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29:19-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29:19-20여러분, 사랑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7년이 수일같이 느껴지는 것이고, 미워하면 수일이 7년 같이 느껴집니다.
사랑하면 기다림도 쉽고 고통을 당하는 것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돈이 없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곱에게는 7년만 지나면 라헬과 결혼하게 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삶에 의욕이 넘쳤습니다.
야곱은 7년이란 세월을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꿈같이 지냅니다. 이제까지 철저하게 계산적인 삶을 살아온 야곱도 사랑에 빠지자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7년이라는 긴 노동의 시간이 단 며칠처럼 짧게 느껴졌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어느 청년의 말을 들어보니까 그 청년은 생선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귀고 있는 아가씨가 생선을 참 좋아하니까, 그도 이제는 생선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사랑은 연약해보이던 야곱으로 하여금 우물 뚜껑인 큰 돌을 옮기게 만들고, 7년이라는 세월을 단 며칠 같이 느껴지도록 했던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로맨틱한 감정의 유효기간이 얼마일까요? 영국의 한 리서치 전문 사이트는 결혼한 지 10년 이상 되는 5,000쌍의 부부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부부 로맨스의 유효기간은 2년 6개월 25일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결혼한 지 2년 6개월 25일이 지나면,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설렘 등 로맨틱한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남성 중 70%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러운 옷 등을 아무 곳에나 벗어놓기 시작하며, 여성 중 54%는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일에 소홀해진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이 리서치 사이트의 대변인 존 스웰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에게 습관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가사를 돕거나 가벼운 포옹을 하는 등의 작은 노력이 결혼 초기의 로맨틱한 감정을 더욱 오래 지속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29:21시간은 그냥 두어도 갑니다. 쏜살같이 갑니다. 7년이란 세월도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라반은 7년이 되어도 라헬을 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일만 하게 합니다. 야곱은 ‘외삼촌이 일부러 주지 않으시나, 약속을 잊어버리셨나?’ 하며 고민을 하다 용기를 내어 하루는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외삼촌,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야곱이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고 목적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계산하며 삽니다.
그때 그는 라헬을 달라고 하지 않고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합니다. 라반의 마음은 몹시 언짢았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시집가지 않은 첫째 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문화에는 첫째 딸이 시집가고 나서 둘째 딸이 시집가게 되어 있는데, 둘째 딸을 먼저 보내고 나면 레아는 혼사 길이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은 어떻게 해서든지 레아를 먼저 시집보내야만 했습니다.
라반이 언짢았던 또 다른 이유는 만약에 야곱에게 둘째 딸 라헬을 주고나면 둘이 자신의 집을 떠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라반은 좋은 일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창29:22-23고대 사회에서 결혼식은 동네 잔치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제가 살던 시골의 결혼식도 동네 잔치였습니다. 온 동네가 다 모여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이글거리는 중동 날씨의 특성상 이스라엘의 결혼식은 해가 진 저녁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이 날을 기다려왔던 새 신랑 야곱은 저녁에 신방에 들어가 신부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는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고 그녀의 언니인 레아였습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남을 속이는데 명수이고 잔꾀가 많고 교활한 사람인 야곱이 이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라반이 야곱을 속이려고 철저하게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레아가 철저하게 변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신부의 얼굴과 몸 전체를 베일로 가리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라헬의 옷을 입고, 라헬이 하는 화장을 하고, 라헬의 목소리를 흉내낸 레아에게 속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캄캄한 밤이었으므로 신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창29:24라반은 레아와 함께 그녀의 여종 실바를 함께 보냅니다. 고대 중동에서는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에게 지참금을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옷, 가구, 돈 등을 주었지만 특별한 경우 종을 딸려 보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리브가를 이삭에게 보낼 때도 유모를 딸려 보냈습니다. 라반은 레아를 야곱에게 보내면서 여종 실바를 레아의 시종으로 보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관습이 있었는데, 양반 집안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몸종을 딸려 보낸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우리나라 관습과는 달리 고대 근동에서는 결혼한 딸이 임신하지 못할 때에는 그 몸종이 대신 아이를 낳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로 사라가 잉태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어 아들을 낳게 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한편 라반이 7년 동안이나 야곱을 머슴으로 부린 대가로 마땅히 아내로 주어야 할 라헬 대신이 야곱이 원치 않는 레아를 아내로 주고, 자신의 딸인 레아에게도 결혼 선물로 고작 몸종 하나만 주었다는 것은 그가 매우 인색하고 교활하며 속임수에 능한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29:25야곱이 아침에 일어나서 라헬이 아니라 레아인 것을 알았을 때 항변합니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그러나 사실 야곱은 항변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7년 전 자신은 아버지와 형에게 이보다 더 심한 상처를 준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아버지와 형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혔는지 알았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는 법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상처를 받을 때의 상황은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합니다. 자기가 가해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피해 받은 것만 생각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심은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7-8여러분, 우리가 피부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노력하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나 그 피부도 결국 늙고 마침내 썩습니다. 세상의 쾌락을 위해 노력하면 쾌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썩습니다. 그러나 영을 위해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나중에는 더 크게 속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의 채색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와서는 그것을 야곱에게 보여 줍니다.
“아버지, 이것을 보세요. 동생 요셉의 옷 같아요. 집으로 오다가 주웠는데…….”
“맞도다! 내 아들 요셉의 옷이로다. 악한 짐승이 내 아들을 먹었도다.”
야곱이 가슴을 치며 웁니다. 13년간 그렇게 속아서 삽니다. 자기가 아버지를 속여서 자기도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인생은 밭입니다. 내가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잘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밭에 사과나무를 심으면 사과를 따먹지만 가시나무를 심으면 가시에 찔리듯이, 내가 선하게 살면 선한 열매를 따먹고 악하게 살면 악한 가시에 찔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을, 아내를, 윗사람을, 이웃을 속이지 말고 잘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아침이 되니.”
야곱이 밤에는 레아를 라헬로 알고 행복해하며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아침에 햇살이 비치니 “어? 레아네.”하며 쓴맛을 보는 것입니다. 밤에는 이렇게 속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속지 않습니다.
영적인 빛, 세상의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인생은 캄캄합니다. 사람들이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고,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도 모르고 삽니다. 참 빛, 예수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셔야 어둠이 물러가서 밝히 보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세상의 빛이니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2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은 레아네. 이 사람은 라헬이네.’라고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 빛이 비치기 전에는 돈이, 직장이, 명예가, 권세가, 어떤 사람이 최고인 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 빛이 비치면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침 햇살이 비치니 야곱이 레아를 레아로 안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을 비춰 주시기 전에는 바울도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가 사명감을 갖고 살기등등하게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러 가는 길에 하늘에서 광명한 빛이 비칩니다. 그 빛에 고꾸라져 있는데 하늘에서 “사울! 사울! 왜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때 그는 ‘아하! 예수가 하나님이시구나.’라고 깨닫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 빛을 만나지 못했으면 평생 교회와 예수님을 핍박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날은 밤과 아침이 계속 교차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날은 항상 아침인 것입니다. 늘 새 아침에 사시기를 바랍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느헤미야에게 “느헤미야, 만나자. 만나자.”라고 할 때 느헤미야가 ‘하나님!’하니 ‘만나지 마라. 만나러 가면 너는 죽는다.’라고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빛을 비추어 주시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주여!’하고 엎드리면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속지 말고, 후회할 길로 가지 말고, 함정에 빠지지 말고, 탄탄대로를 달리며 승리의 길을 걷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