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시니어 세대를 위하여
시니어 세대의 현재 삶이 지나온 삶보다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시고 기도와 섬김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영육간에 강건케 하소서
시니어 세대에게 주신 영성과 지혜를 사용하여 돌봄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 사역의 주체가 되게 하서 꿈꾸는 시니어가 되게 하소서
시니어 세대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여 다음 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셔서 성숙한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 쓰임받게 하소서.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24:5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24:58이 문장은 짧고 대답도 간단하지만 이 뒤에 숨어있는 의미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부모가 리브가를 불러 아주 곤란한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말을 갓 배운 아이에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럴 때 똑똑한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보다가 ‘엄마, 아빠 다 좋아’라고 합니다.
지금 리브가가 받은 질문도 이렇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현명하고 용기있는 결단을 합니다. 한 마디로 부모님들과 가족들의 기대를 버리고 가겠다고 합니다. 리브가의 결정은 단호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인된 순간 위대한 결단을 내리고, “가겠나이다”라고 짧게 답하고 당장 따라 나섰습니다.
이삭이 어떻게 생겼는지, 키가 큰지 작은지, 성격이 어떤 자인지, 건강한지 나약한지, 자라 온 환경은 어떤지, 취미는 무엇인지 자기의 스타일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이 결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 주저 없이 믿음으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결단이 리브가를 복되게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었고요, 구속 역사에 쓰임받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리브가가 믿음의 결단으로 인하여 만세에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1그 결혼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신하고 결단 했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 라고 여겨지면 믿음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혼만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지, 가정일이나 회사일이나 자녀의 문제라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믿음으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결단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단을 못하게 됩니다.
만약 리브가가 이익이냐 손해냐를 계산했다면 그 결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입니다. 이제 가족하고 헤어지면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종을 따라 가겠습니까?
다윗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고 결단을 했던 인물입니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삼상26:7-11다윗이 여러 가지 계산을 했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뜻만 생각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평생 책임져 주시고 높여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해도 안됩니다. 미래를 두려워해도 안됩니다.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삼상26:10특히 의심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사단의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자,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2자기의 미래를 맡기는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러기에 지체하거나 미루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도 다윗은 본이 됩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맞는 말이지요, 이때 다윗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 저것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재확인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삼상23:1-5사단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의심하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근심 걱정 속에 결단을 못하고 미루게 합니다. 그러게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즉각 믿음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리브가도 자신의 미래가 어찌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기회가 왔습니까?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에서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12:17혹시 다음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복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소경 거지 바디메오를 보십시오. 그는 길가에 앉아 구경하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소리칩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10:47-48그러자 예수님이 그를 불러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만약 바디메오가 사람들이 제재할 때 “나중에 다시 기회가 있겠지”하고 조용히 있었다면 그는 눈을 뜰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길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계2장에 보면 두아디라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그 이유가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기회를 놓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계2:20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그 기회는 다시 안 돌아옵니다.
만약 리브가가 그날 아브라함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저 평범한 여인으로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회를 빼앗겼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 앞에서 혈육과 정과 아쉬움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기에 매이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생각, 내 형편, 내 사정을 다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내 형편은 나보다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 내 능력도 나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주님께 맡기고 순종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2025년 2월 11일 오전 6: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