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스페인 복음화와 아프리카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상화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30:22-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30:22야곱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두 명,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의 노년에 태어난 아들로서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라헬에게서 태어납니다.
야곱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라헬을 제외한 세 여인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의 언니 레아에게는 여섯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고, 레아의 몸종 실바와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도 각각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이를 낳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라헬의 경우는 아무리 기다리며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라헬은 다른 세 여인의 아들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겪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꼭 낳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언니 레아가 불임 치료제로 알려진 합환채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동침시키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 약을 얻기도 합니다. 그렇게 얻은 합환채를 먹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이럴 때는 인간적인 노력을 하면 할수록 허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태를 열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무리 인간적으로 애쓰고 노력해도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를 열어주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30:22라헬이 아들을 낳고 싶어 온갖 수모를 참고 합환채를 먹어도 배가 불러오지 않자 하나님 앞에서 서럽게 웁니다. 하나님께서 우는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태를 열어주시니 라헬이 잉태했습니다. 평생소원인 아기를 잉태했으니 배가 산더미처럼 불러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 아들이 요셉입니다.
당시에는 아들을 많이 낳는 여자가 최고였습니다. 농사짓고 양을 치던 시대에는 힘이 좋은 남자들이 필요했습니다. 1차 산업 시대에는 남자가 많아야 강한 부족이 됩니다. 그 당시 여자는 수에 들지도 못했고, 이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디나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은 나중에 사고를 쳤기 때문입니다. 다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에스더처럼 아주 유명한 여자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남편이 아주 유명한 여자의 이름이나 나와 있지, 보통 여자는 이름도 없고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자랄 때만 해도 어머니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상주댁, 누구 엄마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아기를 낳지 못하다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께서 내 부끄러움을 씻어주셨도다. 얼굴을 들고 살게 하셨구나.” 하고는 그 이름을 ‘요셉’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들 하나만 더 주세요. 하나님, 아들 하나만 더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 하나를 더 주십니다. 그 아들이 베냐민입니다.
하나님께서 슬픈 여자 라헬을 생각하시니 그 태에 복이 임해서 아기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시니 그들이 출애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시니 그들이 자유를 얻어 고국으로 갑니다. 그들이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도다. 열방이 말하되 야훼께서 저희를 위해 큰일을 행하셨도다.”라며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시면 우리에게 큰 일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몸이 아파도 주님께서 생각하시면 낫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하게 되어도 주님께서 생각하시면 다시 일어납니다.
미국의 경제 불황으로 호텔의 87%가 문을 닫았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콘라드 힐튼 사장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콘라드를 돌아보셔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호텔 직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일류 호텔, 일류 시설, 일류 룸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됩니다. 최고의 것 하나를 더해야 우리 호텔이 삽니다.”
모든 직원들이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기다리는데, 콘라드 사장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미소입니다. 얼굴에 가득한 미소로 손님을 대해야 합니다.”
호텔의 87%가 문을 닫았는데도 콘라드 힐튼 호텔의 직원들은 항상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그 불황을 극복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체인을 낸 힐튼 호텔이 된 것입니다. 다 망해도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면 흥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거절로 해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기다림일 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안타깝게 드렸던 기도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거절당했다고 생각하며 상처를 받습니다. 라헬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라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여러분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를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고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안타깝게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것을 일찍 들어주시지 않고 시간을 끄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기도응답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수단과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선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이 특별히 주시는 아기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낳는 아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임신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어서 아기를 주셨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던 한나가 오래 기도하여 낳은 아들 사무엘이 사사시대의 혼란을 잠재우고 사울 왕과 다윗 왕에게 기름부어 통일 왕국을 세운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랬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1:13"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1:36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에게는 여자가 4명이나 있었습니다. 그 중 세 여자는 쉽게 아이를 낳는데 라헬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라헬이 어렵게 낳은 아이는 하나님이 특별히 주시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3, 24절을 보십시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30:23-24드디어 라헬에게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요셉입니다. 요셉은 열두 아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아들이요,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레아가 네 번째로 낳은 유다의 가문에서 태어나셨지만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유다가 아니라 요셉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인물입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보다도 요셉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열두 지파 중 요셉에게만 두 지파의 몫을 줍니다. 그래서 요셉 대신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열두 지파에 들어갑니다. 그만큼 요셉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41장 50∼52절을 보십시오.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창41:50-52므낫세라는 이름은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나 아버지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즉 ‘하나님이 나의 수치와 고난과 부끄러움을 다 씻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므낫세를 낳기 전까지 험난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는 30살이 되기까지 억울하고 괴롭고 힘든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것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노예로 살아가야 했든가 하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미움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셉은 어떤 일을 만나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억울한 상황에 처할 때 어떤 사람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맞섭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어떤 경우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는 것 같고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요셉에게 므낫세가 태어난 후 요셉은 ‘내 고통과 억울함과 모든 수치는 이 아이가 태어남으로 끝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통, 억울함, 수치가 얼마나 컸습니까? 그 모든 것이 므낫세가 태어남으로 끝났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니까 하나님께서 마침내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기다리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팔이 짧아서 가만히 보고 계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셔서 수수방관하신 것도 아닙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상황을 사용하여 요셉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셔서 마침내 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므낫세의 동생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므낫세가 ‘부끄러운 과거와 단절’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두 번째 아들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고 창성한 열매를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의 상태가 이와 비슷합니다. 과거에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예수 믿고 깨달은 사실은 ‘이제는 하는 일들마다 30, 60, 1백배의 열매를 맺어 복이 넘치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태어나고, 이들을 통해서 두 지파가 탄생됩니다. 야곱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식들을 축복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 당혹스러운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창세기 48장 10∼16절을 보면 야곱이 임종할 때가 되어서 자녀들을 축복할 때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장자를 축복할 때 오른손을 그 머리위에 얹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큰 아들을 야곱의 오른손 앞으로 데려갑니다. 그런데 축복하는 순간에 갑자기 야곱은 손을 엇갈려서 아이들의 머리에 얹습니다. 오른손을 차남인 에브라임에게 얹고 왼손을 장남인 므낫세에게 얹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당황한 요셉이 상황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창세기 48장 19, 20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 세웠더라"
창48:19-20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이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과 질서대로 되어나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갈등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자기 식으로 응답해 달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요셉도 큰 아들에게 장자권이 있다는 세상적인 질서대로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방법을 바꾸시면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형이 동생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 어린 아랫사람이 나이가 더 많은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세상적이고 상식적인 질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길 수도 있다는 진리를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독립해서 성공하면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도 축복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자기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이 진급을 빨리 해서 상관이 되어 그 밑에서 섬겨야 할 때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봅니다.
므낫세는 장자인 자신의 축복권이 동생한테 주어지는 것으로 인해서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었지만 므낫세는 불평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므낫세는 에브라임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복을 받았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행복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행복이 달려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책임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자기를 축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우리는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위치나 소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독립해서 자기의 사업을 해야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합’입니다. 자신이 리더가 되지 않은 상태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도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므낫세를 통하여 봅니다.
세상의 갈등은 간단합니다. 모두가 이 ‘질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누가 윗사람이 되는가’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간주됩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모든 고생을 참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그 질서가 깨지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인생이 패배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야곱의 열두 지파 가운데 이런저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르우벤은 아비의 침상을 더럽혔고, 시므온과 레위는 살인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2025년 4월 11일 오전 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