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단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상과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이단 세력들의 거짓된 정체를 밝히 드러내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열방이 알게 하소서.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가려진 눈과 귀가 열려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도들이 거짓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의 능력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 그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창25:5-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창25:5-6아브라함이 왜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가게 하였을까요?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11:18"그가(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21:10-12"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9:7-8"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창12:7아브라함이 죽기에 이르러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당대의 부자였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 점을 묘사하는 부분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창13장 2절을 보면 애굽에 갔다가 돌아올 때도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창세기 14장을 보면 롯이 그돌라오멜 왕에게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자기 집의 가신 3백18명을 데리고 가서 공격한 일이 나오는데 남자가 3백18명 정도라면 그 부인들과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아브라함은 1천명의 식구를 부양하는 강력한 족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의 종을 시켜 이삭의 신부감을 위해 무려 10필의 낙타에 예물을 보낸 것을 보아도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요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복이 바로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3:13-14아브라함의 복 : 믿음의 복,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
아브라함이 이재에 밝아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카라 우드라는 18세 소녀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식당에 한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부인을 잃고 혼자 외롭게 사시는 할아버지셨습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늘 그 식당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카라 우드는 그 할아버지가 식당에 오실 때마다 친할아버지에게 하듯 친절하고 다정하게 모셨습니다. 1년 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카라 우드에게 5억의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사람도 자기에게 잘 대해주면 상을 주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예배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출20:24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특별히 말씀을 잘 듣는 자를 사랑하시고 복 주시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리아가 사랑받은 것은 예수님을 잘 대접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사55:3"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창25:7-10그 동안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해 공부 해 왔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1백75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마감하게 됩니다. 죽음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하는 것입니다.
8절의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라는 말은 자연사를 했다는 것, 즉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수명이 다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장수하고 죽은 아브라함을 보면 잠언 16장 3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입니다.
장례식은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치뤘고 시신은 아내 사라가 묻힌 막벨라 굴에 장사했다는 구체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 볼 말은 ‘자기 열조로 돌아갔다’는 것인데 시신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았던 열조의 곁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신은 부인이 있는 막벨라 굴에 합장을 했는데, 아브라함이 열조로 돌아갔다는 말은 그가 조상들의 믿음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의 사건도 그냥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는 예언대로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큰 민족을 이루었으며, 그 이름 또한 창대케 되었습니다. 모슬렘에게까지도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워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말도 성취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 뜻대로 살며 주님께 쓰임 받으며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기어 영원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무 문제도 없고, 어려움도 없이 산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살아가다가 주님 품에 안기어 영원한 곳으로 가는 삶이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 가운데 고난과 연단이 없었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인생 광야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13년간 광야를 겪은 후에 애굽과 민족을 살리는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모세는 40년간 광야 훈련을 받은 후에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또한 40년 광야 훈련 후에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꾼으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다윗 또한 10년 이상 광야 훈련을 받은 후에 하나님 왕국을 세우는 귀한 왕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1:8-9"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3-27이렇게 살았던 사도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외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4:7-8순교를 앞두고 있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였다는 말은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상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감옥에도 들어가고 매도 맞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쫓겨나기도 했지만 한을 품거나 마음 속의 상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과 같은 수준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고통을 겪어도 상처를 받지 않고 한을 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으면서 계속 상처를 받습니다. 마음속에 상처와 분노와 한이 있다는 얘기는 그게 진짜 믿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무시하고 멸시해도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커다란 문제가 아닙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4:3-4비행기는 이륙도 중하지만 착륙이 더 중합니다. 이륙할 때 보다 착륙하는 것이 더 어려워 파일럿들이 착륙할 때 더 긴장한다고 합니다.
인생은 출발도 좋아야 되고 과정도 좋아야 되지만 마무리가 좋아야 됩니다. 사울 왕은 출발이 좋았습니다. 겸손하게 출발해서 복을 받았지만 마무리가 비참했습니다. 솔로몬은 출발도 좋았고 과정도 좋았지만 마지막에 착륙을 잘못해서 서글픈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들 품속에 살다가, 쾌락의 잔을 마시다가 끝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을 때까지 귀하고 존귀하게 지냅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무리를 잘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내 인생에 끝이 있구나. 내 인생에 어려움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시간에 소낙비가 쏟아졌습니다. 두 사람이 교회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비가 쏟아지니 한 친구가 걱정스럽게 말합니다.
“이 비가 그치기는 하겠어?”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말합니다.
“그치지 않는 비 봤어?”
영원한 비는 없습니다. 노아 홍수도 그쳤습니다.
여러분, 태풍은 무섭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면 정신없지만 영원한 태풍은 없습니다. 태풍이 밀려올 때는 온 세상이 떠나갈 것 같지만 얼마 뒤에는 조용해집니다.
욥을 보십시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이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욥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마침내 승리하고 갑절을 복을 받았습니다. 인생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 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보디발의 아내는 그의 인생의 끝장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장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애굽의 총리로 깃발 날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르드개 또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까? 하만에게 밉보여 모든 유다인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의 인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기도한 모르드개는 마침내 승리하여 민족을 구원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 총리로 깃발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만의 인생은 마지막이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마침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여 마침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귀하게 쓰임 받고 살다가 천국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2월 17일 오전 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