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단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상과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이단 세력들의 거짓된 정체를 밝히 드러내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열방이 알게 하소서.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가려진 눈과 귀가 열려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도들이 거짓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의 능력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 그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창23:7-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창23:7-9아브라함은 헷 족속들의 대답을 통하여 사라를 그 땅에서 장사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구체적인 장소를 매장지로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선택한 매장지는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소유지에 있는 막벨라 굴이었습니다.
막벨라는 ‘밭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원어 성경에서는 ‘끄트머리’를 의미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밭의 끄트머리에 있는 굴을 원했습니다.
유대인의 장례 풍습 : 굴에 장사합니다. 굴 입구를 큰 돌로 막아 놓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나사로의)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11:38-39여기에서도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좋고 넓은 땅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헷 족속들이 아무 곳이나 말만하면 다 들어 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선의를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선대한 이웃에게 소박한 청을 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낮은 자세의 그리스도인, 염치를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이 에브론의 땅의 끝자락에 지나지 않지만 그 값을 충분히 치르겠으니 땅과 소유권을 넘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충분히 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후한 심정을 잘 보여 줍니다.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창23:10-11그 당시에는 거래를 할 때 거래의 합법적인 공증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성문에서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이 사는 성문에서 에브론과 거래를 하였습니다.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에브론이 자기의 밭과 밭머리에 있는 그 막벨라 굴을 아브라함에 드리겠으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평소에 선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처럼 그가 어려울 때 서슴없이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살 것 같이 서로 물고 찢으면 그 다음에 막상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은 혼자서 못 삽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 주면서 후덕하게 살아야 합니다.
헷 족속의 에브론이 자기의 밭뿐 아니라 막벨라 굴을 그대로 가지라고 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평소에 덕을 많이 쌓고 살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창23:12-13아브라함은 아내를 장사지낼 묘지를 공짜로 얻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을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삼하24장을 보면 다윗 왕이 아리우나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야훼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합니다. 그러자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합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삼하24:24우리 인생의 길에는 모든 것이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것이지 순수한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조차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선물로 준다고 해서 믿음도 없는데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즉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몸 찢기고 피 흘리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지만, 구원의 대가로 우리에게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추운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꿩 사냥을 했습니다. 그때 콩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 속에 비상을 집어넣고 밥풀로 막아 먹이로 씁니다. 꿩이 잘 내려오는 산비탈에 그 콩을 놓고 멀리 언덕 밑에 가서 웅크리고 앉아 기다립니다. 그러면 꿩이 아침에 산에서 날아 내려와 떼를 지어 지나가는데 콩이 보이니까 까투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냥 지나가지만 장끼는 보자마자 ‘이제 웬 떡이냐’하고 먹어 버립니다. 그러면 얼마 안가서 콩을 먹은 장끼가 퍼드덕 거리다가 발을 쭉 뻗고 쓰러집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공짜를 바라면 반드시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고맙소.” 하고 그 밭과 막벨라 굴을 그냥 얻었다면 장례식 하면서도 미안했을 것이고 길을 가다 에브론을 만나도 미안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저렇게 잘 사는 부자가 어찌 그 땅을 그냥 받나?” 라며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입을 열고 지갑을 닫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돈은 베풀라고, 친구를 사귀라고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눅16:9불의한 청지지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인의 재물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인이 책임을 물어 해고하려고 했지만, 주인의 돈으로 사람을 얻는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을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공짜로 얻지 않고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니 에브론도 좋고 아브라함도 떳떳하고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칭송을 받게 됩니다.
평택의 어느 가난한 농부가 큰 부자에게서 산기슭의 못 쓰는 땅을 샀습니다. 그 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돌을 파내고 깊이 땅을 갈다가 쟁기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파보니 큰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집에 가져와 괭이, 호미 등 농기구를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항아리에서 괭이를 꺼내니 괭이가 하나 더 나오고 호미를 꺼내니 호미가 또 나옵니다. 이상해서 밥을 넣어 보니 밥이 또 한 그릇 나오고 돈을 넣으니 또 돈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농부가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땅을 판 부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농부를 불렀습니다.
“내가 땅은 팔았지만 항아리를 판 것은 아닐세. 그 항아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집의 가보니 내게 돌려주게.” “아닙니다. 제가 밭을 샀으니 그 항아리도 같이 산 것입니다.”
“아닐세! 그 항아리는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야.”
옥신각신하며 싸움이 끝나지 않아 그들은 사또를 찾아갔습니다. 사또는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닐세. 나라 것일세. 나라 것이니 내가 보관하겠네.”라고 판결하고 항아리를 빼앗아 자기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신비로운 항아리를 얻었으니 이제 우리 집은 큰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소원 성취했다.” 하고 기뻐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난 사또의 부친이 “무슨 항아리이기에 그렇게 신비한고?” 하며 보다가 그만 그 항아리에 빠졌습니다.
사람 살리라는 소리에 식구들이 나와서 아버지를 끌어내니 아버지가 또 한 분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마루에 노인이 가득하게 되었는데,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몰라 “어느 분이 참 제 아버지입니까?”라고 물으니 노인들이 모두 대답합니다.
“나다.”
“나다.”
“나다.”
결국 그 사또가 미쳤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얻는 것이지 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간은 금을 보고 탐내다가 죽게 됩니다. 게하시는 귀한 옷을 보고 탐내다가 문둥병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에 자신이 판 우물을 빼앗겼다가 다시 찾을 때에도 값을 주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다시 삽니다. 아브라함이 굳이 그 땅을 사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염치없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각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중에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은 공짜입니다. 이것은 그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저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노력하거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공짜로 살면 안됩니다.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그돌라오멜과 싸워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소돔 왕이 “사람은 내게 보내고 전리품은 당신이 가지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창15:1-2하나님께 구하고 사람에게 후덕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 땅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헷 족속에게서 땅을 사서 약속의 땅으로 만드는 일을 아브라함이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기다리다 보면 내 손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이 하나님의 땅’이라고 하면 그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일에 우리가 힘써야 합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16:10아브라함 또한 그 땅을 사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만들어 가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통일도 오지 않고 나라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복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 모든 크리스천들이 질서를 잘 지키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고향에서 그 뼈를 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시체를 들고 갈대아 우르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나은 본향인 축복의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외국 땅이지만 헤브론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뼈를 묻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을 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상과 비전을 실현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땀과 눈물과 개척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25장 9절을 보면 그 막벨라 굴에는 아브라함도 묻히고, 이삭도, 야곱도 그 굴에 장사됩니다. 변함없는 아브라함의 땅이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삽니다. 공짜로 주겠다고 해도 거절하고 굳이 준가를 치르고 그 땅을 샀습니다.
2025년 1월 18일 오전 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