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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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1.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2.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3.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37: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37:9

우리는 지금까지 야곱을 연단하시고 이스라엘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를 요셉의 인생 이야기로만 국한시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열 두 아들 전체를 아우르고 계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증거로 창세기 37:2절을 보면 ‘요셉의 역사가 이러하니라’ 이렇게 하지 않고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그의 열 두 아들을 장차 이스라엘 12 지파의 기초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셉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들의 죄 문제를 드러내시고 그들의 병든 내면을 치료해 가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뜻하신 인류구속역사를 친히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앞으로 창세기 종반부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섬세하신 섭리의 손길을 볼 수 있길 축원합니다.

먼저 야곱의 자녀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한번 정리해 봅시다. 창세기 34장에서 배운 것처럼 야곱의 외동딸 디나는 세겜 땅의 여자들을 보러 갔다가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였습니다. 이에 그의 친 오빠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보복을 하여 세겜 주민들을 살인하고 약탈했습니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은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창세기 38장에 보면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는 아내가 죽은 뒤에 창기를 찾아가서 자신의 정욕을 채웁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었습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도 잘못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37:2

이렇게 보면 야곱의 자식들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문제투성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조상이 되겠습니까?

장차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이 되어야 할 야곱의 아들들이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 많은 야곱의 가정을 치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요셉이라는 한 아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우리들이 앞으로 요셉을 연단하시고 키워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위해 저와 여러분을 연단하고 키워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셉의 인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옷이 벗겨져서 배척을 당하는 것이나 은 몇 푼에 팔려가는 것이라든지, 감옥에 갇혔다가 총리로 쓰임받게 되는 것, 형들의 죄를 다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 흉년의 때에 자기 가족 뿐 아니라 온 민족을 구원하는 모습들이 예수님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사실 야곱같이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요셉같은 아들이 태어날 수 있는지, 그 자체가 아이러니입니다. 이를 볼 때에 야곱이 요셉을 낳아서 잘 키웠다가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 땅에 보내시고 그의 인생을 섭리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어떻게 키우고자 하였습니까?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37:3

여기서 채색 옷이란 소매가 긴 정장으로서 주로 집안의 장자들이 입는 옷을 가리킵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은 들에 나가 일하기 편한 소매가 짧은 작업복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그러나 요셉만큼은 채색 옷을 입히고 자기 품에 안아 키우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아들이요, 그 라헬이 죽었기 때문에 특별히 더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요셉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37:4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는 형들로 하여금 미움의 감정을 깊이 심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사랑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사랑하여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37:6-7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꿈을 주셨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창37:9

요셉이 같은 꿈을 두 번 겸쳐 꾼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창41:32

이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8절에 보면 형들은 이 꿈이 요셉이 왕이 되어서 형들을 다스리는 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니 기분 나쁘고 요셉을 더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상 요셉의 꿈은 왕이 되어서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꿈이 아닙니다.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형들 위에 군림하거나 다스립니까? 아닙니다. 요셉의 꿈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도자가 되고, 구원자가 되는 꿈입니다.

요셉의 곡식단이 일어나는 것은 가족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절망으로부터 구출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은 요셉의 호의에 감사해서 절하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 야곱의 가정에 큰 시련이 닥치게 될 터인데 요셉이 가족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덕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그 의미도 모르고 무조건 미워하고 시기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꿈을 꾸어도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이기적인 꿈을 꿉니다.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겠다. 권력을 잡아서 다른 사람들을 호령하며 살겠다는 꿈을 꿉니다.

요셉은 꿈을 꾸되 개인의 입신양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원대하고 거룩한 꿈을 꾸었습니다.

지배자와 지도자는 다른 것입니다. 지배자는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원하는 사람입니다.

지배자는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자기는 편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른 사람에게 쉼과 평안을 주는 자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요셉의 인생을 보십시오. 그는 결코 이기적인 지배자가 아닙니다. 애굽에 큰 흉년이 올 때, 그것을 극복하는 지혜를 제시하는 지도자가 됩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가운데 있을 때 양식을 제공하는 자가 됩니다. 형들이 죄의식으로 고통할 때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어주는 자가 됩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받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감당을 합니다. 가족들의 모든 슬픔과 미움, 쓴 뿌리를 짊어지고 험난한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이로써 마침내 모든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 쓴 뿌리가 다 해결됩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영접하는 대화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처럼 앞으로 요셉은 구원자적인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구원의 길을 가신 것처럼 요셉도 메시아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요셉에게 미리 꿈을 통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17살이면 예쁜 여자 친구를 만나는 로맨틱한 꿈을 꿀 나이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돈 잘 버는 직장에 취직을 잡고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해서 멋있게 인생을 엔조이하는 꿈을 꿉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셉의 꿈은 얼마나 영적이고 원대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실 때 택하신 자들에게 꿈과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때 나라가 심히 위태로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당장 집어 삼킬 것처럼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온 세상 나라를 다스리며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보여 주시며 이사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선지자의 꿈과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도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스겔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성전을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암담한 시대입니다. 그 암담한 시대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전에서 물이 나와 온 생물을 살리는 환상입니다. 성전에 재건되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는 환상입니다.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보고 포로로 끌려가서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자기 백성에게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갈릴리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 예수님이 주신 세계선교의 꿈과 비젼이 있었을 때 두려움을 모르는 불사조와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뛰어 넘어 소아시아와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불타는 꿈과 비전이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혀서 잘 키워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채색옷은 요셉과 형들 사이에 위화감만 조성하였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요셉의 가슴에 꿈을 주셔서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게 하셨습니다.

채색옷은 나중에 형들이 벗겨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의 가슴속에 새겨 놓으신 꿈은 누구도 앗아가거나 짓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꿈이 요셉으로 하여금 어떤 시련과 역경도 이겨내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젼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들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시는 vision을 가리킵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백성은 영적인 목표가 없기 때문에 쾌락의 노예가 되고 욕망의 포로가 됩니다. 방자하게 되어서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잠29:18절에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를 절제하며 시련 속에서도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박력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한 꿈과 소망을 붙들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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