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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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1.

이 땅의 청년들이 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르고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전을 품고 전진하게 하소서.

2.

세상의 무분별한 가치관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시고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3.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4.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33:17-2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33:17

숙곳이라는 말에는 쉼, 피난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안식을 합니다. 간단하게 집을 짓고 우릿간을 만듭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창33:18

야곱이 드디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 세겜으로 돌아왔습니다. 20년 만에 밟아본 고향 산천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야곱은 정착을 준비합니다. 이곳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실 약속의 땅을 처음으로 밝혀주신 곳이 세겜인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야훼를 위하여 세겜에서 단을 쌓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언약을 받았던 세겜 땅은,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들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창33:19

야곱이 세겜에서 땅을 매입한 것은 그곳에 정착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과거에 형의 피해 외삼촌 집으로 갈 때에 벧엘에서 서원하기를 하나님이 자신을 위험 가운데서 지키사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벧엘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이 밧단 아람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31:13

그런데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서 정착하고자 했습니다. 왜 야곱은 형과 헤어진 후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서 정착하려고 했을까요? 세겜에 오니까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화장실 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릅니다. 돈 꿀 때 마음과 돈을 갚을 때 마음이 다릅니다.

물론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창33:13절에 보면 야곱의 자녀들이 아직 유약하고 짐승들도 많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과도하게 몰게 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세겜은 사람들도 많이 살고 이런 저런 문화적 혜택도 누릴 수 있는데 반해 벧엘은 허허벌판 광야였습니다. 야곱은 광야같은 벧엘까지 올라가서 그 땅을 개간하며 또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풍요로운 세겜에서 자리를 잡고 이제는 좀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집을 짓고, 우릿간도 짓고, 장막을 치고, 정착을 하였습니다. 밭도 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곱이 완전히 하나님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단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가운데는 이제 좀 여유를 누리며 편안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들었겠다 아들 딸 시집장가 보내고 손자들이나 보며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야곱의 세겜 생활은 어느덧 10여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별 탈 없이 조용히 이런 생활이 지속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다음 장에 나오지만 야곱이 세겜에 머물자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야곱의 딸 다말이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들이 살인과 약탈을 합니다. 세겜 사람과는 다시 원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화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해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화해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과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고 하나님과는 더욱 친밀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야곱은 온전히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33:20

엘 엘로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발 소르기 목사는 그의 책에서 이 장면을 이같이 설명합니다.

야곱이 세겜에 세운 이 제단은 그의 삶에 분수령이 되었다. 그 제사의 중요성은 그것의 이름에서 발견된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 야곱은 이 제단을 쌓음으로써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선언한 것이다. 마침내 20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서원한 조건을 다 이행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지켜 주셨고, 축복하셨으며,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셨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세겜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다. 야곱과 하나님의 언약이 체결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창35:1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야곱이 세겜에서 드리는 예배를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35:1

왜 하나님은 야곱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까요?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31:1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이스라엘의 역사나 우리 삶을 보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은혜를 주시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단보다 그 축복에 빠져서 세상을 섬기는 배신을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민족이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밥만 먹게 해달라고 했는데 밥 먹을 만하니 교만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33:20

야곱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르지만, 과연 야곱이 예배를 이곳에서 드려야 할까요? 겉으로 보면 야곱이 순종한 것 같지만, 사실은 온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벧엘이나 세겜이나 비슷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벧엘과 세겜은 약 30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속셈은 도시 가까운 곳에서 자기 편리와 안정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좋고 나도 좋은 것입니다. 굳이 벧엘로 가지 않아도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이 아직도 세속적인 머리를 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세겜에 머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세겜과 벧엘은 다릅니다. 벧엘은 약속의 땅이고 세겜은 자기가 임의로 선택한 땅입니다. 세겜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땅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35:1

그러면 33장과 35장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34장에서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하고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고, 치욕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머물지 않아야 할 곳에 머무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절반의 순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예배한 것은 영적으로 뒤로 물러난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반은 야곱, 반은 이스라엘입니다. 순종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순종은 아닙니다. 반쪽 순종은 곧 불순종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겉으로는 신자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불순종인 것이 많습니다.

부분적 순종은 참 위험합니다. 자신은 순종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순종은 자기가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순종했다고 인정하셔야 순종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반쪽 순종에서 옵니다. 부분적 순종은 타협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말렉을 완전히 쫓아내 진멸하라고 했는데 그들을 남겨둡니다. 그들을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남겨둔 원주민이 이스라엘의 가시와 올무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에 숨겨진 동기를 보십니다. 부분적 순종은 영적으로 후퇴하게 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살아야 하는데 야곱으로 후퇴한 것입니다. 영적 후퇴가 위험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재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은밀히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재단이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일 예배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겉은 신자이이지만 내용은 전혀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야곱은 아직 야곱과 이스라엘 사이를 오고 가며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야곱을 보면서 우리는 한 사람이 얼마나 변하기 어려운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야곱을 그냥 두었다면 야곱으로 끝났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로 부르시고 그 인생을 붙들어 계속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실수와 연약함과 무너짐을 통해서도 그가 이스라엘 다울 때까지 이끄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온전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철저해야 합니다. 자기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정도면 괜찮죠? 저 인간보다 낫잖아요.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잖아요.’ 우리가 가장 많이 실수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을 합리화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기준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에 목표가 되고 다른 사람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다니엘처럼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고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며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5월 27일 오전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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