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한 습관을 가져 시대를 끌어갈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적 타락, 음란하고 혼탁한 문화, 각종 중독과 같은 어두움으로부터 저들의 생각과 육신을 지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해답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기독교 가치로 세워진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세력의 행보가 무너지게 하시고, 학교마다 학생들의 예배가 세워지게 하소서.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32:26-3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창32:26-27여러분,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야곱처럼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마음을 풀기 위해 예물도 엄청나게 바치고, 재산을 두 떼로 나누고, 가족들도 순서를 정해 보내면서 머리를 다 써보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매달려 기도할 때 산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에는 언제나 구멍이 있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처음으로 방탄복이 발명되었습니다. 미시시피 전투에서 미국 남군에 속한 한 군인이 방탄복을 입었습니다. 그는 자신감이 생겨서 언덕에 올라가 “쏠 테면 쏴 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그만 총탄에 맞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방탄복을 입었지만 총알이 얼굴을 명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여호사밧 왕을 보십시오. 역대하 18장 1절에 보면,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도록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교회만 사랑하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가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던 그가 인간적으로 머리를 굴린 것입니다. ‘아합 왕과 사돈을 맺으면 평화가 유지되겠지.’
그래서 아합과 사돈이 됩니다. 아합과 동맹하여 아람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그 전쟁에서 아합이 죽습니다. 여호사밧도 죽을 뻔 했습니다.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게 하신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겨우 지탱하며 저녁 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
대하18:30-34이후에 전쟁에서 돌아온 여호사밧에게 선견자 예후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대하19:2그래서 모압, 암몬, 에돔 연합군의 침략을 받고,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아합 가문과 계속 관계를 맺으니까, 여호사밧의 자손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손자가 다 죽임을 당하고 요아스 단 한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왕의 씨가 말라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야곱이 최선을 다하고도 죽자 살자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이름이 바뀐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내 몸에 암이 오든, 내 가정이 파괴 되든, 직장을 잃게 되든, 경제적으로 무슨 풍랑을 당하든, 사백 명 군사의 칼을 만나든, 기도의 무기는 이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위대한 것입니다. 불가능이 없는 것입니다. 씨름하듯이 결사적으로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3그리고 감사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곱한테 질 이유가 무엇입니까? 져주신 것입니다. 귀여운 자식에게 져주듯이 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아들딸에게는 져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져주시고 “네가 이스라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세상은 바뀝니다. 사람 사는 방식도, 옷, 머리 스타일도 바뀝니다. 요즘에는 며느리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도 바뀌어서 “어머니, 우리 아들 한 달만 봐 주세요.”라고 하면 할머니가 “얼마 줄래?”라고 한답니다. 자기 손자 봐 주면서도 돈을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며느리만 나쁜 것이 아니라 할머니들도 고약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바뀌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바뀌지 않습니다. 기도는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 응답은 바뀌지 않습니다.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이겼다. 너는 나를 이겼구나!”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간단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믿는다는 것은 이미 마귀에게 잡힌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말을 듣고 망합니다. 가롯 유다 또한 마귀의 말을 듣고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은 다 승리했습니다.
이삭은 흉년에 애굽에 내려가려고 했는데,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이 땅에 거류하라. 그리하면 내가 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그 해에 100배의 수확을 얻고, 마침내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로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살해 위협을 피해 모압 땅에 도망을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보내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 순종하기 힘든 말씀이지만 순종한 다윗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서 사울 왕의 살해 위협에서 지켜 주시고,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기도는 씨름하듯이 결사적으로 하되 끝까지 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어떤 기도 제목 받았으면 끈덕지게, 받을 때까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도 주시고 이름도 바꾸어 주십니다.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32:29-30야곱이 그 사람의 이름을 묻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야곱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야곱을 축복하고 사라집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이 밤새 씨름한 상대방이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 즉 하나님이 얼굴이라고 붙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은 만난 곳마다 자신의 신앙 고백을 담아 그 장소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오래 전 야곱은 그가 밤에 노상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던 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브니엘입니다. 브니엘이란 이름 속에는 야곱이 하나님을 보았다는 신앙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브니엘이란 이름 속엔 자신의 생명이 보전될 것이라는 고백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32:31-32야곱의 인생의 긴 밤이 지났습니다. 해가 돋았고 그의 다리는 허벅지 부상으로 인하여 절게 되었습니다. 이날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힘줄이 끊어진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에는 둔부의 힘줄을 막지 않는 재미있는 관습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은 지나갔고, 밝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해가 돋았다는 말씀은 지난 밤의 격렬한 씨름으로 말미암아 비록 육체는 상함을 입었으나 야곱의 인생에는 해와 같이 빛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불안과 공포의 밤은 지나고 평안과 소망의 아침이 밝아오게 된 것입니다.
희망의 신학으로 유명한 독일의 세계적인 신학자 몰트만 박사 이야기입니다. 그도 야곱과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본래 신앙을 전혀 모르는 세속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해서 아인슈타인 같은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17세 때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산산히 부서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폭탄을 맞아 사지가 찢겨 죽는 모습을 보면 생전 처음 하나님께 소리칩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 계시다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고 전쟁 포로가 되어 3년간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 했듯이, 나도 매일 밤 하나님과 씨름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얼굴과의 씨름이었으며, 전쟁과 포로 생활의 처절함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N0라는 대답과의 씨름이었다. 지옥은 탈출했지만, 우리 앞에는 철조망이 놓여 있었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군목으로부터 성경을 선물 받았는데, 성경을 읽다가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더 이상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희망의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렇게 수용소에서 주님을 만난 뒤, 과학자의 꿈을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 주의 종이 되고, 현대 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신학자가 됩니다. 그는 당시의 놀라운 체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친구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버림받음이 하나님이 현존하고 계심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삶을 향한 나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 없는 어두운 시절이 지나간 뒤 바로 그 수용소에서 내 인생의 태양이 떠올랐던 것이다. 1948년 나는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한 뒤의 야곱처럼 절뚝거리며 포로 생활에서 되돌아 왔으며, 그 야곱처럼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숨겨진 얼굴 아래서 마침내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삶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라고 원망어린 기도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의 때에 우리가 자신의 뜻과 고집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마음을 철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야곱처럼 돌아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곳까지 몰리기 전에 빨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5월 20일 오전 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