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이 땅의 청년들이 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르고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전을 품고 전진하게 하소서.
세상의 무분별한 가치관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시고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37:9-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37:9지금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기가 죽어지내기 쉬웠습니다. 요셉이 17세 소년일 때에 첩의 자녀와 함께 했었다는 것을 보아도 레아가 낳은 여섯 아들들은 요셉을 상대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주변에는 아버지만 빼놓고는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계모들도 괜히 눈치를 줍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외롭겠습니까? 밤마다 돌아가신 엄마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로 베개를 적셨을 것입니다. 나이어린 동생 베냐민과 어디 멀리 도망쳐 버릴까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셉에게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꿈을 주셨습니다. 형들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무릎을 꿇고 낙심해도 자신만은 꿋꿋하게 일어나서 시대를 구원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형들에게 무시당하고 왕따 당하는 막내지만 장차 머리가 되어서 시대를 이끌어 가리라는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어린 요셉의 가슴에 심어주신 꿈과 비전은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어떤 어떤 역경과 시련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것들을 많이 쥐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입혀 주었던 채색 옷과 같은 사랑을 기대합니다. 다른 형들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 품에 안겨서 재롱이나 피우는 달콤한 솜사탕 같은 사랑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처럼 얕은 수준의 사랑을 베풀기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것보다는 미래적인 것, 유형의 것보다는 무형의 것, 물질적인 것 보다는 영적인 것, 개인적인 것 보다는 역사적인 꿈과 비전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빨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창15:5).
야곱에게도 허허벌판 광야에서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시며 장차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를 연결시킬 제사장의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창28:12).
자칫 잘못하면 채색옷의 사랑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유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서 자족하는 응석받이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에 꿈을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큰 스케일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시련도 능히 참고 견디게 하는 힘을 줍니다.
이를 볼 때에 요셉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채색옷을 지어 입혀 그 품속에 두고자 하는 야곱의 사랑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오직 세계선교의 환상을 심어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이 세계선교 환상이 제자들을 위대하게 만들고 역사적인 인물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시대에도 우리각자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시기 원하십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는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37:10-11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형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들이 적어도 가문 중심만 되어도 오히려 요셉의 꿈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지도자가 나오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사랑한다면 요셉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 요셉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자녀들과 달랐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말을 간직해 두었습니다. 야곱 자신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갈 때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까지 닿고 그 곳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꿈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의 근원 삼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며 많은 영적 자녀를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모든 약속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만난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였고 그의 삶은 꿈이 성취되는 삶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요셉이 말한 꿈을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요셉의 일생도 한마디로 말하면 꿈을 꾸고 꿈이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요셉의 꿈은 인간적인 야망에서 오는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에 이루어질 예언적인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다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셨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두 번의 꿈을 주신 것은 그 꿈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둘은 증인의 수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뒤에 보면 바로는 요셉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하자 꿈을 꾸었습니다.
요엘서에 보면 말세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남종과 여종은 예언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미래에 대해서 강한 영적 소원을 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꿈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에덴동산부터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도 하나님은 이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그 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꿈을 꾸시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아브라함의 무의식 가운데라도 새기기 위해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름도 열국의 아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열 번 이상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아브라함은 하루에 열 번 이상은 사람들이 말하는 꿈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하게 하여서 꿈을 살에 새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꿈을 꾸었고 하나님은 꿈을 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이 꿈을 노예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꿈을 꾸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현실을 보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기도하려고 눈만 감으면 마음 속에서 희망이 솟아오릅니까? 여러분이 잠을 자면 악몽에 시달립니까? 아니면 현실은 힘들고 어렵지만 꿈만 꾸면 신이 납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이 악몽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그들의 미래는 꿈대로 어둡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악몽이 아닌 밝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값을 다 갚으시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모든 병을 짊어지시고 건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심으로 영생을 주시고 천국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밝고 영롱하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2:1760년 전 우리나라는 6.25전쟁 후라 심히 가난하고 피폐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대조동 남의 깨밭에 다 낡은 미군 천막을 치고 고회를 개척한 것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 시작이었습니다. 5명의 성도로 시작한 교회는 너나 할 것이 없이 병들고 가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충만을 받은 조용기 전도사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이 오늘날 세계 최대의 교회, 600명이 넘는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꿈을 꾸고 있습니까? 꿈이 없으면 현실에 눌립니다. 그러나 꿈이 있으면 현실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 꿈을 주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생각인 말씀을 읽고,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꿈으로 어두운 현실을 정복하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6월 25일 오전 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