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그릇된 이념이나 선동이 아닌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주변 강대국들과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게 하시고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22-3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18:22그 사람들 (천사 둘)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야훼 앞에 그대로 섰더니
야훼 하나님께 함께 왔던 두 명의 천사가 왜 소돔을 향하여 갔습니까?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창18:20-21소돔에는 동성연애가 만연했습니다. 동성연애는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죄 입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레18:22-25또 살인죄도 많았습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임당하면 그 피가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는 것입니다.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하나님께서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라고 하신 이 말씀은 확실히 모르셔서 확인하러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다 아시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시 한 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이 갈대아역에는 ‘지금이라도 그들이 회개하면 내가 살려주겠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악인이라도 그가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겔33:11누가복음 23장 42절, 43절에 보면 평생 강도짓하며 악하게 살다가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소서.”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평생 강도짓을 했지만 죽을 때라도 회개하니 구원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을 주려고 찾아오신 하나님이 소돔에는 심판을 하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의 조카 롯 때문입니다.
롯은 어떤 인물입니까? 아브라함을 무던히도 힘들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여전히 롯을 사랑하였습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롯이 한 때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돌라오멜 왕과 그와 함께 한 왕들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돔과 고모라의 왕이 패하게 되어서 롯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집에서 기른 군사 318명을 데리고 무모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줄 때 자기가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마칩니다. 자신에게 해가 돌아오고 문제가 생기면 절대 도와주지 않습니다. 손해 보면서까지 도와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을 달랐습니다. 천사들이 소돔을 향하여 가자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행복을 찾아 소돔과 고모라에 떠나 살고 있던 롯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천사들이 소돔을 향하여 갔다는 것은 이미 심판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영화에서 보듯이 시계 폭탄이 작동되기 시작했을 때는 그 시간 안에 그 폭탄을 해체해야 하듯이, 아브라함의 상황은 급박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라 는 말씀에서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별 볼 일 없고, 허물도 많고, 나에게 많은 해를 끼쳤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가치 있는 일에 자기의 시간도 내고 헌신합니다. 가치 없는 것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귀어 봐야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에게 해를 끼치고 힘들게 했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 잊어버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 배신을 잘 하고, 실수도 많고, 강퍅하고, 하나님께 대드는 이런 사람을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예수님의 이 마음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창18:23하나님께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롯 좀 살려 주십시오’라고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말 좀 붙여보려고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할까 고민했던 아브라함에게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해 보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자기 죄로 인하여 심판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만약 혹시 그 소돔과 고모라 안에 의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성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 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이까"
창18:24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시한 카드는 ‘50명’이었습니다. ‘이 땅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아무리 크고 많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죽일 수야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인 50명을 소돔과 고모라 성과 함께 멸망시킨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18:25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별 볼 일 없는 롯 하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창18:26아브라함의 예상을 깨고 하나님께서 너무나 쉽게 ‘OK’하셨습니다. 좋다고 허락하실 뿐 아니라 의인이 오십명만 있으면 이 땅의 모든 백성들까지 모두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27-28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다섯명만 빼면 어떨까요? 그래도 그 성을 멸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아무 갈등 없이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창18:29-30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의인 40명이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말을 해도 화내지 마십시오. 화내지 마시고 제발 그냥 들어만 주십시오. 삼십명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삼십명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창18:31하나님께서는 당혹스러워하며 질문하는 아브라함에게 스무명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32아브라함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열명’을 제안합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은 주저하지 않으시고 열명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화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아브라함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50명에서 45명으로, 다시 40명으로, 30명, 20명, 10명으로 숫자를 바꿀 때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사랑은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수치를 겪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가 잘못 되었을 때 부모가 수치를 당합니다. 수치를 당하면서도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수치를 당하셨고 매를 맞으셨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감당하기 힘드셨습니다. ‘제가 이 잔을 마셔야 합니까? 이 고난의 잔을 꼭 마셔야 합니까?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수치와 모욕과 아픔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 옆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소자, 가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데는 너무나 주저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치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도 내고 헌신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 버려진 사람을 위해서는 희생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참된 중보 기도자는 이러한 수치스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수치스런 중보기도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중보기도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인생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고민은 다 ‘나’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내 인생을 바친 적은 거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