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단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상과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이단 세력들의 거짓된 정체를 밝히 드러내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열방이 알게 하소서.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가려진 눈과 귀가 열려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성도들이 거짓 교리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의 능력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 그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17:18-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17:18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는 법도 알고 제법 지혜도 많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편한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13년 동안이나 이스마엘을 데리고 살지 않았습니까? 이스마엘이 남의 씨입니까? 이스마엘도 내가 낳은 씨가 아닙니까? 그러니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을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17:19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럴 듯하고 인간적인 생각에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인간적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 있지만 나는 아기를 줄 것이며 내가 약속한 자녀가 네 아내에게서 분명히 날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이야기를 끝까지 주장하면 확신이고 비전입니다. 그러나 틀린 이야기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을 고집이라고 합니다. 틀린 것이 있다면 고집 피우지 말고 바꾸시고 고치십시오. 그러나 옳은 것이라면 끝까지 가십시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바꾸지 마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하나님은 환경 때문에 포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서 태어날 아이가 여자가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친히 ‘이삭’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임신도 하지 않았는데 이름까지 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미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약속이시며 소망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호하게 말씀하실 때는 그 때가 아직 멀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때는 그 때가 아주 가깝다는 뜻입니다. 네가 낳는 아이는 아들일 것이며 이름은 이삭이라는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처음에는 막연했지만 점점 선명해지고 이제는 시한과 이름까지 정해졌습니다. 신앙생활은 할수록 점점 더 밝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가까워집니다. 천국도 처음에는 막연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까워지고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먼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아들을 낳는 것이 불가능해도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젊게 하시어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에 보면 바디매오는 맹인이고 거지입니다. 맹인으로 사는 것도 힘든데 거지이니 얼마나 삶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는 나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셨다네”이 말을 들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희망이 솟아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소원도 생겼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이 지나 가신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이때 그는 힘껏 소리 쳤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제지했습니다. 그래도 바디매오는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방해자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방해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밀어제치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올 때도 ‘오늘을 피곤한데 가지 말까?’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남편이 가지 말라고 말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밀어제쳐야 하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하러 나올 때도 밀어제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새벽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자기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밀어제치고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발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앞에 서시면 여러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발을 멈추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내게 불러오라.”
그가 너무 기뻐서 겉옷을 던져 버리고 용수철처럼 뛰어 일어나 주님께로 달려갔습니다.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즉시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나는 거지고 맹인이야. 나는 이대로 살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했다면 그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소원하고 기도하니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어두운 환경에서 그대로 살면 안 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밝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약한 몸 그대로 살면 안 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병든 몸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병과 친하게 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병에도 주님의 뜻이 계시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난하여 어렵게 사는 것을 팔자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포드는 대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니 자동차를 발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생각도 못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사는 생활은 누구나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삽니다. 자기 실력과 자기 자본으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17:20-21여기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마음이 넓으시고 배려 깊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상속자로 삼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아니다, 내가 너에게 줄 약속의 자녀는 이삭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스마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좀 더 구체적인 싸인을 주십니다. 이삭이 태어나는 날짜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내년 이맘 때’출산할 것임으로 지금부터 약 2개월 후에 임신할 것이며 열달 후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해주시고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17:22하나님께서는 이제 하실 일을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붙잡고 24년을 씨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고 싸운 것은 그의 인간적인 믿음이 다 소진하고 없어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 위기에 처하는 아브람을 구해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야단치거나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기근을 만나 도망갔을 때에도, 언약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했을 때도,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도 다시 격려하시고 다시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믿는 것 같지만 자주 곤두박질하는 까닭은 아직도 옛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거나 성령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끝까지 옛사람을 물고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별 볼 일 없는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자식에게 밥을 주는데 더러운 밥그릇에 줄 수 있습니까? 밥을 깨끗한 밥그릇에 담아 주어야 하듯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옛사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기적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옛사람을 모두 포기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11월 20일 오전 6:37
