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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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1.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2.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온전히 연합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3.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창23:14-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창23:14-15

앞 절에서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창23:12-13

그랬더니 에브론이 땅 값을 부르는데 은 400 세겔이라고 합니다. 은 400 세겔의 가치가 어떻게 됩니까?

다윗 왕이 예루살렘 성전 터를 아라우나에게서 살 때 그 값이 50세겔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삼하24:24-25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대하3:1

이와같이 다윗이 성전 터를 살 때 그 땅값이 은 50세겔이었으니까, 아브라함은 성전의 땅 값보다 무려 8배나 많은 액수의 돈을 지불한 것입니다.

화폐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집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서울 집 값이 300만원이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그 집값은 3억으로는 만질 수도 없습니다. 10억은 넘을 것입니다. 집 값이 무려 300배 이상 뛴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화폐 가치가 무려 300분의 1로 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 시대에 은 400세겔과 다윗 시대의 은 50 세겔을 단순 가치를 가지고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단순히 8배 값을 지불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아브라함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사람이기에, 화폐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 입니다.

에브론은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돈 많은 당신에게) 이쯤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즉 에브론은 높은 가격을 불러놓고서는 갑부인 당신에게는 문제도 안되는 가격이 아니냐고 떠본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는 표현도 빨리 거래를 마치고, 서둘러 죽은 자를 장사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창23:16

에브론이 적지 않은 가격을 요구했지만,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제안을 가지고 흥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앞선 9절에서 말했듯이 아브라함은 충분한 가격을 지불한 용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흥정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롯이 더 좋은 땅을 골랐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조카와 다투지 않았고 흔쾌히 양보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돌라오멜 왕과 싸워 롯을 적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많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올 때에도 소돔 왕의 제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전리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창14:22-23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매번 양보하고, 매번 손해를 보는 것 같았는데, 그는 결코 가난해지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부요해 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창24:1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창24:34-35

아브라함의 인생은 스스로 복을 채우려고 애쓰는 삶이 아니었고,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오륜 교회 김은호 목사님이 강도사 시절, 교회를 개척할 때 이야기입니다. 적은 돈으로 교회 개척을 준비하던 중, 마침 명일동 아파트 상가 2층에 좋은 장소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한 전도사님이 같은 상가 지하 1층에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목사님이 먼저 계약했는데, 그 전도사님은 오히려 목사님에게 양보하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도사님은 곧 목사가 되실 분인데, 교인들이 교회를 찾아올 때, 2층은 목사가 시무하는 곳이고, 지하는 전도사가 시무하는 교회라며 어디로 가겠습니까? 지하로 안 가고 2층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강도사님이 양보해 주십시오.

그날 밤 목사님은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한 상가에 두 교회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데로 가자니 돈이 모자랐습니다. 이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셨을까?”

결국 다음 날 2층을 그 전도사님에게 양보하고 개척을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손해보고 양보하는 신앙을 귀히 보셨습니다. 애초에 생각한 명일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개척을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부흥을 허락해 주셨던지 1989년 3명의 교인으로 창립된 오륜교회는 현재 만 팔천명 이상이 예배드리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찬수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 땅을 그렇게 비싼 값을 치루고 구입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에게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13:17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2차 선교를 갔을 때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16:6-10

이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50장을 보면 요셉이 자손들에게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서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9절에 보면, 출애굽하는 백성들이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유골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요셉은 유언은 단순히 자기의 유골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후손들에게 가나안의 꿈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기 위한 말입니다. 가나안을 향한 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막벨라 굴을 사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미래를 사십시오. 약속의 실현을 위해서는 합당한 댓가 지불이 필요합니다. 내게 약속하신 기업이 무엇인가 헤아려 그 약속을 따라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2025년 1월 19일 오후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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