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를 위하여
전 세계 80억 명의 영혼들, 특별히 6,500여 미전도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리 전파되게 하시고 방황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가 열방 곳곳에 세워지게 하소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교회들이 회복되며 원주님 선교지마다 현지인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자연 재해와 내전,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비와 평안을 베풀어 주시고 각 나라가 연합하여 상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37: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청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사실 요셉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복잡하여서 꿈을 갖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소천 하였습니다. 배다른 형들은 요셉과 잘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12명의 형제들 중에서 11번째이기 때문에 배다른 형들 속에서 기를 펴기 힘들었습니다. 2절에서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다는 것을 보면 레아의 여섯 아들들은 요셉을 끼워주지도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요셉은 너무 순진하고 철이 없어서 형들이 잘못한 것을 곧이 곧대로 아버지에게 일러 바쳤습니다. 형들은 아버지에게 끌려가서 혼나고 나면 아버지 모르게 요셉에게 분풀이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힌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노년에 얻었고, 또 요셉이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에 채색옷은 상속자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형들이 요셉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틈만 나면 눈치주고, 아버지가 없는 데서는 요셉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4절에 보면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주변에 아버지를 빼놓고는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외롭겠습니까? 밤마다 돌아가신 엄마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로 베개를 적셨을 것입니다. 나이어린 동생 베냐민과 어디 멀리 도망가 버릴까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는 형들로 하여금 미움의 감정을 깊이 심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잘해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것들을 많이 쥐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입혀 주었던 채색 옷과 같은 사랑을 기대합니다. 다른 형들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 품에 안겨서 재롱이나 피우는 달콤한 솜사탕 같은 사랑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처럼 얕은 수준의 사랑을 베풀기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것보다는 미래적인 것, 유형의 것보다는 무형의 것, 물질적인 것 보다는 영적인 것, 개인적인 것 보다는 역사적인 꿈과 비전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빨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창15:5). 야곱에게도 허허벌판 광야에서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 주시며 장차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를 연결시킬 제사장의 비젼을 심어 주셨습니다(창28:12).
자칫 잘못하면 채색옷의 사랑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유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서 자족하고 마는 응석받이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큰 스케일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시련도 능히 참고 견디게 하는 힘을 줍니다.
이를 볼 때에 요셉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채색 옷을 지어 입혀 그 품속에 두고자 하는 야곱의 사랑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오직 세계선교 환상을 심어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이 세계선교 환상이 제자들을 위대하게 하고 역사적인 인물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시대에도 우리각자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시기 원하십니다. 사도행전 2: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는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인생의 위대성을 평가할 때에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그 사람을 키워줄 배경이 있는가 없는가? 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준비되어 있는가 없는가?를 보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는 꿈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꿈의 크기가 그 사람의 위대성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란을 보면 유정란이 있고 무정란이 있습니다. 무정란은 그 안에 병아리를 잉태할 수 있는 인자가 없기 때문에 그 계란이 아무리 크고 멋있어 보여도 평생에 계란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유정란은 그 안에 병아리가 태어날 수 있는 인자가 숨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화해서 병아리가 태어나고 닭이 되고 또 다른 계란을 낳고 낳고 낳고 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닭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꿈이 없는 사람은 무정란과 같습니다. 날이 가도 달이 가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유정란과 같아서 반드시 그 삶에 변화가 있고 성장이 있습니다. 열매가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꿈을 꾸어도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이기적인 꿈을 꿉니다.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겠다. 권력을 잡아서 다른 사람들을 호령하며 살겠다.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꿈을 꾸는가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꿈은 개인의 입신양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원대하고 거룩한 꿈이었습니다.
지배자와 지도자는 다른 것입니다. 지배자는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로 하여금 희망을 갖도록 길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지배자는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자기는 편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른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는 자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요셉의 인생을 보십시오. 그는 결코 이기적인 지배자가 아닙니다. 많은 문제로 고민하는 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됩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가운데 있을 때 양식을 제공하는 자가 됩니다. 형들이 죄의식으로 고통할 때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어주는 자가 됩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이 고생하고 슬픔을 많이 겪었지만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다 짊어지고 감당을 합니다. 가족들의 모든 슬픔과 미움, 쓴 뿌리를 짊어지고 험난한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이로써 마침내 모든 가족들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 쓴 뿌리가 다 해결됩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영접하는 대화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처럼 요셉은 꿈은 꾼 후 구원자적인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구원의 길을 가신 것처럼 요셉도 메시아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미리 꿈을 통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17살이면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인데 대개 스포츠 스타나 연예스타가 될 꿈을 꿀 나이입니다. 예쁜 여자 친구를 만나는 로맨틱한 꿈을 꿉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돈 잘 버는 직장을 잡고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해서 멋있게 인생을 엔조이하는 꿈을 꿉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셉의 꿈은 얼마나 영적이고 원대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당신의 구원역사를 이루실 때 택하신 자들에게 꿈과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때 나라가 심히 위태로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해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당장 집어 삼킬 것처럼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온 세상 나라를 다스리며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보여 주시며 이사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선지자의 꿈과 비젼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도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는 비행접시 같은 물체가 불이 붙어서 사방을 돌아다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그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경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시거나 꿈과 환상을 통해서 그림언어로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1:8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에게 세계선교 환상을 심어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갈릴리의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 예수님이 주신 세계선교의 꿈과 비전이 있었을 때 두려움을 모르는 불사조와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뛰어 넘어 소아시아와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불타는 꿈과 비젼이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혀서 잘 키워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채색 옷은 요셉과 형들 사이에 위화감만 조성하였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요셉의 가슴에 꿈을 주셔서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게 하셨습니다.
채색 옷은 나중에 형들이 벗기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의 가슴속에 새겨 놓으신 꿈은 누구도 빼앗아가거나 짓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꿈이 요셉으로 하여금 어떤 시련과 역경도 이겨내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꿈과 비전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잠언 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들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묵시는 vision을 가리킵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백성은 영적인 목표가 없기 때문에 쾌락의 노예가 되고 욕망의 포로가 됩니다. 방자하게 되어서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를 절제하며 시련 속에서도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한 꿈과 소망을 붙들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