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역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소서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인정받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창34:13-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창34:13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한 후에 가해자인 하몰의 아들 세겜과 그 아버지 하몰이 야곱의 집에 찾아와서 청혼을 합니다.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창34:8-10"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창34:11-12어떤 조건이라도 다 들어줄테니까 결혼만 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여동생이 강간을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와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을 아내로 달라는 말을 듣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임수를 써서 복수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 속임수는 일단 결혼을 승낙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건을 하나 덧붙입니다. 결혼을 하고 싶다면 세겜과 하몰 일족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창34:14-17이것이 정말로 결혼을 시키기 위한 순수한 조건이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창17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할례를 명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17:10-14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양피를 떼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이었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수5:2-5이스라엘 백성은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생명같이 여기는 그들이었지만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요7:23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양피를 떼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을 복수에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는 십자군 전쟁을 연상케 합니다. 십자가군 전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살육하고 약탈하였습니다. 그들은 성폭행하고 심지어 사람의 고기까지도 먹었다고 합니다. 교황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유익을 추구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서로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거룩한 명분은 있지만 실제는 거룩함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마치 겉모습만 하나님의 사람이지 사실은 악마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악을 범치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알고 지은 죄도 용서해 주시고 모르고 지은 죄도 용서해 주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지은 죄 중에는 모르고 지은 죄는 거의 없습니다. 마치 모르고 지은 죄처럼 변명할 뿐입니다.
단지 우리의 죄는 들켜버린 죄가 있고 들키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 들키지 않으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킵니다. 양심에 조금 꺼려지지만 쉽게 무시해 버립니다. 증거가 있고, 들킨 것만을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뻔뻔해질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가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들키지 않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법도 죄를 짓지 않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들키지 않는데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죄는 알고 짓는 것이고, 들킨 죄보다 들키지 않은 죄가 더 많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스스로는 합리화시킬 수 있고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죄는 바이러스와 비슷해서 바이러스가 몸을 병들게 하듯이 죄도 인간의 영혼을 좀먹습니다. 그리고 암세포처럼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죄는 세월이 지나간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잊혀지거나 그 영향력이 약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32편 3절을 보면 죄를 고백하지 않고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죄가 우리 안에 있으면 살이 아플 뿐만 아니라 뼈 속까지 아프게 됩니다. 4절을 계속해서 보면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토록 영적으로 깊은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려고 자꾸만 자기의 생각을 마비시키려고 합니다. 술, 음식, 화려한 옷, 쾌락 등 순간순간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마비시킵니다.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기를 보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정직하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32편 1절은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를 말해줍니다. 사람에게 허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습니다.
죄 중에 특이한 죄가 하나 있습니다. 보통의 죄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사람에게 짓는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종교적인 죄’라고 합니다. 가장 악질적이고 무섭고 파괴력이 강한 것이 종교적인 죄, 즉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 이름으로 짓는 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짓는 죄를 가리키시며 이러한 죄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제일 잘 믿고, 성경에 정통하고, 교회를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성직자 그룹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창녀가 죄를 지었을 때는 심하게 분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세리가 죄를 지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 무리의 죄에 대해서는 ‘화 있을진저’라는 특별한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23:16"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23:2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마23:29-31야곱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들의 죄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동생 디나가 가나안 땅에 놀러갔다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수치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몹시 분노하여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자기들의 사랑하는 여동생이 수치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고 복수심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우리들 가정의 일이었다면 우리들이라고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겠습니까? 이런 감정을 가졌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노하고 복수심에 불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의 아들들은 복수를 행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복수극을 저질렀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자칫 범하기 쉬운 실수입니다. 교회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