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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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1.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2.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와 평강을 얻게 하소서.

3.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30:22-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태어난 지파인 유다도 하나님의 자녀요,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르우벤도 하나님의 자녀요, 첩의 자식들도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몸종에게서 태어났든지 본처에게서 태어났든지 모두 제사장의 가슴에 보석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국의 놀라운 비밀, 구원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과거와 출생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실패했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열등감과 분노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어떤 자리에 있든지, 어떤 출생이었든지 간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이 열두 지파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과거의 실패나 서열상 낮은 자리로 밀렸다는 것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거나 자신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면 받아들이십시오. 억울한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면 그것이 큰 복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고도 평안하다면 그런 상황인들 어떻습니까. 적게 받고도 많이 받은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동생 밑에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므낫세를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므낫세 지파에 대해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 33장 16, 17절을 보십시오.

33:16-17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

므낫세는 집안의 모든 저주를 끊으며 태어나서 동생을 섬기는 지파가 됩니다. 한편 에브라임은 동생이었지만 므낫세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후로부터는 에브라임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에브라임은 어떻게 므낫세 대신에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에브라임이 무슨 일을 잘했다거나, 자격이 있다거나, 므낫세가 어떤 실패를 했기 때문에 장자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밖에 해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위의 높고 낮은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왜?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4-27

세상의 가치에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분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됩니다. ‘왜 형은 크게 주고 나는 적게 주느냐’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법칙입니다. ‘형을 더 많이 주세요. 저 사람을 더 축복해 주세요. 제가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나는 작아져도 좋고, 섬겨도 좋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마음먹은 사람은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30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까?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3:26

하나님이 이런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이 또 있습니다. 사도 바울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15:9

하나님은 이런 태도로 살아간 사도 바울을 최고의 사도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키 큰 사람은 큰 대로, 작은 사람은 작은 대로,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대로, 적게 배운 사람은 적게 배운 대로 감사하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고전3:1-4

시기, 분쟁, 비교는 영적으로 어린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시기, 분쟁,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2:6-9

요셉 이후 야곱에게 또 다른 아들이 태어납니다. 베냐민이라는 아들입니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베냐민의 출생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세기 35장 16∼1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창35:16-18

베냐민을 낳을 때 라헬은 난산으로 인해 죽고 맙니다. 그래서 라헬은 슬픔이라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노니가 아니라 ‘오른손의 아들, 강한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줍니다. 이렇게 베냐민이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라헬은 베들레헴에서 장사지냅니다.

베들레헴에서는 베냐민 외에도 다윗과 예수님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사울 왕과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모르드개 그리고 신약시대의 사도 바울이 태어납니다.

베냐민 지파를 끝으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요셉의 두 아들이 열두 지파로 들어가는 대신 레위가 제사장 지파로 따로 분리되어서 열두 지파가 만들어 집니다. 지파에 관련된 말 중 ‘므낫세 반 지파’라는 말은 그들이 땅을 분배 받은 지역이 요단 동편과 서편, 두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네 명의 여인에게서 배다른 형제들로 태어나서 도덕적, 영적 수준이 제각기 달랐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 세우셔서 열두 지파를 만드셨습니다. 우리 또한 도덕적, 영적 수준이 다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2025년 4월 12일 오전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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