺힌 형들이 요셉에게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도단에서 요셉을 보는 순간 그들 가슴에 불타고 있던 분노가 터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감추었던 감정과 원한은 언젠가는 폭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미묘한지 보십시오. 아버지 야곱이 있을 동안에는 그들의 원한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요셉을 죽이자는 얘기는 결코 나눌 수 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멀리 떠나 있는 순간,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나쁜 일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 중 맏이인 르우벤이 형제들의 의견에 반대했습니다. 혼을 내주되 죽이지는 말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음에 일어날 일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요셉을 살려두면 형들이 한 짓을 아버지에게 고하여 바칠 것이니까요. 그러니 살려둘 수 없다는 의견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르우벤은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합니다.
대중의 속성에는 그렇게 악한 면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할 수 없이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르우벤은 생명은 해치지 말자고 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창37:22요셉을 물구덩이에 던져 넣기만 해도 살아나오기가 어려우니까 광야 그 구덩이에 던져 넣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고 제의 합니다.
여기서 광야 그 구덩이는 어떤 구덩이입니까? 물구덩이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가 귀한 곳인지라 우기 철에 오는 빗물을 모으기 위해 파 놓은 깊고 입구가 오목한 물구덩이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한번 빠지면 누군가가 건져주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두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구덩이를 기가막힐 웅덩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르우벤이 동생들에게 이렇게 제의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나중에 동생들 몰래 요셉을 구덩이에게 건져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르우벤은 자신이 아버지의 첩인 빌하를 범함으로 아버지의 눈 밖에났던 사건 때문에 요셉을 살려 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얻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목숨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면 르우벤 같은 사람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창37:23-24요셉은 형들이 이런 모의를 하는 것도 모르고 음식을 싸들고 형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형들은 먼저 요셉이 입고 있던 채색옷을 벗겼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옷을 벗긴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벗겨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편애를 상징하는 요셉의 옷을 벗기면서 ‘너는 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요셉 때문에 괴로웠던 원한을 하나하나 풀고 있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것이 아니라 요셉의 꿈을 구덩이에 던진 것입니다. 야곱의 사랑을 벗기고 요셉의 꿈을 구덩이에 던져 버렸습니다.
누가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습니까? 먼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입니다. 때로 우리의 꿈을 가장 미워하고 치명타를 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우리 인생의 꿈을 좌절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세워 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들어 주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서로에게 형통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좋은 사람을 두는 것은 축복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를 세워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꿈꾸는 사람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판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룟 유다가 아닙니까?
우리가 꿈을 꾸며 나갈 때 우리의 꿈을 좌절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에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꿈의 성취를 도와줄지언정 꿈을 좌절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꿈꾸는 사람은 요셉처럼 구덩이에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구덩이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이라는 구덩이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구덩이입니다. 실패라는 구덩이입니다. 질병이라는 구덩이입니다. 역경과 시련이 동시에 한꺼번에 찾아와 꿈꾸는 자를 당혹하게 합니다.
요셉은 채색 옷이 벗겨졌습니다. 구덩이에 던져 졌습니다. 점점 내리막길입니다. 결국은 노예로 팔려 애굽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금을 타는 사람으로 왕궁에 들어섭니다. 이후에 골리앗을 죽이고 화려한 출발을 합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그는 사울 왕의 끊임없는 미움을 받습니다. 사울 왕의 정적으로 취급 받으며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다윗은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둘람 굴에 숨어 있습니다. 분명히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미움의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다윗이 시23편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라고 고백했던 것은, 자기 생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높이 올라가는 꿈을 가진 자일수록 떨어지는 구덩이가 깊습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은 것처럼, 건물이 높을수록 기초를 깊이 파야하는 것처럼, 꿈꾸는 자는 시련의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런 혹독한 시련을 요셉은 17세의 나이에 통과하고 있습니다. 17세면 아직도 소년입니다. 고등학생 나이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손길 아래 살던 소년입니다. 그런데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에 시련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모든 보호의 손길이 떨어진 상태, 인간으로 볼 때는 비참한 상태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십시오.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고 그 형들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창37:25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놓고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아마 이 음식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손에 들려 보낸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형들은 동생이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서 동생이 애걸복걸 하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2025년 6월 28일 오전 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