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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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1.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한 습관을 가져 시대를 끌어갈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성적 타락, 음란하고 혼탁한 문화, 각종 중독과 같은 어두움으로부터 저들의 생각과 육신을 지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해답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3.

기독교 가치로 세워진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세력의 행보가 무너지게 하시고, 학교마다 학생들의 예배가 세워지게 하소서.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21:9-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창21:9-11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 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이 86세 때 이스마엘을 낳았으며 이삭은 1백세에 낳았습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까지 이스마엘은 외아들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출생으로 자신에게 대한 관심과 사랑이 이삭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사람의 관심이 그의 어린 동생인 이삭에게로 쏠린 큰 잔칫날에 이삭을 조롱한 것은 옳지는 않았지만 이해는 됩니다.

이렇게 이스마엘이 동생을 희롱하는 모습을 이삭의 어머니인 사라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14살 위인 이스마엘에게 놀림 당하는 것을 보자 사라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즉시 아브라함에게 달려가 따졌습니다. 얼마나 격분했는지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의 단호한 요구 때문에 아브라함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라는 이스마엘을 가리켜 ‘이 종의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라의 매몰찬 요구 때문에 아브라함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심은 아브라함이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을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해서 사라의 제안을 수용하였고, 그 결과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21:12

이스마엘과 하갈의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원하는 대로 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남으로 인해 사랑과 관심이 이삭에게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삭을 위한 잔치가 있는 날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조롱하는 모습을 본 사라가 그것을 문제로 삼아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쫒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그림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롬9:7-9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녀 이지만,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삭이 태어난 것은 아브라함에게 생식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롬4:18-22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4:28-30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육과 영, 옛 본성과 새로운 성품은 언제나 대립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6-17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사랑했고 그를 곁에 붙들어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6장은 육신을 이기는 유일한 승리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 곧 자신이 ‘죽었습니다’고 간주하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옛 본성과 영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갈등과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이 사건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상징하는 비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4:21-31은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4:21-31

하갈은 율법이라는 옛 언약의 상징으로서 바울 시대의 지상적 예루살렘과 동일시되었으며, 사라는 은혜의 새 언약의 상징으로 천상의 예루살렘과 동일시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으로 태어났으며 종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영으로 태어났으며 자유로운 여인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율법의 노예로 있는 유대인과 은혜의 자유 아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바울의 논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갈 옛 언약을 내어 쫓으라고 명하신 데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복이 이삭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이성과 상식, 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유업은 누가 이어 받습니까?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집에서 길리우던 다메섹 엘리에셀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인위적인 수고로 낳은 이스마엘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사라를 통하여 낳은 이삭만이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하십니다.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을 좇아 사는 삶 – 세속 주의 (롯)

하나님 없이 내 원칙, 내 철학, 나의 필요를 따라 사는 자세 – 방종주의 (에서)

위로부터의 은혜를 갈망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왔던 방식대로 사는 자세 – 인본주의 (다메섹 엘리에셀)

하나님의 뜻을 내 힘으로 이루려고 시도하는 수고 – 율법주의 (이스마엘)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원칙, 기준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삶의 자세 – 복음주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방식)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의 모습이 있고 약속을 따라 난 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둘이 서로 싸운다는 말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녀를 거부하지 않을 때는 육체를 따라 낳은 자녀가 약속을 따라 낳은 자녀를 핍박하고 희롱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육체의 자녀, 육체의 생각이 계속 있으면 그것들이 영의 생각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육체에 지고 맙니다.

다시 창세기로 돌아가 봅시다. 사도바울의 해석을 듣고 이 본문을 보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창세기 21장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창21:10

육신의 일은 영의 기업을 계승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8장 5절에 보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함에도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성령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려고 합니다.

나의 옛사람, 옛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기 때문에 육의 생각이 영의 생각을 지배하고 육신의 일이 영의 일을 간섭하며 희롱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예수를 잘 믿고 싶다면 여러분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끊어버리십시오. 그래야만 자유하는 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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