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이 땅의 청년들이 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르고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전을 품고 전진하게 하소서.
세상의 무분별한 가치관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시고 예수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창31:29-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창31:29라반이 야곱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요?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것을 보면 라반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키시면 해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지키시니 극렬히 타는 불무불로도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지키시니 굶주린 사자도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시니 라반이 야곱을 다 잡아 놓고도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31:3다윗을 보십시오. 이 요새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는 말씀에 순종하여 유다 땅으로 들어가자, 사울 왕이 3,000명의 군대를 끌고 다윗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삼상23:27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다윗을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손해 볼까봐, 어려움을 당할까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해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야곱을 편애하실까? 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실까?’
참 사랑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참 사랑은 편애입니다.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주고 그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공의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은 곳에는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공정히 사랑했다면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불순종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 따진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편애하시고 일방적으로 봐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부모 사랑, 자녀 사랑, 부부 사랑, 친구 사랑, 형제 사랑, 나라 사랑, 겨레 사랑, 인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 꽃 사랑 다 좋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가장 큰 저주는 부도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떠난다.”
여러분, 돈을 사랑하면 자식도 보이지 않습니다. 라반이 돈을 사랑하니 자기 딸과 사위를 죽이려고 따라 갑니다. 돈을 사랑하면 자식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돈은 쓸 때 행복한 것이지, 돈을 사랑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창31:30라반이 야곱을 추격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재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라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쫓아온 또 다른 이유는 드라빔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정의 수호신이자 재산 상속권의 증표이기도 한 드라빔은 라반에게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에게 ‘어찌 내 신을 도적질 하였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적을 갖고 있듯이 중동 지역의 사람들은 드라빔을 갖고 있습니다. 드라빔은 사람 모양의 우상으로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데 그것을 집에 두면 재앙이 물러가고 복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라반은 하나님을 섬기는 셈의 후손인데도 그 지역 사람들의 풍습을 좇아 그것을 집에 두면 복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집에 숨겨 두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라반이 야곱에게 한 말을 통해 라반의 신앙 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라반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창30:27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명령하시자 아무 의심이나 주저함 없이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의 이러한 결정은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신앙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라반의 마음에는 이제껏 섬겨 온 우상인 드라빔에 대한 신앙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잘못된 라반의 신앙 상태는 그가 하나님을 가리켜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드라빔을 나의 신이라고 말할 것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한국 사람은 유난히 고향을 사모합니다. 인류학자의 말에 의하면 세계에서 고향을 제일 많이 사모하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어른들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추석이나 설 명절에 길이 막히고 불편해도 고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향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은 그곳에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1년에 몇 번씩 고향에 갔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고향에 갈 때마다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고향 갈 마음이 생기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 세상의 고향은 잠깐 고향이고, 영원한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입니다. 믿는 사람만 그곳에 갑니다.
찬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에 계신 아버지는 영원하십니다. 그곳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기쁨만 있습니다. 살아서 그곳을 보고 온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1:23-24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과 정성 모두 어 날마다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행복하고, 예수님을 믿고 잘 살고, 예수님을 믿고 병 고치는 것, 그것은 별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가난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병들고, 예수님을 믿고 직장 잃고, 예수님을 믿고 불행하게 되어도 괜찮습니다. 왜입니까?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1-12스위스의 내과 의사요 정신의학자인 폴 트루니에는 아내와 금슬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여행 중에 아내가 갑자기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의사이지만 손도 쓰지 못하고 아내가 죽어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는데, 아내는 죽어가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화가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여보, 내가 오늘 천국에 가서 아버님 어머님을 뵙고 함께 살 것을 생각하니 아주 기뻐요.”라고 말한 후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전에 폴 트루니에가 알았던 죽음은 슬픔이었고 이별이었는데,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죽음은 기쁨이고 만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가슴에 신앙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죽었지만 하나님을 뜨겁게 섬기고 기쁘게 간증하며 살았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보셨습니다. 그러니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같이 빛난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는 것은 아픈 일이지만 그때 천국 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서울 충현 교회를 이루신 김창인 목사님께서 북한에 계실 때 한 젊은 전도사님에게 공산당을 피해 교인들을 데리고 피난가라고 하셨답니다.
“자네는 나보다 낫네. 그러니 자네가 교인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서 잘 섬기게. 나는 여기에 남아서 노인들을 섬기겠네.”
그러나 그 젊은 전도사님이 “아닙니다. 목사님께서 피난 가는 교인들을 데리고 가세요. 제가 여기에 남아서 노인들을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우겨서 목사님께서 교인들을 데리고 피난을 오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전도사님이 어릴 적부터 믿음 생활을 얼마나 잘했는지 열여덟 살에 세례를 받을 때 김 목사님께서 다른 것은 물을 필요도 없었답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는가?”만 물었답니다. 그때 그분이“목사님, 부끄럽게 왜 그런 것을 물으십니까?”라며 대답을 피했지만 목사님께서 강권했더니 사십 번을 읽었다고 하더랍니다.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신구약을 사십 번이나 읽은 것입니다. 그 정도이니 김 목사님께서 그 전도사님에게 ‘나보다 나으니 교인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가서 잘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후 두 분 사이에 소식이 끊겼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께서 미국에서 성회를 인도하던 중에 그 전도사님의 소식을 아는 분을 캐나다에서 만나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목사님께서 피난하신 후 공산당원들이 김창인 목사님을 잡으러 왔는데 계시지 않으니 목사님 대신 전도사님을 잡아갔답니다. 그리고는 경찰서 뜰에 큰 항아리를 갖다 놓고 거기에 찬물을 가득 채운 후 전도사님을 발가벗겨서 집어넣었답니다. 콧물도 그대로 얼어붙는 그 추운 겨울에 전도사님을 그 속에서 얼어 죽게 한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그 항아리에서 순교하는 마지막까지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라는 찬송을 불렀답니다.
다음 날 교인들이 얼어붙은 항아리를 깨고 전도사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식을 치렀답니다.
그 전도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잘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얼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큰 복인 줄 믿습니다. 순교자의 상을 받게 되니까요.
누가복음의 부자는 잘 먹고 잘 입고 늘 잔치를 벌이며 살았지만 지옥에 가니 불 가운데서 비참하게 되었고 아직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거지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니 마지막에 천국에서 희희낙락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총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벨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 성공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오늘 죽어도 영원한 하늘나라 본향에 가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 슬픈 일을 만나고, 힘든 일을 겪으며, 위기를 만나도 ‘여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겠지’라고 믿고, 하나님께는 믿음을 보여드릴 기회,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낼 기회로 삼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