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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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북한 선교를 위하여

1.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3.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그 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를 세워주셔서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4.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18:1-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창18:1-2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 아브라함이 살던 헤브론은 굉장히 더운 지방입니다. 특별히 정오의 더위는 살인적입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집은 벽돌집이 아닌 천막집이었으니 얼마나 더웠겠습니까? 그때 에어컨이 있었겠습니까? 선풍기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장막 앞에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주로 말씀으로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천사 혹은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합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사람이 풀무 속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단3:25

이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막 앞으로 지나가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달려갑니다. 걸어가지 않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몸을 굽혀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이런 대접은 존귀한 자들에게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지금 나타난 이 세 사람은 누구입니까? 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야훼께서 나타나시니라. 야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너는 네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도 음성으로 들었고 환상 중에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오셔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와서야 처음으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분은 이방신과 다릅니다. 이방신은 저 멀리에 있는 신, 무서운 신, 너무나 위엄 있어 인간을 숨도 못 쉬게 할만큼 권위주의적인 신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로마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신들이 바로 그런 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신들과 다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음성을 들려주시고, 절망했을 때 용기를 주시고, 길을 잃었을 때 길을 가르쳐 주시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친히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가까이 계셔서 우리와 대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아브라함과 대화하십니다. 이런 모습은 먼 훗날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창세기에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18:3-8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막 앞으로 지나가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달려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지 하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 그들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달려갔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던 것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그 나라의 관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성읍이나 마을에는 여관이나 주막이 가끔 있었으나 띄엄띄엄 몇 집이 사는 광야에는 그러한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은 수많은 소와 양들을 먹여야 하니 꼴을 찾아다니며 띄엄띄엄 장막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장막에서 먹을 것을 주지 않거나 마실 것을 주지 않으면 먼 길 가는 나그네들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 앞을 지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그 지역의 아름다운 관습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베두인들은 그렇게 합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여행객들이 그 지역을 여행하다가 버스가 고장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베두인이 그 자리에서 양 몇 마리를 잡아 여행객들을 대접했습니다. 그것이 감사해서 여행객들이 돈을 주려하자 베두인들은 “아닙니다. 당신들은 내게 온 손님이요, 축복입니다. 손님에게 돈을 받지 않는 것이 우리의 관습입니다.”라며 그들을 그냥 보냈습니다.

아브라함도 나그네들을 보자 달려가서 “내 주여, 그냥 지나가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내 주’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손님이 왔을 때 손님에게 ‘주’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네 말대로 그리하라”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으로 달려가서 사라에게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2절에도, 6절에도 달려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짐승 떼에게 급히 달려간 그는 그 중 제일 살지고 기름진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했습니다.

이렇게 장만한 송아지 요리와 버터, 우유를 그들에게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는 수많은 종들이 있으니 음식이 많았겠지만 손님에게는 새 것으로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마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같이 말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25리를 걸어가면서도,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가슴이 뜨거워져도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식사시간에 예수님께서 축사하실 때 비로소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분들을 ‘신비롭다. 보통 분이 아니시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이신 줄은 몰랐는데 음식을 다 드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알았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18:9-15

아브라함이 대접한 음식을 드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그때 아브라함이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제 음성을 들으면 저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사람마다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자주 들은 음성을 들으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75세부터 듣고 들은 음성이라 “아브라함아!” 부르실 때 그 음색을 바로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아이구! 하나님이시네.’라고 깨달은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네, 장막 안에 있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 내가 다시 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그 이야기를 엿듣고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숨어서 듣는 것도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다 아시면서도 물으신 것입니다.

사라가 웃는 것을 아브라함은 못 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사라야,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따라 합시다.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때 사라가 “웃지 않았나이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친정아버지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요 불여우 같은 것! 왜 거짓말을 해? 네가 웃었잖아.”라고 하지 않으시고, 친정아버지처럼 부드럽게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셨는데, 사라가 왜 흔들렸습니까? 약속의 말씀보다 상황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경수가 끊어지고 갱년기가 지난 지 오래된 자기 몸을 보니 흔들렸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믿었지만, 자기 몸을 보면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아들을 낳으리오?’ 하며 흔들립니다.

우리도 가끔 이렇게 흔들흔들 합니다. 설악산에 있는 흔들바위처럼 흔들립니다. 믿음이 좋으신 장로님들도 때로는 흔들흔들 합니다. 왜입니까? 자기의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위에 서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별 수 없습니다. 말씀의 줄을 붙들어야 멋진 믿음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주님,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의지하니 파도를 밟고 걸어갑니다. 그러다 베드로가 말씀의 줄을 놓치고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를 보니 물에 쑥 빠집니다.

우리의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끈만 잡고 나가면 멋진 믿음생활을 하게 됩니다. 멋지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의 끈을 놓치면 술집에 처박히고 노래방에 처박히고 이상한데 처박혀 그 모습이 초라하게 됩니다.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만 붙드네

우리의 마음이 불안할 때는 말씀 위에 서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상황, 감정, 주변의 환경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늘 말씀의 줄을 잡고 나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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