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폭력이 끊어지게 하소서.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임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31: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창31:1중국에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는데, 이 대나무는 처음 4년까지는 거의 자라지 않다가 5년째가 되면 죽죽 자란다고 합니다. 하루에 5cm씩 자라서 두 달 만에 15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슴으로 충성을 했지만 14년 동안은 거의 무일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시자 순식간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라반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계약을 10번이나 바꾸었어도 야곱의 몫은 나날이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야곱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거부, 사람들이 질투할 정도의 인물이 됩니다. 상대적으로 라반의 집은 보잘 것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야곱에게 재산이 생기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복을 많이 받으면 시기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유명하지 않을 때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지만 유명해지면 적들이 생기고 모함하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자기를 비난하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소문의 출처는 라반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배신하는 사람과 자신을 욕하는 사람은 주변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야곱을 향한 비난은 두 가지이며 그것들은 진실이 아닙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야곱이 언제 라반의 소유를 다 빼앗았습니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의 양들은 건강하고 번식을 잘 하는 반면 라반의 양들은 그렇지 못하니까 라반의 아들들이 질투가 나고 화가 난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31:2야곱을 대하는 라반의 안색을 보니 전과 같지 않습니다. 살기가 흐릅니다. 야곱이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여러분, 회사에서 윗사람 한 분의 안색만 안 좋아도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야곱은 매일 라반과 함께 밥을 먹으며 한 집에서 삽니다.
야곱은 이런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라반의 아들들이 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알고 보니 그 소문의 진원지는 라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더 상처를 받습니다.
라반과 야곱의 관계는 사위와 장인관계로서 사랑과 존경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미움과 의심의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야곱과 라반이 남을 속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남에게 잘하면 누군가 자기에게 잘하게 되고, 남을 용서하면 누군가 자신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라반이나 야곱은 서로를 원망하며 불행한 관계로 번져갑니다. 겉으로는 친한 척,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계산적으로 서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교회에서도 뒤돌아서서 남을 흠집 내는 사람을 만납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31:3라반의 아들들의 말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오해 또는 음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이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속상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지만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훈련이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훈련을 시켰습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 집어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해달라고 합니다. 응답이 없으면 너무나 속상해 하며 하나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다림보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더 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큽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기다리셨습니다. 야곱이 믿음의 조상으로, 복 받을 그릇으로 빚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3:33하나님의 본심이 무엇입니까? 고생과 근심을 겪으며 깨어지고 낮아지고 우리 속사람이 나날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이르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인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영성이 깊은 그리스도인이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보고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듯이 그것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의 표시이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보시듯이 깊이 있게 꿰뚫어보고, 그 분이 판단하시듯이 판단한다.
우리는 본문에서 3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20년이 지난 지금 이루어 주고 계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52야곱이 기도 생활을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복 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왔을 때는 빈털터리였습니다. 라반을 열심히 섬겼지만 14년 동안은 빈털터리였습니다. 라반이 이용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인하여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31:4사업하는 사람들이 술집 같은 곳에서 사업 이야기를 하면 정보가 새나가기 쉬우니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면서 사업 이야기를 하듯이 라헬과 레아를 들판으로 불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첫 아내이고 언니인 레아의 이름보다 둘째 아내이고 동생인 라헬의 이름을 앞세웁니다.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50년, 60년 믿어도 믿음이 미지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 뒤에 세우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몇 달 되지 않았어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열심을 품고 사랑하면 앞에 세워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 뜨겁지도 차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하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습관적으로 믿고, 미지근하게 믿으면 하나님께서 토하여 내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비참하게 됩니다. 언제나 첫 믿음, 첫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믿음에는 내가 일등 해야지.’하며 신앙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 애쓰는 것이 더 복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래 믿은 것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 할아버지도 장로님이고, 아버지도 장로님이다. 나는 이렇게 좋은 믿음의 집안에 태어났다.”라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늘 깨어서 믿음의 경주에 일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4월 20일 오후 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