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국제적인 경기 침체가 하루속히 안정되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컨텐츠를 제작해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30: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4:14"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히6:20구약 시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제사장의 두 어깨의 견대에는 호마노라고 하는 보석을 달았는데, 좌우 견대에 다는 두 개의 호마노 보석 위엔 각기 6지파씩 12지파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가슴 한복판에는 흉패를 입었는데, 흉패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12개의 보석이 있었습니다. 12개의 보석은 이름도 가치도 달랐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보석처럼 귀히 여겨 어깨에 붙이고,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두 어깨와 가슴에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석처럼 생각하셔서 가슴에 품고 다니십니다. ‘너는 보석보다 더 귀한 존재이다. 내가 너를 너무나 귀히 여기기 때문에 너를 내 가슴에 품고 다닌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대제사장이 가슴에 단 12보석만큼 보배롭고 귀한 사람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허물 많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열두 지파의 시조인 야곱의 열두 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을 보지 않고 보석처럼 소중하게 여겨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며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랑받을만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태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여겨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야곱의 열두 자녀를 낳은 그 어머니들이 별로 적절하지 못한 신분을 가진 여자들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임신하지 못했고, 빌하는 라헬의 몸종이요, 실바는 레아의 몸종입니다. 이 네 사람 모두가 적절하지 못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조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벌, 가문 자랑은 인간의 추악한 죄악을 덮는 위선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조상으로 계보에 오른 5명의 여자 중 라합은 기생이었고, 룻은 이방인, 다말은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진 여자였고,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였다는 사실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환경이나 불행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불행한 가정에서의 출생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고 복을 가로막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약속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강간당한 여자에게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눈동자처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야곱의 열두 아들의 어머니들을 통하여 발견합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하여 배우는 사실은 열두 아들이 모두가 똑똑하고 훌륭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르우벤은 맏아들이였지만 서모인 빌하와 간통을 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장자권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그 지파의 이름은 대제사장의 가슴에 하나의 보석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실수가 곧 실패는 아닙니다. 비록 과거에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를 제사장의 가슴에 박힌 보석으로 귀하게 여겨주셔서 축복의 조상의 지류로 만드셨습니다.
야곱의 둘째아들은 시므온, 셋째는 레위입니다. 이들의 이름에는 한이 서려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가 기도하여 하나님께 얻은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이 죽기 전에 자기 아들들에 대한 예언을 하는데 이 예언은 그들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창49:5∼7절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를 함께 묶어서 말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49:5-7시므온과 레위를 향한 이 예언은 심상치가 않고 살벌한 느낌을 줍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폭력의 도구’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어렵고 고통스러운 예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예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창세기 34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돌아오다가 세겜에 머물게 됩니다. 그때 야곱의 딸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리고 디나를 사모하여 아버지 하몰을 앞세워 결혼시켜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이때 디나의 친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누이한테 수치를 주었던 세겜 사람들을 향한 음모를 꾸밉니다. 그들은 결혼 조건으로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하몰과 세겜은 디나와 결혼하기 위해서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부족원들 모두 할례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할례 받은 지 사흘 째 되던 날 가장 고통이 심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잔인했던 시므온과 레위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폭력의 도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과거를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가슴에 품은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시므온은 열두 지파에 들어갔고 레위는 열두 지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레위를 버린 것이 아니라 레위 지파에게는 더 놀라운 직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특별한 직무를 갖는 지파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제 네번째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유다입니다. 창세기 49장 8∼12절을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창49:8-12아름답고 감동적인 예언입니다.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되고, 그에게 모든 사람들이 순종하게 되고, 강하게 될 것이며 통치자가 되며 포도주로 인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이는 우유로 희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어디다 내놓기에 부끄러운 아들들이었지만 네째 아들은 귀한 아들입니다. 유다지파가 귀한 이유는 먼 훗날 메시아가 유다지파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 박힐 자리에 유다지파가 대신 자리하게 됩니다.
그 후에 두 아들이 더 태어납니다. 30장 1절을 보십시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30:1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내를 합법적으로 내쫓을 핑계로 칠거지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칠거지악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로 간주하여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의 마음을 몹시 괴롭고 불안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라헬은 야곱의 관심이 점점 레아와 레아의 아들들에게 쏠리고 있음을 느끼고 안절부절 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아들을 넷이나 낳았는데 자신은 아들 낳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라헬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레아와 라헬은 서로 시기하고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레하는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독점하고 있음으로 인해 라헬을 질투하고, 라헬은 자신이 못 낳는 아들을 언니는 네 명이나 낳고 야곱의 관심을 끌고 있음으로 인해 매일같이 질투의 불길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의 자매를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여 그로 질투하게 하지 말지니라"
레18:18레아와 라헬이 한 남편을 두고 느낀 질투심은 돌이킬 수 없는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8:6투기하는 마음이 생기면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 형제간에도 부모가 편애하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그 좋은 예로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가 질투로 앙심을 품은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형제간에도 투기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렇게 끔직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데, 부부간에야 오죽하겠습니까?
라헬은 레아에 대한 질투심을 견딜 수 없어서,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했습니다.
라헬은 자신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 마치 야곱의 탓이기라도 한 듯이 야곱을 붙잡고 불평했는데, 이러한 라헬의 태도는 믿음이 전혀 없는 불신자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난감해질 대로 난감해진 사람은 야곱입니다. 그는 라헬의 요구가 자기 능력 밖의 일이었기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